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원격의료(1)- 복지국가의 이해로부터
머나먼 원격의료(1)- 복지국가의 이해로부터
  • 윤인모 가톨릭의대 외래교수(예방의학교실 ·의협 기획이사)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3.11 06:0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협신문
ⓒ의협신문

기술은 이미 가깝지만, 실행은 멀고 먼 원격의료이다. 
이미 육성 준비가 된 정부로서는 의사들의 원격의료 반대가 매우 항상 곤혹스럽다. 이제는 사회의 원격의료에 대한 요구도는 높아지고 있다. 의사들의 합리적 반대는 환영받지 못함을 넘어 이제는 비난의 조짐도 보인다. 진단을 제대로 해야 처방이 나온다. 그 진단과 처방을 연속물로 기고한다.

원격의료는 어떤 목적으로, 어떤 순서로 해야 하는가. 이를 위해서 의료제도를 탄생시킨 복지국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복지국가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의학, 의사는, 최고학문, 선망받는 직업이 되지 않았을 것이며, 국가운영비용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분야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적 국가이론은  학자마다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는 이해에 필요한 세 가지를 설명한다(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저 참조). 

첫째는 국가주의 국가이다, 흔히 전체주의, 파시즘 등의 원조라고 이해해도 될듯하다. 400년 전에 토마스 홉스(1588-1679)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이러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그는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규정한다.

사람들은 자기를 외부로부터 보호해 줄 방어적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의 생존을 위해서 투쟁하게 된다. 생존을 위해서는 어떤 행동도 정당화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인간의 삶을 매우 가혹하도록 이끈다. 먼 과거의 논리가 아니다 지금의 소말리아의 상태가 그렇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은 국가라고 하는 존재와 사회계약을 맺는다. 토마스 홉스의 사회계약은 국민과 국가 간의 계약이다. 개인은 자유와 권리를 일정 정도를 포기한다. 대신 국민을 만인의 만인의 투쟁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그 대신에 평화와 생명, 안전을 보장해 주는 계약이다. 

둘째는 자유주의 국가관이다. 이 시대 산업혁명 등에 의해 발생한 신진시민계급 등은 자유를 갈망하게 된다. 이때 출현하는 것이 자유주의 국가관이다. 자유주의 역시 국가가 치안과 안보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가 제약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 제약에 엄격한 제한을 준다. 대신 시민의 자유를 넓혔다. 이러한 자유를 보호하며 이를 정치적 제도로 만들어내고자 노력한 사람이 있다. 존 로크(1632-1704) ,애덤 스미스(1723-1790), 존 스튜어트 밀(1806 -1873) 루소(1712-1778), 소로(1817-1862) 등이 대표적인 학자이다.

평화와 안전뿐 아니라 정치,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정신적 자유까지 주장하였다. 국가의 주인이  통치권자가 아닌 시민임을 주장하고, 주권 재민과 법치주의를 주장한다. 이러한 내용은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부분 헌법의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정치적 혁신 이외에 경제적 부분에서도 혁신을 한다. 시민이 주권자가 되므로 시민의 힘을 늘리고 부를 늘리는 방법이 제안된다. 애덤 스미스(1723-1790)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분업이라고 하는 시민의 부의 창출 방법에 관해서 기술한다. 나라의 부는 군주의 부가 아니고 국민의 부이므로 이에 노동생산성을 증진시켜 부를 축적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이기적인 개인의 욕심을 사회의 발전으로 변화되는 방법으로서 분업을 제시하였고,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조정된다는 자유주의 경제의 토대를 세웠다.

여기서 우리가 일차적으로 알아야 하는 공공의 의미가 나온다. 시장에서 소위 '돈이 안되 는 일, 돈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일은 누가 하는가?'의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일을 공공재라고 하고, 스미스는 이러한 공공재는 국가가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는 공산주의의 출현이다. 이 시기에 빈익빈 부익부 및 시민의 생존에 문제(절대적 빈곤)가 발생되면서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공산주의가 나오게 된다. 

이를 촉발한 것은 산업혁명이다. 생산수단은 토지가 아닌 기계로 이동한다. 기계가 설치된 공장은 일반인도 소유가 가능했다. 그리고 생산능력도 토지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였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을 통한 제조가 부의 원천이 되면서 토지 소유자보다 강한 부를 축적한 이들은 사회의 주류가 되기 시작한다. 이들은 자유민주 산업사회를 추구했다.

이러한 사회를 유지하려면 생산수단을 가동하기 위한 노동자(결국은 임금노동자)가 필요했다. 공산주의는 이 구조를 불평등하게 보았다. 생산의 주체는 노동이지만 그 결과물은 생산수단의 소유자로 가는 이원적 구조를 지속하게 하는 것이 국가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마르크스는 필연적으로 사유재산과 계급을 철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민주주의 쟁취로 표현하였다. 국가로부터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통해서 생산수단도 공유화하고 군중에게 생산수단을 돌려주어야 하며 계급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이미 반박의 이유가 없다. 이들이 생각한 공산주의는 이미 없어졌다. 남아있는 공산주의의 대표격인 중국도 실용경제라는 이름으로 이미 기존 공산주의의 기초를 이룬 내용에서는 많이 멀어졌다. 적어도 경제에서만큼은 그렇다. 경제에서는 중국을 공산주의가 아닌 국가자본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세가지 이념이 각축하면서 복지국가의 이념이 세워진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