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품위있게 죽을 권리...품위있게 죽을 의무?
논설위원 칼럼 품위있게 죽을 권리...품위있게 죽을 의무?
  • 김영숙 기자 kimys@doctorsnews.co.kr
  • 승인 2022.08.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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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돼 환자가 사전에 뜻을 밝히면 무의미한 연명의료을 중단할 수 있게 됐다. 이 법 시행 이후 6년만에 국내에서도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법안이 발의돼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공방이 뜨거워지고 있다. ⓒ의협신문

한국에서 존엄사가 인정된 것은 2009년 말기환자의 무의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를 인정하는 법원의 결정이 마중물이 됐다. 이후 연명의료의 중단이 법적으로 가능해진 것은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고 나서다. 

2009년 김할머니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환자의 신체 침해를 수반하는 구체적인 진료행위가 환자의 동의를 받아 제공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진료행위를 계속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환자의 결정권 역시 존중돼야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로써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사전'에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히면 이를 중단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 한국에서 말기 환자에 대한 의사조력자살(phsysian assisted suiside) 이나 적극적 안락사는 불법이다.

존엄사 논쟁이 과거 주로 죽음을 앞둔 환자의 육체적 고통 제거에 방점을 두었다면 최근 경향은 존엄하게 죽을 환자의 권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하는 나라는 네델란드, 벨기에 등 소수며, 의사조력자살을 인정하는 나라도 손에 꼽을 정도다.  

안락사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일명 '죽음의 의사'로 불렸던 미국의 닥터 케보키언이 아닐까 싶다. 케보키언은 1980년대 부터 말기 환자들의 '죽을 권리'를 주장하며 1990년부터 1998년까지 마취주사와 약물을 이용해 130명의 자살을 도왔다. 그는 조력 자살 혐의로 여러 차례 기소됐으나 당시 이를 금지하는 법이 없어 번번히 무죄로 풀려났다.

그러다 1998년 루게릭병 환자에게 직접 약물을 주입하면서 살인죄로 2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2007년 가석방돼 사망하기 까지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언론에서 일명 '죽음의 의사'로 불리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인물이다.

케보키언의 기행 덕분인지 미국 오레건주는 1994년 12월 존엄사법을 통과시켜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했다. 실제 이 법에 의해 1998년 80대 중반의 말기 유방암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최초의 의사조력 자살이 시행됐으며, 이후 미국 10여개 주가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했다. 

한국은 이와 달리 '무의미한 연명의료의 중단'을 법제화하기 까지도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사회적 합의를 거치기 까지 7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고,  2016년 법제정이 됐지만 존엄사법 실제 시행은 2018년으로 불과 3년여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논쟁이 갑자기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6월 안규백 의원이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한 탓이다. 말기환자이면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경우, 환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 조력존엄사를 희망하는 경우 등 조건을 만족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삶을 종결할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법안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법안 발의 이후 한국리서치가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조력존엄사 입법화 찬성의견이 82%나 됐다.

그 이유는 자기 결정권 보장 25%,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권리 23%, 가족 고통과 부담이 20%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세대에 따라 입법 찬성의 이유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자신의 주체성을 중시하는 29세 이하 젊은 층에선 '자기결정권 보장', 60세 이상 노령층은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권리를 많이 꼽은 반면 부양의 책임이 있는 40대는 '가족고통과 부담'을 꼽아 경제적 이유도 큰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2016년 이와 관련된 조사에서 41%만이 찬성하던 것을 감안하면 최근 존엄한 죽음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니즈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몇번의 결과나 추이를 보고 대다수 국민이 원하다는 것을 근거로 법제화될 가벼운 사안은 아니다.

이를 테면 찬성 이유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가족고통이나 부담, 의료비 및 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 등 경제적 이유는 자칫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에겐 오롯이 자기 의지의 결단으로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아니라 가족이나 사회의 부담을 덜기 위한  '죽을 의무'로  변질될 가능성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안규백 의원의 발의안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안발의를 계기로 윤리적·철학적·법률적인 문제까지 존엄한 죽음에 대한 사회 담론의 장을 마련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진지한 논쟁과 토론을 해볼만 사안임을 분명하다. 

하지만 의협이 '시기상조'라고 단언했듯 성급하게 법제화를 서두르기 보다는 현실적 대안부터 고려하는 것이 순서다. 2016년 연명의료법이 제정돼 2018년부터 호스피스 돌봄이 시작됐지만 이용가능한 질환은 아직 제한적이다. 더욱이 인프라 부족으로 대상 환자 중 21% 정도만이 호스피스돌봄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영국의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 이용률은 무려 95%에 달한다. 성공회 등 생명윤리를 중시하는 종교계의 영향이 크지만 영국이 의사조력자살을 아직 허용하지 않는데는 높은 호스피스 돌봄이 해답의 실마리일 수도 있어 보인다.

아울러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당시를 돌아보면 의료계에서도 기계 장치에 의존해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는데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공론화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조력'의 당사자인 의사들은 생명을 돌보고 지키는 의사라는 기존의 가치에서 갑자기 '죽음의 의사'라는 역할을 떠안을 준비가 전혀 안돼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조력존엄사법 이전에 존엄한 돌봄을 위한 호스피스 시설과 인력확충, 다양한 만성질환 말기환자에 대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이용 기회를 넓히는 일에 정부와 국회가 힘을 쏟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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