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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병원 직원·가족 진료비 감면 위법 아냐"
대법원 "병원 직원·가족 진료비 감면 위법 아냐"
  • 송성철 기자 medicalnews@hanmail.net
  • 승인 2022.04.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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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유인행위 해당하려면 영리 목적 인정돼야...본인부담금 감면 '무죄'
항소심 "본인부담금 감면 '사적 자치' 영역...진료비 전액 받아야 할 의무 없어"
대법원 전경. ⓒ의협신문
대법원 전경. ⓒ의협신문

의료기관이 복지 차원에서 직원이나 가족의 진료비 본인부담금(급여·비급여 포함)을 감면해 주는 행위는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최근 병원 직원과 가족들의 진료비 중 본인부담금 일부를 할인, 환자 유인행위 등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병원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 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의료법 제27조 제3항 위반죄 성립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무죄를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현행 의료법 제27조 제3항에는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 알선, 유인하는 행위 및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 처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환자의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개별적으로 관할 시장·군수·구청장의 사전 승인을 받아 환자를 유치하는 행위와 국민건강보험법 제109조에 따른 가입자나 피부양자가 아닌 외국인(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제외한다)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행위는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번 대법원의 본인부담금(급여 포함) 감면에 관한 판결은 '비급여' 할인 및 면제를 위법한 행위로 보지 않은 헌법재판소 결정(2009헌마55/2017헌마1217)과 대법원 판결(2007도10542/2010도6527)에서 더 나아가 '급여' 부분까지 감면 범위를 확장한 첫 판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A병원장은 직원 복지 차원에서 지난 2014년 7월 21일부터 2019년 5월 23일까지 A병원 소속 의사·직원·가족·친인척·진료 협력 계약을 체결한 협력병원 직원·가족 등을 대상으로 206회에 걸쳐 본인부담금 400여 만원을 할인해 줬다. 

관할 보건소는 2019년 A병원이 의료법 제27조 제3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에 소개, 알선·유인했다는 혐의로 형사 고발했다. 검찰은 의료법을 위반했다며 벌금 70만원의 약식 명령을 내렸다. 

A병원장은 검찰의 약식명령에 불복,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1심 법원은 의료법 위반 혐의를 인정, 벌금 70만원에 선고를 유예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A병원장은 항소했다. 

부산지방법원 항소심 재판부(형사 4-3부, 전지환 부장판사)의 판단은 달랐다.

부산지법 항소심 재판부는 "본인부담금 감면 행위가 의료법 제27조 제3항이 금지하는 유인행위에 해당하려면 단순한 본인부담금 감면 행위가 있었다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영리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면서 "특히 의료인의 본인부담금 감면 행위를 금지되는 유인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려면 기망 또는 유혹의 수단으로 환자가 의료인과 치료위임계약을 체결하도록 유도하거나, 환자 유치 과정에서 환자 또는 행위자(일명 브로커)에게 금품이 제공되거나 의료시장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해하는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부산지법 항소심 재판부는 이와 같이 해석한 근거로 ▲요양기관은 요양급여를 받은 자로부터 본인부담금을 초과해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을 수 없을 뿐, 요양급여를 받은 자에게 부담의무가 있는 본인부담금 전액을 지급받아야 할 의무는 없는 점 ▲요양기관은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할 때 요양급여비용 명세서에 본인부담금 및 비용청구액을 기재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에 의해 요양급여비용이 감액될 수도 있고,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으로 지급받은 보험급여 비용은 징수되는 점 ▲의료인이 본인부담금을 감면해 주는 것은 원칙적으로 사적 자치의 영역이라고 해석되는 점 ▲의료법 제27조 제3항은 이를 예외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으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는 점 등을 들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의료인이 본인부담금을 임의로 감면해 주는 것을 허용하면, 결국 요양급여비용으로 전가될 우려가 있다"는 검사의 주장과 관련해 "현행법 체계는 요양급여비용의 적정성 평가, 부정한 비용 징수 절차를 통해 통제하는 것을 예정하고 있을뿐 본인부담금 감면 자체를 금지하는 것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해석되지 않는다"면서 "의료법 제27조 제3항 각호의 예외사유는 영리 목적 유인행위로 인정될 때를 전제로 한 것으로 해당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고 바로 영리 목적 유인행위로 의제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본인부담금 감면에 따른 유인행위를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으며, 의료기관이 자의적 기준에 따라 감면 대상과 범위를 정하게 되면 사실상 의료시장의 근본 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검사의 주장에 관해서도 "A병원에서 마련한 감면 대상 범위가 감면 대상이나 실제 감면받은 횟수 등을 고려할 때 의료시장의 근본 질서를 뒤흔들 정도에 이른다고 볼 증거는 없다"며 "일부 감면이 감면 대상에 대한 감면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있으나 피고인들의 공휴일 착오 미수납 주장을 배척할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가들만으로는 피고인들의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본인부담금을 할인해 준 행위가 영리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부족하다"면서 벌금 70만원(선고유예)을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A병원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병원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지 차원에서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감면해 주는 행위는 영리 목적의 환자 유인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최초의 판례"라면서 "의료기관이나 의료인들은 이 판례를 근거로 향후 억울한 사법처벌과 행정처분 등을 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낸 A병원장은 "처음에는 검찰의 약식명령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직원 복지를 위해 진료비 감면을 시행하고 있는 대다수 의료기관들이 사사건건 행정기관이나 민원인들에 의해 고소·고발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끝까지 법정 투쟁을 했다"면서 3년 동안 힘겨운 소송에 나선 소회를 밝혔다.

B종합병원 관계자는 "지금까지 일선 보건소와 경찰, 검찰, 법원 등은 의료기관 또는 의료인의 환자에 대한 본인부담금 감면 행위를 일률적으로 영리 목적의 환자 유인행위로 인정해 형사 처벌과 함께 행정처분을 해 왔다"라면서 "직원 복지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진료비 감면으로 인해 (처벌을 받지 않을까)전전긍긍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반겼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비급여는 물론 급여를 포함한 진료비 본인부담금 감면 행위를 환자 유인행위라며 의료법 위반죄를 엄격히 적용해 온 하급심 법원과 검찰·경찰·행정당국의 처벌 관행에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과 관련 전성훈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는 "해당 판결은 '본인부담금의 임의 감면을 허용하면 결국 요양급여비용으로 전가될 우려가 있다'는 논리로 다른 영역들과 달리 의사의 사적 자치를 통제해 온 의료 영역에도, 이제는 원칙이 적용돼야 함을 선언한 것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사무장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의 사기죄의 성립 범위를 축소한 2018년의 대법원 판결, 의사가 개설한 1인 1개소법 위반 병원의 경우 요양급여비용에 대한 부당이득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본 2019년의 대법원 판결,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의사는 노동관련법령상 사용자가 아니라고 본 2020년의 대법원 판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덧붙였다.

전 법제이사는 "'의료의 특수성'을 강조해 다른 영역과 달리 의사에게 강한 규제를 해 오던 제도나 관행에 대해 대법원은 수년 전부터 '의사나 의료에도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연속해 던지고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전향적인 대법원의 태도 변화는 환영할 만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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