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사태와 의료인 소진(Burnout)
COVID-19 사태와 의료인 소진(Burnout)
  • 안덕선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전 고려의대 교수·의인문학교실)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1.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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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희생정신·무급 노동 환경…초과 근무·소진 '일상 다반사'
인적 자원 과제 해결 앞서 근로 환경 개선·노동 정의 구축해야
안덕선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의료인은 타 직종과 비교해 과로나 질병으로 인한 결근율이 높을 수 있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영국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는 이미 COVID-19 이전에 NHS 종사자의 질병 결근율(Sickness Absence Rate)이 이미 다른 직종 평균의 두 배라고 보고했다. 시간을 다투는 구급대(Ambulance Service) 종사자의 결근율은 7%가 넘는다고 한다. 결근의 가장 큰 원인은 불안·우울·스트레스·정신과적 문제 등으로 전체의 20%를 초과한다.

이런 사실은 영국보건서비스의 운영과 치료의 연속성 측면에서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한다. 2020년 NHS 설문조사에서 직원의 56.6%가 몸이 좋지 않은데도 출근한다고 응답했다. 아마도 관리자, 동료 또는 자기 스스로 결근에 대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직장 출근에 대한 불안감·압박감·소진(Burn out)을 보이는 회원을 보호 하려는 영국의사회(BMA)의 정신건강지원서비스(Mental Health and Wellbeing Support Services)는 2020년 3∼5월 한 분기에 약 40% 증가 현상을 보였다.  

현재 거의 모든 나라에서 COVID-19로 인한 의료업무의 폭증으로 심각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부족한 노동력은 근무자의 건강, 웰빙 및 사기를 더욱 심각하게 악화시킨다. 유럽은 COVID-19로 동료와 환자를 잃은 의사들이 많다. 감염병 최전선에 근무하는 이들에게 자신과 가족에 대한 생명의 위협도 실제적이어서 직무에 대한 스트레스도 매우 심각하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COVID-19로 사망한 의료인은 매우 적다. 의료인으로 산다는 것은 비록 몸이 좋지 않아도 출근해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병원에는 훨씬 더 위중한 환자가 많고, 의료가 갖는 도덕적 의무나 책임감, 그리고 동료 간 관계나 직무평가에 대한 염려 등으로 피곤한 마음과 몸으로 의료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COVID-19는 다른 환자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공공의료가 잘 발달 된 영국은 COVID-19 대응 때문에 일반적인 진료량의 감소와 전문의 진료를 위한 환자 대기시간이 문제가 되고 있다. 2021년 10월 기준으로 영란(英蘭·England)에서 1년 이상 전문의 진료대기는 2019년에 비해 무려 123배 증가했으며, 2020년 9월 웨일스 지역은 36주 이상 대기 한 환자를 치료한 사례가 518% 증가했다고 한다. 

현재 영국(英國·United Kingdom) 전역에서 전문의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가 무려 4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더 많은 환자가 있을 것이라고 추산된다. 공공의료가 잘 발달 된 영국에서 전문의 진료를 위한 장기간 대기는 항상 문제가 됐다. 

근로 환경이 우리나라보다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영국도 감염병 사태로 인한 유노동 무임금 사태도 보고되고 있다. 영국 NHS의 2019 설문조사에서 이미 영국 전역에서 NHS 근무자의 56%는 평균 주당 5시간 이상 무급 근로를 했고 9%는 6시간에서 10시간의 무급 근로를 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COVID-19 사태를 대처하는 방식에 봉사와 희생정신의 무급 노동은 정상적 대처 방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과로가 장기화하면 선의는 금세 사라지는 것이 인간이 본성이다. 감염병 대처라는 위험한 직무에 기본적인 근로 조건도 지키지 않는다면 의료인이 감염병 현장을 이탈하려는 추세는 예측 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속성상 자신과 가족에게 심각한 위해를 미칠 수 있는 감염병 현장보다는 위험도가 낮고, 안전한 직장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초과 근무나 소진도 의료문화의 일상이 됐다. 현 정권은 기회만 되면 의료제도에 대한 건설적 비판보다는 의사에 대한 부정적 모습을 조명하고, 해결책으로 공공의료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의료 공공성 강화를 주장하는 우리나라의 정책 입안자나 정권은 공공의료가 강한 영국에서 우리나라보다 더 근로 환경이 좋은데도 왜 의사들이 조기 은퇴를 선호하는지도 잘 살펴봐야 한다. 자신들이 하는 직무가 힘들고 위험하며,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적절히 보상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조기 은퇴나 전직 혹은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로 보인다. 

단순히 의과대학이나 간호대학을 많이 만든다고 해도 만성적인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 경험했다. 

무엇보다도 의료현장의 근로 환경 개선이 우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소진을 대하는 인식과 근로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아직 미진해 보인다. 공공의료 확대·필수 의료인력 양성·의료전달체계 확립·일차진료 활성화 등의 단골 과제는 각기 별도의 과제가 아닌 하나의 커다란 연속적이고, 포괄적인 인적 자원 과제다. 가장 기본적인 근로 환경을 확보하고. 노동 정의를 구축하지 않는 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들어 보인다.

전공의 소진도 익히 잘 알려진 사안이다. 선진적인 전공의 교육은 소진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여러 가지 제도와 조치로 전공의 근무 환경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소진은 단순히 전공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전공의에게 직무에 대한 압도감이나 좌절·무기력·우울증이 나타나면 이를 위한 조치로 한 달이나 그 이상의 기간도 임상 현장을 떠나 자가 학습 기간을 허용하는 제도도 등장했다.

의료의 기본 속성상 삶의 질에 대한 가치 부여는 바로 의료에서 나와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의료문화는 오히려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소진은 정부의 법적 개입이나 단순한 임금 상승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매우 복잡하고 복합적인 의료문화의 변화가 요구되는 어려운 일이다. 소진은 전문직 스스로 자율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난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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