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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칼럼 더 기울어지는 의료분쟁조정법
논설위원 칼럼 더 기울어지는 의료분쟁조정법
  • 김영숙 기자 kimys@doctorsnews.co.kr
  • 승인 2022.01.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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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의료분쟁시 중대의료사고에만 피신청인의 동의없이 자동개시되던 것을 모든 의료사고로 확대하는 법안이 발의돼 의료계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의협신문

간호법으로 의료계가 떠들썩한 가운데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에 관한 법률(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세밑에 조용히 발의됐다. 

사실 의료분쟁조정법은 대한의사협회가 '안정적인 진료환경 구축'이라는 의제로 1988년에 본격적으로 국회와 정부에 법 제정을 건의하면서  1994년에 정부 입법안으로 국회에 제출됐다.

이후 몇차례 의원입법안이 발의됐으나 당사자간 혹은 부처간 이견조정에 번번이 실패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다가 2011년 4월 7일 법률안이 제정됐으니 23년이란 긴 제정의 역사를 갖고 있다.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2년 4월 8일부터 시행됐으니 법 시행도 벌써 10년째를 맞는다.

의료계의 염원을 담아 발의되고 제정됐지만 의료분쟁조정법은 여전히 미덥지 않은 법이다. 의료분쟁의 위험에 대한 안전핀 역할을 기대했지만, 사회적 논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와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의 법적·제도적 구제에 초점을 두면서 법안의 균형추가 환자 쪽으로 기울어진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법 제정 당시에도 의료계는 한편으론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론 법 시행후 나타날 부작용에 대한 우려 등 양가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첨예한 법률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의사의 입증전환책임이 원고 입증책임으로, 분만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 방안과 형사처벌특례조항(반의사불벌)조항이 추가됐지만 사실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분만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는 무과실 보상방안을 마련했다지만 정부의 부담이 70%에 그쳐 나머지 30%에 대한 부담을 의료기관이 안아야 했으며, 형사특례도 업무상 과실치상죄 중 중상해에 대한 경우는 제외하고 조정성립 및 환자의 불처벌 의사를 전제로 적용하면서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 의료사고감정단의 구성과 권한, 감정서의 원용 문제 등 불합리한 조항으로 의료계의 적극적 협조를 얻어내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의료계의 참여가 제한적이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2016년 난데없이 조정절차를 자동개시하는 법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중재 성과가 낮자 의료인 및 의료기관이 참여하지 않아 조정신청개시율이 낮다는 프레임이 만들어지고, 그 해법으로 '조정절차 자동개시' 가 전가의 보도인양 떠오른 것이다.

마침 가수 신해철씨의 의료사고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개정안은 '신해철법'이란 명명으로 환자쪽의 입장으로 더 기울어졌고, 의료계와의 소통이나 설득 과정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의료계는 중상해범위를 법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울 뿐 더러 조정절차 강제화가 자율분쟁해결의 본질적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이는 묵살된채 사망 또는 1개월 이상 의식불명 등에 해당하는 사안에 대해 피신청인의 분쟁조정 참여를 의무화했다.

이런 의료분쟁조정법이 최근 또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현재 사망·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장애등급 1급에 해당하는 중대 의료사고 발생시에만 피신청인의 동의없이 분쟁조정 절차를 자동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을 모든 의료사고로 확대하겠다는 법안이 추진중이다. 

대표발의자인 더불어민주당 강병원의원은 2017∼2020년 의료분쟁 신청 건수 총 1만 48건 중 중대 사고로서 의료분쟁조정법의 적용을 받은 사례는 19.3%에 불과하고, 중대 사고에 미치지 못한 일반 사고 8112건 가운데, 병원의 조정 거부로 자동 각하된 경우가 47%에 이른다며 모든 의료사고의 자동 조정 개시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의료분쟁조정법의 과거에서 보듯 누구보다 의료분쟁으로 부터 자유롭기를 원하는 것은 의료인이다. 의료인이 소극적인 이유를 면밀히 살펴보지 않은채 자동개시 전면 강제화만이 해법인 양 법을 추진하는 것은 큰 오판이다.

그동안 이 법이 원래의 취지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의료분쟁조정법 관련 규정들이 한쪽에 치우침으로써 의료계가 신뢰하기 어려웠던 것이 원인이다. 

그런데도 피신청인이 조정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까지 제한하는 과도한 규제를 내놓은 이해하기 힘들다. 일률적으로 조정개시를 한다해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소송으로 이행될 개연성이 높아 '사회적 비용'을 줄이겠다는 원래 취지와 반대로 오히려 그 비용이 대폭 증가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금도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인 외과계가 모든 의료사고로 자동개시를 확대할 경우 조정절차 진행에 대비해 방어진료에 나설 경우 그 피해를 누구 입을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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