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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의료행위의 '업무상 과실' 꼼꼼히 따져보기

법률칼럼 의료행위의 '업무상 과실' 꼼꼼히 따져보기

  • 이은빈 변호사(하모니 법률사무소)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3.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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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빈 변호사(하모니 법률사무소)
이은빈 변호사(하모니 법률사무소)

법률용어로 '과실(過失)'이라 함은 부주의로 인해, 어떤 결과의 발생을 미리 내다보지 못한 것을 뜻한다. 일부러 하는 생각이나 태도를 의미하는 '고의(故意)'와는 반대의 개념이다.

의도하고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손해가 타인에게 발생했다면 민사상 청구는 가능할지언정 형사적으로는 책임을 묻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 형법은 제14조에서 '과실'이라는 제목 아래 '정상의 주의를 태만함으로 인하여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이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의 대표적인 예가 업무상 과실치사상(형법 제268조)이다. 참고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포항 소재 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A씨는 병원 응급의학과장의 지시에 따라 응급실로 이송된 익수환자를 구급차에 태워 대구 소재 의료원으로 이송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후 구급차에 비치된 산소통의 산소량이 이송 도중 바닥나서, 약 18분 동안 산소 공급이 중단돼 결국 환자는 폐부종 등으로 사망했다.

여기서 인턴 A씨가 산소 잔량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 업무상 과실에 해당할까?

1, 2심은 "피해자가 산소부족으로 몸부림을 치고 동승한 피해자의 모가 산소가 떨어졌다고 이야기할 때까지 산소통의 산소량이 얼마나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함으로써 산소 공급이 중단되게 한 것은 업무상 과실로 인정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의사면허를 받고 각 임상과목의 실기를 수련하는 인턴이라는 신분적 특성상 응급의학과장으로부터 산소 잔량을 확인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않은 이상 업무상 과실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이송 도중 甲에 대한 앰부 배깅(ambubagging)과 진정제 투여 업무만을 지시받은 피고인에게 일반적으로 구급차 탑승 전 또는 이송 도중 구급차에 비치되어 있는 산소통의 산소잔량을 확인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파기환송 주문을 내렸다.

이렇듯 의료사고에 있어서 의사의 과실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결과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 결과 발생을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회피하지 못한 과실 여부에 대한 검토가 기준이 된다.

그 과실의 유무를 판단함에는 같은 업무와 직무에 종사하는 '일반적 보통인'의 주의 정도를 표준으로, 사고 당시 의학의 수준과 의료환경 및 조건,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사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실제 의대 교과과정에서 산소잔량 예측 방법 등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당시 A씨는 산소부족 사태를 알게 된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한편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구급차를 운행하도록 했는데, 대법원은 이러한 사후조치 자체는 적절했다고 봤다.

다음으로 어깨주사를 맞고 나서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에 감염된 환자가 "충분히 소독하지 않아 상해를 입었다"며 업무상과실치상으로 의사를 고소한 사례에서 과실이 부정된 최신 대법원 판례도 참고할만하다.

원심은 해당 의사의 시술과 피해자의 상해 발생 및 그 관련성, 시기 등의 사정을 종합해 주사치료와 상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고 유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범죄가 성립하는 핵심 사실인 공소사실에는 주사치료 과정의 맨손 주사, 알코올 솜의 미사용·재사용, 오염된 주사기 사용 등과 같은 내용이 기재돼 있었으나 그에 대한 증명은 없었다.

즉, 주사를 맞고 감염이라는 결과가 발생했으므로 비위생적인 조치가 있었을 것이라는 모종의 추론이 작동한 셈이지만, 형사상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이뤄져야 한다.

대법원도 주사치료로 인해 상해가 발생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된다"고 봤다.

그러나 주사치료와 피해자의 상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등의 이유로, 의사의 업무상과실은 물론 그것과 피해자의 상해 사이의 인과관계까지도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의료행위는 질병의 치유와 같은 결과를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결과채무가 아닌, 환자의 치유를 위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가지고 적절한 진료를 다하면 족한 수단채무이고, 구태여 덧붙이자면 법률서비스도 마찬가지이다(승소를 보장하지 않는다).

전문직업인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임하되,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그럴 때 앞서 본 바와 같은 원칙을 상기해 차분하게 대처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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