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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백인백색 "의학의 RCT처럼 사회실험을 하는게 제 일이죠"
백인백색 "의학의 RCT처럼 사회실험을 하는게 제 일이죠"
  • 박은동 의협신문 명예기자(연세의대 본과 3년) edpark97@yonsei.ac.kr
  • 승인 2021.12.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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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출신 보건경제학자 김현철 교수

본과 1학년 시절 진로 특강시간이었다. 의무 참석인데다 흥미가 가는 강의도 아니었기에 잠자코 듣던 중 '우리 학교(연세의대)를 나와서 경제학 교수를 하는 선배가 있다'는 말이 귀에 꽂혔다. 요새 웬만한 분야에서 의사를 찾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의사 출신 작사가도 있고, 전업 유튜버도 있다. 하지만 '의사 출신 경제학 교수'는 신선함을 넘어 충격적이었다. 의사가 경제학을 공부한다는 것도 놀라운데, 교수라니.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다 싶어 호기심이 발동했다. 기회만 된다면 한 번 만나서 이것 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지난 10월, <백인백색> 인터뷰 대상을 고민하던 중 문득 2년 전 특강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구글링 끝에 알아낸 이메일 주소로 무작정 연락을 했다. 인터뷰가 성사되기는 할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김현철 교수님(홍콩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 및 정책학과)은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주셨다. 기자는 학교 선배를 만난다는 생각에 인터뷰 전날부터 바짝 긴장해 있었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화상으로 만난 교수님은 무척 쾌활하셨다. 서두가 길었다. 이제 의사 출신 경제학자,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김현철 교수를 만날 차례다. 

 

김현철 교수(홍콩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 및 정책학과)ⓒ의협신문
김현철 교수(홍콩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 및 정책학과)ⓒ의협신문

Q.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보건경제학자 김현철입니다. 2002년에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습니다. 코넬대학교를 거쳐 지금은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Q. 의사 출신 경제학자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교수님의 연구를 간단히 소개해 줄 수 있으신가요?
저는 보건경제학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방의학의 의료관리학 분야와 접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및 노동분야까지 다루고 있어 '인적 자본'에 대한 연구를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흔히 '인적 자본'이라고 하면 교육 수준을 떠올리곤 하는데, 실은 개인의 건강 수준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가 하는 일은 인적자본 정책의 효과를 엄밀하게 측정하는 것입니다. 정부의 정책을 사후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정책을 직접 설계하고 사회실험을 통해 효과를 증명하는 작업을 합니다. 사회 실험이라하면 의학에서의 무작위통제실험(randomized clinical trial, RCT)를 직접 사회에서 구현하는 겁니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가 세계 빈곤 경감을 위해 실험적인 접근을 한 이래로, 현장 실험(field experiment)이 세계 경제학의 새로운 흐름이 됐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핀란드의 기본 소득 실험을 들어 봤을 겁니다. 저 또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현장실험을 진행하고 있고요. 

Q. 아프리카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먼저 코호트를 설계합니다. 사람의 인생에는 일정한 단계(stage)가 있습니다. 일단 그 단계별로 사람들을 분류해서 코호트를 만듭니다. 임산부 및 영유아 코호트, 초등학생 코호트, 이런 식으로요. 그 다음으로 사회실험을 진행합니다. 생애 주기별로 가장 중요한 것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들은 학교에 가야 하고, 임산부는 제대로 먹어야 합니다. 저는 초등학생의 교육이나 임산부의 영양처럼, 각 단계에서 중요한 변수들에 대한 현장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실험은 제비뽑기와 비슷합니다. 코호트에 속해 있는 초등학생들은 1만명이 넘습니다. 재정이 한정돼 있어 이 친구들을 모두 학교에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비뽑기로 학교에 갈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로 나눕니다. 그리고 이들을 10년 정도 추적관찰을 해 봅니다. 교육이 어떤 부분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었는지 보는 거죠. 제가 2018년에 사이언스지에 게재한 논문도 이런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중등교육이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보여준 실험 논문입니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가 세계 빈곤 경감을 위해 실험적인 접근을 한 이래로, 현장 실험(field experiment)이 세계 경제학의 새로운 흐름이 됐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핀란드의 기본 소득 실험을 들어 봤을 겁니다. 저 또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현장실험을 진행하고 있고요.

