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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8월에 채워야 할 기대감
8월에 채워야 할 기대감
  • 장성구 전 대한의학회장 (경희대 명예교수)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8.01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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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2주 후 '8월 29일' 통한의 '국치일'
'국치일 기억하기' 운동 10년…다짐 전환점
장성구 전 대한의학회장 (경희대 명예교수)ⓒ의협신문
장성구 전 대한의학회장 (경희대 명예교수)ⓒ의협신문

여름이 푹푹 뜸 들어가는 팔월의 진득한 위세는 가을이라는 계절의 도반에게 차츰차츰 내어 주어야 하는 운명의 변곡점이다. 어린 시절 기억의 거미줄 속에 그려있는 8월의 무늬는 초가집 지붕 위에 조롱박 같은 이야기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수채화다.

손꼽아 기다리던 여름 방학은 7월 말에 시작되지만, 마음속의 진짜 방학은 8월부터다. 방학식날 통신표를 받아 들 때면 항상 기분이 언짢았다. 하지만 하룻밤만 자고나면 어느 사이 모든 것을 잊고 쓰르라미 소리 따라 방학이라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방학과 동시에 서울에 사는 또래의 당숙들, 육촌 형제들, 외사촌들이 오래 기다렸던 약속을 지키려는 듯이 한꺼번에 시골집으로 몰려들었다. 열서너 명의 고만고만한 학동들이 방학 내내 새벽부터 밤까지 온 동내를 떼지어 몰려다녔다.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우리 집을 애광원(보육원)으로 착각했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어머니는 사흘 도리로 한번에 400개 정도의 주먹만 한 팥빵을 쪄내셨지만, 빵은 동남풍에 게 눈 감추듯 금방 없어졌다. 보릿짚에 불을 지펴 가마솥에서 빵을 쪄내는 것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힘든 것을 잊고 기뻐하셨다. 어쩌다 주전부리할 먹거리가 생겨 어머니의 빵이 남으면 대소쿠리에 담아 길게 끈을 매어서 우물 속에 두레박처럼 매달아 놓았다. 그곳은 한여름을 나는 훌륭한 자연 냉장고였다. 빵이 먹고 싶으면 줄을 잡아당겨 끌어올리는 아이들이 임자다.

밤이면 넓은 바깥마당에 멍석을 펴놓고 하늘 향해 누워 쏟아지는 별을 보며 미리내 강을 건너 북두칠성을 손가락으로 그려냈다. 숯을 굽는 가마 불은 여름밤의 열기를 더했지만 달려드는 모기떼를 쫓는 제격의 모닥불이다. 생 쑥을 태우는 매캐한 연기 때문에 모기들이 줄행랑을 놓는다. 묵은 왕겨 불에 구어 낸 햇감자와 옥수수는 최고의 밤참이고 간식이다.

재미있는 여름방학 중에도 이틀은 학교에 가야 했다. 소집일이면 학교에 가서 방학 중에 아무 이상 없었음을 담임 선생님께 눈도장을 찍고 학교 청소를 해야 했다. 소집일은 마을 단위로 달랐다. 어린 기억에도 학교 청소 때문에 학동들을 부른 것 같았다. 그리고 광복절 날은 전교생이 등교하여 기념식을 했다. 국민의례가 있은 뒤 "흙 다시 만져 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를 제창하고 만세 삼창으로 기념식이 끝났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은 항상 몸을 비비 꼬면서 지루함을 견뎌내는 연습이었다. 

기념식에 이어서 청년들의 동내 대항 축구대회가 열렸다. 이 축구대회는 시골의 한 면 단위 행사로는 연중 가장 큰 행사다. 수많은 면민이 참여하는 축제였다. 어른들은 열심히 응원하고 아이들은 얼음과자(나무막대 손잡이에 달콤한 얼음덩이를 얼린 얼음과자(ice cake)를 사서 입에 물고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치는 즐거운 날 이였다.

항상 방학숙제가 밀려서 누님이나 형들한테 야단을 맞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의 8월은 일 년 중 가장 바쁘고 설렘에 가슴이 뛰는 달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바라보는 8월은 기쁜 달이 아니고 마음속에서 엄혹함이 밀려드는 우울한 달로 탈바꿈하였다. 우리 힘으로 되찾은 자랑스러운 광복인지, 아니면 남들이 던져준 빵 조각 같은 광복인지를 생각해 본다. 즐거워해야 하는 날인지 부끄러움을 되씹어야 하는 날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광복절 기념식에서 국기에 경례하며 즐거워해야 할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할지 당혹스럽다.

광복절을 막 지나 2주 후인 8월 29일은 온 겨레가 절통해야 하는 통한의 국치일이다. 오천 년 역사에 단 한 번 극한의 수치스러운 날이다. 부끄러운 날이라서 그런지 대부분 국민은 이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억을 안 하는 것인지 역시 판단이 서지 않는다. 기억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국민뿐 아니라 정부나 사회 각계각층도 마찬가지다.

국치일에 대한 국민과 국가사회의 인식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수치스런 좌절을 맛본다. 국치일 기억하기 사회운동을 벌여온 지도 이미 10년을 바라본다. 이 운동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많은 사람은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귀찮고 쓸데없는 운동을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이냐 하는 의구심을 갖고 바라보았다. 

나이가 들어 지쳐가는 면도 있고, 이제는 더는 주위로부터 이상하고 쓸데없는 일이나 하는 주책없는 늙은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눈치가 보인다.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지만 입을 다물고 지나기로 다짐해 본다.

하지만 올해 국치일에도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손자와 함께 조기를 달 것이다. 한량없이 부끄러운 국치일을 되새겨 자긍심과 떳떳한 다짐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기회의 날'로 바꾸고 싶다.

이 여름의 8월에 걸어보고 채워야 할 기대감이다.

2022년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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