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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06:00 (금)
"기회는 이때?" 계속되는 약계 성분명 처방 시도, 역풍 가능성
"기회는 이때?" 계속되는 약계 성분명 처방 시도, 역풍 가능성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22.03.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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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조제 활성화·전자처방 전달시스템 등 관철 열망 지속
최근 보발협 회의서도 '대체조제 사후통보 한시적 면제' 촉구
의약분업 재평가·원내조제 허용 등 대응 나선 의료계 '반격'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 ⓒ의협신문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에 따른 코로나19 확진자 급증, 그리고 방역당국의 '셀프 관리' 기본 체계 전환에 따라 감기약 품귀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당 문제를 빌미로 '성분명 처방'을 도입하려는 약계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성분명 처방 정면 돌파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자, 대체조제 활성화를 통한 우회적 방식의 성분명 처방 시도가 부지런히 나오고 있다.

약계의 성분명 처방에 대한 열망은 역사가 깊다. 약사회를 비롯한 약계는 의·약 분업제도 이후,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 활성화에 대한 의지를 피력해 왔다.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특정 의약품의 상품명을 처방하는 대신 의약품의 성분명을 적도록 하는 것으로, 약사가 해당 성분과 함량을 확인한 뒤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구체적 의약품 선택권을 의사가 아닌 약사에게 달라는 얘기다.

현행 제도 안에서도 동일 성분의 의약품 대체조제는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의사에 대한 고지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대체조제하려는 사유 및 내용을 전화·팩스, 컴퓨터통신 등으로 의사에게 보내고, 동의를 받아 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이행률이 적다는 것이 약계의 설명이다.

실제 약국의 전체 청구건수 대비 대체조제 청구건수로 산출한 대체조제율은 지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평균 0.24%에 그쳤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성분명 처방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가장 우려하는 점은 제네릭약과 오리지널약의 차이에 따른 효과·부작용 예측이 어려워 질 거라는 것. 제네릭약의 경우, 인체 흡수 정도가 오리지널 대비 80∼125% 범위 안에 들기만 하면 허가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제네릭 제도의 특성에 따라, 태생적으로 오리지널약과 제네릭약은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의료계 입장. 성분명 처방이 이뤄질 경우, 이러한 차이점에 대한 고려보다는 재고의약품 처리에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의견이다.

전 세계적으로 제네릭의 한계로 인해, 의사에게 의무적으로 성분명 처방을 강제하는 국가는 드물다는 점 역시 반대 근거로 짚었다.

의료계의 우려 등 예상되는 문제점 탓에, 관련 법안들은 일제히 불발되고 있는 상황.

그런데 최근 오미크론으로 인해 코로나19 재택치료 환자가 폭증했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약계는 틈을 비집고 나왔다.

[이미지=pixabay] ⓒ의협신문
[이미지=pixabay] ⓒ의협신문

지난해 코로나19 백신 접종 초기, 방역당국은 대표적인 부작용이었던 '발열'을 대비해 발열 증상이 나올 경우  '타이레놀'을 복용하라고 안내했다. 이에 따라 타이레놀을 구비하려는 수요가 폭증하면서 품귀현상이 벌어졌다. 추후 다시 '아세트아미노펜 제제 제품'을 복용하라는 권고 수정을 진행했지만, 품귀현상은 한동안 지속됐다. 또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 따라, 감기약 부족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약사회는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 것과 관련, 성분명 처방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정 상품이 아닌 약국에서 구비하고 있는 약을 활용해 부족 현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약계는 성분명 처방을 정면 돌파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다양한 방식의 '대체조제 활성화' 방안도 함께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체조제 사실을 의사가 아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국가기관에 보고할 수 있도록 해 약사 판단에 따라 일사천리로 대체조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는 것. 결과적으로는 우회적 방식의 성분명 처방을 진행하려는 의도다.

약계의 시도는 정부와 의약계 단체 대표들이 참여 중인 보건의료발전협의체에서도 이어졌다.

대한약사회는 3월 22일 열린 제29차 보발협 회의에서 코로나19 환자 급증에 따른 감기약 공급부족 개선을 위한 논의하던 중 '대체조제 사후통보 한시적 면제'를 요청했다.

약사회는 "의약품 공급 문제 해소를 위해 처방일수 조정, 의약품 균등 공급, 동일성분·동일효능군 조제 장려 등 보완 방안이 필요하다"면서 "코로나19 확진자 원외 처방 시 대체조제에 따른 사후통보 의무를 한시적으로 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시적'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지만, 기존 약계의 행보를 봤을 때 해당 조치를 기회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한시적 전화 상담 및 처방의 사례를 봤을 때, 한시적 조치로 끝나지 않을 위험성도 커 보인다.

