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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모든 의료사고 시 분쟁조정 '강제 개시' 뭐가 문제일까?
집중분석 모든 의료사고 시 분쟁조정 '강제 개시' 뭐가 문제일까?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22.01.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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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전문가들 "자동개시 요건서 과실과 무관한 사망 제외 필요" 강조
조정각하·조정불성립 비율 증가로 이어져…인적·물적 자원 낭비 초래
개정안은 불신사회로 가는 지름길 안내…의료분쟁조정법 제정 목적 의심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분쟁조정 절차를 강제로 개시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도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연사 등 '사망'의 종류와 상관없이 '사망'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조정이 개시되는 것과, 모든 의료분쟁 사건에 대해 조정절차 자동개시가 늘어날 경우 조정불성립 비율만 높아지고, 불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의 낭비가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22년 1월 4일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국회의원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 주요 내용은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분쟁조정 절차를 강제로 개시하는 것이다.

현재는 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등급 1급에 해당하는 중대 의료사고 발생 시에만 의료인의 동의없이 자동으로 분쟁조정 절차를 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법 제27조 제9항)

또 조정신청서를 송달받은 피신청인이 조정에 응하고자 하는 의사를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통지함으로써 조정절차를 개시하고, 피신청인이 조정신청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조정절차에 응하고자 하는 의사를 통지하지 않은 경우 중재원장은 조정신청을 각하할 수 있다.(법 제27조 제8항)

이 밖에 중재원장은 이미 해당 분쟁조정사항에 대해 법원에 소가 제기된 경우, 이미 해당 분쟁조정사항에 대해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이 신청된 경우, 조정신청 자체로서 의료사고가 아닌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조정신청을 각하할 수 있다.(법 제27조 제3항)

강병원 의원, "의료사고 피해자 권리 보호" 개정안 발의 이유 밝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조정신청서를 송달받은 피신청인이 조정에 응하고자 하는 의사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통지함으로써 조정절차가 개시'되도록 하는 조항을 없애고, '중재원장이 조정신청을 받은 경우 지체없이 조정절차를 개시'토록 변경했다.

다만, '조정통보를 받은 피신청인이 14일 이내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의신청을 받아들이면 신청을 각하'토록 했다.

강병원 의원은 "의료사고 입증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는 현실에 맞춰본다면 고소는 피해자에게 너무 어려운 길"이라며 "피해자들이 가장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곳이 중재원이어야 하는데, 현행법으로 많은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신청인의 동의 여부에 상관없이 조정절차를 개시하도록 해 조정 실효성을 제고함으로써 의료사고 피해를 신속·공정하게 구제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개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강병원 의원이 발의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환자 측에서 사망과 관련 조금만 의문이 들어도 의료분쟁조정신청을 할 가능성이 높고, 자율성의 허울을 쓴 조정이라는 이름의 강제조치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만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연사' 등 상관없이 '사망'이라는 이유로 강제조정 "문제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사망'의 종류와 상관없이 피신청인의 조정신청으로 조정절차가 자동으로 개시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봤다.

사망의 종류에는 '질환으로 인한 사망',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 '의료과실로 인한 사망', '외상으로 인한 사망' 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단지 사망이라는 이유로 조정절차가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개시될 수 있다는 것.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의료기관 및 환자 유족 측으로서는 명백한 다른 원인(의료행위와 무관한)을 알고 있거나 부검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사망의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사망'의 원인이 의료기관 측의 과실이라 의심된다면 자동개시요건으로 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망의 다른 원인이 명백하거나(자살, 교통사고 등) 부검이 이뤄져서 의료기관 측의 과실과 무관한 원인임이 이미 밝혀졌다면, '사망'이라 하더라도 자동개시 요건에서 제외하도록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연희 변호사(법무법인 의성)는 "환자 측으로서는 조금의 의문만 들어도 조정신청을 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인과관계나 과실이 부정되는 사례도 늘어날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로 인해 불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의 낭비가 초래되고, 분쟁의 조속한 종결이라는 순기능을 수행하는 조정절차가 오히려 다투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까지 분쟁을 촉발시키는 역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라며 걱정했다.

언론중재위·환경분쟁조정위·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제도와는 다르다
강병원 의원은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언론중재위원회,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및 한국소비자원 등의 분쟁조정제도는 피신청인의 동의여부와 관계 없이 조정절차가 자동개시되고 있다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

이와 관련 법률 전문가들은 분쟁을 조정하는 점만 유사할 뿐, 의료분쟁조정과는 분쟁이 발생한 원인관계가 전혀 다르다는 점을 짚었다.

