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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호숫가에서 범종을 울리다
호숫가에서 범종을 울리다
  • 황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8.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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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교수
황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

누구든지 산사를 방문해 새벽이나 저녁에 종이 울리면 예불 참석 여부에 관계없이 그 순간만이라도 번뇌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승려가 아닌 일반인 중에 범종을 직접 타종한 경험을 가진 이는 드물 것이다. 나는 경상북도만큼 넓은 중앙 아시아의 한 호숫가에서 얼마 전 작고한 친구의 극락왕생을 위한 마음을 담아 종을 울리고 왔다.

지난 주 나는 키르기즈스탄에서 열린 국제성형외과학회에 참석해 연제를 발표했다. 나와 친분이 있던, 그 나라에 성형외과의 기초를 놓은 의사 M이 코로나감염증으로 사망한 뒤 꼭 2년 만에 그를 기리는 학회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열렸기에 비행기를 갈아타고 차로도 여러 시간 걸리는 곳을 마다하지 않고 갔던 것이다.
 
학회는 수도 비슈켁에서 동쪽으로 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이식쿨 호숫가의 한 문화센터(Rukh Ordo)에서 열렸다. 

2007년 개관한 이 야외박물관은 키르기스어로는 '영적 센터'를 의미하며 이슬람, 러시아정교회, 천주교, 불교, 유대교 등 주요 종교의 화합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섯 개의 종교관 건물은 모두 하얀색으로 모양이 똑같은데 지붕 꼭대기의 표식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각 종교관들 내부에는 그 종교를 대표하는 성인들을 그린 그림들이 장식돼 있었다. 즉 천주교관의 정면에서는 복음사가 성마태오가 천사의 말을 듣고 '마태오복음'을 펜으로 쓰는 그림이, 정교회관에서는 광야에서 수행하는 '예수'의 모습이 있었다. 

불교관에는 보관을 쓴 관세음보살의 동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왼손에는 쥐 한마리를, 오른손에는 소라고동을 쥐고 있었다.

잠시 머물며 지물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천수경〉 관세음보살의 12가지 명호는 각각 동물로 배치되는데, 만월보살의 화신으로 쥐가 형상화된 기억이 났다. 만월보살은 달에 광명의 물을 채우는데 악마가 자꾸 그 물을 먹어치우자 그를 잡기 위해 쥐의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악마를 무찌르며 광명의 물을 채우는 만월보살은 부지런함의 상징인 것이다.

'나팔소리 고동의 경'은 소라고동을 비유해 자애의 마음을 우주에 가득 채우는 것을 설하였다. 구조적으로 소리를 증폭시킬 수 있는 "강력한 소라고동이 적은 노력으로도 사방으로 들리는 것처럼", 자심해탈 수행을 해 자애의 마음을 우주에 가득 채우면 탐욕이나 성냄 등의 해로운 마음은 남지 않는다고 했다.

평소에는 연회장으로 쓰이는 학회장에 들어갔다. 주최국뿐 아니라 러시아, 카자흐스탄의 의사들이 많이 참석하였는데, M과 가까이 지냈던 여러 나라의 의사들이 참석해 고인의 업적과 인품을 기리는 개회식을 시작으로 사흘간의 학회가 진행됐다.

넓은 조각공원의 오른쪽에 위치한 종루에 걸린 종에 눈에 익은 '비천상'이 보였다.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복제품이었다. 한글로 '한국의 소리', 대한민국 문화관광부와 조계종에서 기증했다고 새겨져 있었다. 관광객들은 누구나 타종할 수 있었다. 벽안의 중년 부부가 타종하고 플라스틱으로 된 투명한 불전함에 약간의 돈을 넣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친 그 종소리가 아름답다고 했다. 내가 그들에게 이것이 '한국의 소리'라고 알려줬다.

2년 전 나는 페이스북에 M의 유가족이 올린 소식을 보고 그가 타계한 것을 알았으나, 나보다 두 살 아래인 그가 60세의 나이로 코로나 때문에 급서한 것에 대해 아무런 조의를 표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가 여름이면 매주 다니던 이 큰 호숫가에서 그를 기리는 모임에 와서는 종 앞에 섰다. 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당목'을 잡고 힘껏 뒤로 당긴 뒤 앞으로 밀어 당좌를 쳤다. 종소리는 조각공원을 넘어 바다 같은 호수 위로 퍼져나갔다.

영국시인 존 던 (John Donne)이 쓴 '비상시의 기도문'(Excerpt from 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이 생각났다. 

"어떤 이의 죽음도 나를 소모시키나니, 나도 또한 인류의 일부이기에,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느냐고, 묻지 말지어다.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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