약계는 보발협 회의를 겨냥, 회의 당일 아침자를 엠바고로 한 '한시적 성분명 처방 촉구' 성명도 내놨다.

서울시약사회 24개 분회는 3월 22일 성명을 통해 "제약회사에 대한 생산 독려, 도매 유통 질서 확립과 함께 대체조제 간소화, 동일성분 변경조제 간소화, 한시적 성분명 처방 등도 즉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회의 석상에서 "기본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며 적극 반대 입장을 폈다.

두 단체는 "의약품 공급 부족 문제 해결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의사가 환자의 복용 의약품을 확인하기 위한 제도인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정리했다.

해당 회의에 참석한 이상운 의협 보험정책 부회장은 "국가적 감염병 사태라고 해서 의료계 합의 없이 법률에 어긋나는 일을 무리해서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며 "특히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기회는 이때다'라는 식으로 밀고 들어가선 안 된다는 점을 회의에서 강력 어필, 불발됐다"고 전했다.

약국 전경 ⓒ의협신문
약국 전경 ⓒ의협신문

성분명 처방의 우회적 방식을 위한 기본 토대인 '전자처방전 사업' 추진도 이어지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자에 정책제안서를 전달, 정부가 주도하는 '공적 전자처방 전달시스템 구축'을 정치권에 요구했다. 대체조제를 전자 방식으로 제출·전송하도록 해, 결국에는 대체조제 활성화·성분명 처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의도다.

이는 2020년 9월 발의된 약사법 개정안과도 이어진다. 2020년 9월 2일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약사법 일부 개정법률안으로, 2021년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5월 보건의료발전협의체 등에서 논의했지만 불발됐다.

동 법안은 약사가 대체조제후 의사·치과의사에게 사후통보하는 방식 외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통보하는 방식을 추가하는 것으로, 심평원이 해당 처방 의사·치과의사에게 알리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의료계는 이 법안과 관련, '심평원' 개입의 부당성이 크다고 짚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지난해 10월 연구 보고서에서 "사후통보 과정에 심평원이 개입할 경우, 의사-약사 간 직접 소통은 단절되고, 통보 내용의 진위 여부에 대한 오해·불신도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며 "제3기관의 개입으로 통보기한이 연장되면서 대체조제 통보제도의 취지는 희석되고 결국 환자 건강을 위협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또 "심평원에 사후통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약사가 의사에게 사후통보하는 방식을 사문화시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대한내과의사회 역시 3월 24일 반대 성명을 내고, 공적 전자 처방 전달시스템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냈다. 개인의료정보 유출 위험성이 높고, 2000년부터 시행한 의약분업 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한다는 이유에서다.

내과의사회는 "공적 전자 처방 전달시스템은 민감한 개인 의료정보 유출의 위험성이 다분한 불완전한 제도"라면서 "의사와 약사 간 상호 직역 존중을 전제로 한 의약분업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가능성이 다분한 공적 처방 전달시스템 사업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삼은 약계의 다양한 '성분명 처방' 시도에 의료계 역시 '한시적 원내조제'와 '선택분업제'를 제시하며 반격에 나섰다.

의협은 3월 24일 입장문에서 "환자를 직접 진료하고 적정한 의약품을 처방하는 과정에서 그 치료효과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담당의사가 복제의약품의 약효를 설명해 주고 그에 따라 환자가 의약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또 "국가 재난사태에 준하는 비상시기에 국민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의료기관에 의약분업 적용 예외를 인정해 한시적으로 원내조제를 허용해줄 것을 강력히 건의한다"며 "현행의 잘못된 의약분업 제도의 재평가를 통해 의사의 처방에 대해 환자들이 의약품의 조제 장소와 주체를 선택하는 선택분업 제도 시행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실제 의약분업 제도의 평가 필요성은 대선을 앞둔 상황 속 당선인 캠프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국민의힘 박은철 선대위 보건바이오의료정책분과위원장은 대선을 한 달 여 앞둔  2월 11일 보건복지부 전문기자협의회 주최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 초청 보건의료정책 토론회'에서 "의약분업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가져왔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다가오는 2025년에라도 의약분업 평가가 이뤄지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대체조제 활성화에 대해서도 "얼마 전 발사르탄 불순물로 인해 난리를 겪었다. 약효 동등성 평가가 있어야 대체조제 활성화에 관한 논의를 할 수 있다"면서 "동등성 평가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대체조제 활성화는 어불성설"이라고 선을 그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한 '성분명 처방' 도입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약계의 논리가 오히려 의약분업에 대한 재평가 필요성, 그리고 원내조제 허용으로 흐르는 역풍으로 작용할 지에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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