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19 11:38 (금)
간호대생이 배우는 사이비(似而非) 의학

간호대생이 배우는 사이비(似而非) 의학

  •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10.10 06:00
  • 댓글 9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산 전래요법, 쓸모없는 교육 시간 낭비…간호대 교육 재검토해야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 ⓒ의협신문

지난 6월 경희대에 가는 전철과 버스에서 학생들이 경혈의 이름과 위치, 연관된 신체 부위와 질환 등을 세세하게 암기하고 있었다. 그중 한 학생이 들고 있던 자료를 보고 간호학과 전공필수 과목인 '경혈과 간호' 수업 내용임을 알 수 있었다.

혈자리마다 연결된 신체 부위가 있어서 혈자리를 자극하면 질병이 낫는다는 옛날 사람들의 믿음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이 과목이 처음 개설됐을 수십 년 전에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혈 관련 연구동향을 잠시만 조사해봐도 사실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경혈학을 가르치는 한의대 교수들에게 이런 내용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를 제시하라고 하면 제대로 된 근거를 내놓지 못한다. "가르치는 내용이 진실이라 믿느냐?"고 물어보면 뭐라 답할지 궁금하다.

허위로 밝혀진 과거 중국인들의 믿음을 상세하게 암기시키는 교육이 필요할까? 그 학생들은 자신이 시험을 보기 위해 외우는 내용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과 맞지 않음을 제대로 교육받기는 했을까? 

과학이란 무엇인지, 한의학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조사해본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의학을 '믿냐, 안 믿냐?'의 영역으로 여기고, 한의사가 의사보다 무속인에 가깝다는 의미로 '한무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한의학은 비과학적이라는 통념이 퍼져있다. 

일부 한의사들은 반발한다. 한의학도 과학화되고 있다고 변명하기도 하고, 현대의학도 한의학처럼 과학이 아니라며 현대의학을 한의학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시도하기도 한다. 

한의학이 비과학적임을 깨닫는 데에는 깊은 철학적 고찰이 필요하지 않다. 한의학이 비과학적이라는 의미의 기초이자 핵심은 한의학의 토대가 사실이 아니라는 데 있다. 순전히 고대인들의 믿음에 의존하고 있으며, 과학적 연구결과들은 그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과학자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 자연에 존재하는 진실을 발견하는 일을 한다. 현대의 과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의 사람들은 몰랐던 각 장기의 기능과 세포의 구조 등을 비롯해 생명현상의 원리들을 분자와 이온 수준까지 심층적으로 밝혀냈다. 과학이나 의학 교과서에 적힌 생명현상의 원리는 원래 존재하고 있었는데, 과거에는 인간이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서 알지 못했다가 '발견'해낸 진실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리학 교과서에서 특정한 내용이 담긴 부분과 거기에 관련된 논문들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가정해보자. 과학자들이 다시 연구해서 내용을 채워 넣으면 과거와 차이가 없을 것이다. 원래 존재하는 현상을 다시 확인해서 찾아내는 작업이지, 상상의 나래로 창작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어떨까? 전국한의과대학 생리학 교수 편저의 개정판 동의생리학(2022년 1판 6쇄)의 목차를 보면 음양론·오행론·육기론·정신기혈론·장부생리·경락생리 등이 적혀있다. 이 이론들에 대해 '옛날에 그런 설이 있었다'고 소개하는 내용이 아니고, 저자들은 진심으로 인체와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필요하다고 여긴다. 

장부생리 부분 중 '心 기능계' 부분은 이렇게 시작한다. "心機能系는 오장기능계에서 心·小腸·脈·舌·面·胸 등으로 구성된 기능 계통이다. 또한, 심 기능계는 오행의 火, 오운의 火運에 따라 신체의 장기 기관뿐만 아니라 자연계와도 연관된다. 심 기능계의 이해를 위하여 심 기능계의 음양·오행·오운의 속성을 중심으로 심 기능계의 특성을 설명하고, 심 기능계에 속하는 기관별 주요기능 및 심 기능계에 속하는 기관 간의 상관성으로 구분하여 서술한다".

한방생리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허무맹랑한 내용은 기록이 모두 소실된다면 실험과 관찰을 통한 복원이 불가능하다. 간호대에서 가르치는 어떤 경혈이 어느 부위와 연관이 되는지에 대한 내용도 그렇고 한의서에 적힌 처방들도 그렇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며, 과거 특정 지역 사람들의 상상이 담긴 '창작'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의학이 100% 거짓은 아닐 것이다. 고장이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지 않는가. 동의생리학 교과서에도 신장은 두 개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거짓에 일부 진실이 섞여 있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한방 이론이나 가정이 틀렸다고 해도 그것이 치료법이 효과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동의보감이나 옛날 한의서에 적힌 처방 중에는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임상시험 없이는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지만, 현대의학의 상식 수준에서 판단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판단이 가능한 처방들은 거의 모두가 틀렸다. 기본 가정과 원리도 거짓이고, 책에 적혀있는 다른 내용도 거짓이면 나머지 처방들도 참일 가능성이 매우 낮지 않겠는가. 

'한방의료행위'를 해야 할 운명인 한의대생은 어쩔 수 없겠지만, 학생들이 진실이 아닌 중국산 전래요법을 암기하도록 강요받지 말아야 한다. 경희대 간호대도 쓸모없는 경혈학에 낭비할 시간에 더 필요하고 가치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재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진실이 아닌 내용을 가르치는 한의학과도 이제 역사 속으로 퇴장할 때가 됐다.

■ 칼럼과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