Q. 아프리카에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치안이 불안한 나라에서 연구를 진행하다 보니, 생명의 위협을 느낀 상황이 많았습니다. 강도가 동료의 머리에 총을 겨눈 일도 기억에 남네요. 또 말라위에서 저희를 돕던 담당 공무원이 알고 보니 국가 GDP의 2%를 횡령했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 에티오피아의 내전을 일으킨 장본인은 제 에티오피아 사업을 돕던 당시 주지사 였습니다. 이 정도가 그나마 견딜 만했던 일이네요. 사건이야 수도 없이 많습니다(웃음).

Q. 코로나 19 팬데믹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지금, 경제학 분야에서도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한 연구 중에서 지난해  등교일수 감소와 중고등학생들의 학업과 비인지 기능(학교생활 만족도, 학업에 대한 관심 및 노력)간의 인과관계를 알아본 연구가 있습니다. 이 연구는 국내에서 최초로 이 인과관계를 규명한 연구입니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었고, 학교에 가는 학생 수도 제한됐습니다. 학교, 또는 지역에 따라 등교 횟수와 온라인 대체 수업의 비중이 달랐습니다. 어떤 학생은 학교에 자주 가는 반면, 다른 학생은 집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은 학생들의 학업뿐만 아니라, 정서에도 부정적입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니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지고, 학업에 대한 관심이나 의지가 줄어들 수 있겠죠.  

연구 결과, 80일 이하 등교한 고등학생(등교일수 하위 10%)이 120일 이상 등교한 고등학생(등교일수 상위 10%)보다 학업 성취도가 낮았고, 하위권에 머무를 확률이 두 배 정도 높았습니다. 또 등교 일수 감소는 고등학생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 학업 관심도, 학업 의지 등 비인지적 특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Q. 의과대학에서 6년간 배운 것들이 경제학 연구에 도움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의료현상과 질병에 대한 이해도가 다른 경제학자보다 높습니다. 당뇨병의 사회경제학적 영향을 연구한다면, 일단 당뇨병이 뭔지 알아야 하겠죠. 의사라서 확실히 편한 면이 있습니다. 공보의 시절 보건복지부에서 일했던 것도 정책 평가를 할 때 도움이 됩니다. 

Q. 의과대학 입학 전에도 의학 외 다른 분야에 관심이 있었는지요?
딱히 그렇지는 않았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의약분업이니 파업이니 여러 사건이 있었어요. 그때 의학은 자연과학이지만, 의료는 사회과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아보니, 의대 시절 굵직한 사건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사회과학에 관심이 갔네요.  

Q. 교수님께서는 의과대학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남들 하는 대로,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의과대학 분위기에 굴하지 않았던 학생이었어요. 실습 돌면서도 교수님과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질문했던 기억이 나네요. 회진 끝나고 레지던트 선생님께 불려가서 '너 왜 그러냐', '너무 나대지 말라'면서 혼나기도 했구요.

Q. 임상의사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결심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그때는 경제학이 어떤 학문인지 잘 몰랐어요. 석사 2년 정도는 하고 와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대학원 가서 공부해 보니 경제학이 잘 맞았어요. 대학원 성적도 좋았고요. 그러면서도 레지던트 하는 동기를 보면 나는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당연히 걱정은 됐죠. 동기들은 레지던트 마치면 길이 보이니까요. 일단 경제학 한다고는 했는데, 이래도 될까 하는 그런 불안감이 들기도 했어요.

Q. 경제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동기나 교수님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죠. 그야말로(웃음). 당시 의약분업과 파업을 거치면서 '사회과학 하는 의사가 필요하다'라는 의대 분위기가 있었어요. 장학금까지 마련해줬어요.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감사하죠.

Q. 교수님의 하루 일과는 어떠신지요. 또, 시간이 남을 때 주로 어떤 여가 활동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주로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해요. 바쁠 때도 있지만, 매일매일 바쁘진 않답니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현장을 못 가서 예전과 다른 삶을 삽니다. 국제기구랑 협업하거나 현지에 있는 교수들과 연구를 더 많이해요. 소위 워라벨을 잘 지키려 노력합니다. 남은 시간에는 아이를 돌봅니다.   

Q.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저처럼 경제학을 생각하는 학생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좋아한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경제학이든 다른 분야든 한 번 사는 인생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해요. 본인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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