김연희 변호사는 "의사와 환자간의 의료계약은 그 성격이 위임계약으로서, 당사자의 신뢰를 전제로 한다"면서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분쟁이나, 매매계약처럼 상대방이 누구인지 별 상관 없는 계약에서 발생한 분쟁들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소송이든 조정이든 이름이 그 무엇이든 모두 다 분쟁의 한 형태인데, 이것이 증가한다는 것은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의사와 환자간의 의료계약의 근본적인 틀을 무너뜨리게 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는 "이번 개정안은 중재가 아닌 '조정' 절차에 대한 것으로서, 조정은 제도의 성격상 양 측의 의견을 조율해 합의점을 찾는 절차이기 때문에 반드시 절차를 강제로 개시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및 한국소비자원 조정제도와 의료분쟁조정절차는 다루는 대상이 다르다는 것도 강조했다.

정 변호사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환경분쟁조정법), 한국소비자원 조정제도(소비자기본법)는 조정신청이 있는 경우 절차를 바로 개시하도록 되어 있다"며 "이들 조정 역시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성립하지는 않고, 양 당사자가 모두 조정안에 동의를 해 조정조서를 작성할 때에만 조정이 성립하고, 조정이 성립될 경우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부여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분쟁조정절차는 의료사고를 내용으로 다루며 의료행위라는 전문적인 영역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 측이 제출하는 진료기록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고, 환자 주장 내용에 대해 의료기관 측이 전문가적 입장에서 어떤 견해가 있는지 청취할 필요도 있다"며 "의료기관 측이 조정절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 제대로 된 조정안이 도출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조진석 변호사는 "의료분쟁의 경우 개별 환자의 신체적 상해에 관한 것으로 공익적인 측면이 있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피해의 특성상 가해행위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고 보기도 어려워 신속한 해결이 필수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설령 소비자원과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예가 동일하더라도 소비자원도 의료분쟁에 관한 분쟁해결을 하고 있으므로, 구태여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절차까지 모든 신청 건에 관해 자동 개시가 되도록 해 중복되는 절차를 마련한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조정개시율 증가, 조정각하·조정불성립 비율 증가로 이어져
최근 5년간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자료를 보면 자동개시는 평균 500여건이다. 반면, 전체 조정성립률은 자동개시 실시 후 2017년 50.25%, 2018년 53.16%, 2019년 57.74%, 2020년 44.31%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모든 의료사고에 대해 조정절차 자동 개시가 되면 전체 성립률은 더 낮아지지 않을까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체 성립률이 지속해서 떨어지는 것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운영 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반증한다. 감정이나 조정절차에서 공정성이나 객관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진석 변호사는 "업무수행경험으로 볼 때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의 절차 진행이 의학적인 분석결과 제시와 조정금액 산정과 관련해 합리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고, 이러한 점이 자동개시 사건의 조정 성립률을 낮추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의료분쟁 사건에 관해 조정절차 자동개시를 할 경우, 조정절차 자동개시 규정으로 인해 조정개시율은 증가하겠지만, 정부나 입법자가 홍보하는 내용이나 시민들의 믿음과는 달리 조정각하와 조정불성립 비율만 높아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또 "이는 적은 비용으로 의료분쟁의 조기해결을 도모한다는 의료분쟁조정제도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연희 변호사는 "모든 의료사고에 대해 자동개시가 되면, 환자측으로서는 조금의 의문만 들어도 신청을 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고, 그러면 당연히 인과관계나 과실이 부정되는 사례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그로 인해 불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의 낭비가 초래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분쟁의 조속한 종결이라는 순기능을 수행하는 조정절차가 오히려 다투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까지 분쟁을 촉발시키는 역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법률개정안은 불신사회로 나가는 지름길을 안내해주고 있는 것 같다"며 "더구나 분쟁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현재 인력으로 수행해내기 어려운 정도로 증가하게 되면, 이를 감당할 전문성을 지닌 인적자원을 충족할 수 있을지 여부와 쏟아지는 사안에 대한 감정과 조정이 충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여부가 매우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무분별한 조정개시로 인한 비용만 증가…국민 혈세 낭비 우려
무분별한 조정개시로 인한 비용 증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정혜승 변호사는 "조정신청 시 모두 조정절차가 진행하도록 하는 입법이 이뤄지더라도 의료기관 측에서 조정안에 동의하지 않는 한 조정은 성립되지 않을 것이므로, 결론적으로는 현재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절차 진행 비용은 당사자가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 국가의 비용으로 부담되며, 일부 비용(손해배상 대불제도 비용)은 의료기관도 일정 부분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즉, 절차가 효율적으로 진행되지 않음에도 조정신청 사건 수만 증가한다면 이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제대로 된 조정안 도출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

정 변호사는 "의료분쟁은 성격상 의료기관 측이 적극적으로 의료행위의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왜 그러한 진료가 이뤄졌는지 의견을 제시해야만 진료과정의 문제점 유무를 밝힐 수 있는데, 조정절차 진행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조정절차를 무리하게 진행시킬 경우 의료기관 측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어려워 효율적인 조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가 원활히 해결되기보다는 비용만 낭비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차라리 현행과 같이 함께 의료기관이 조정에 응하는 경우만 사건을 개시한다면 의료분쟁의 실질적인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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