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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칼럼 요양기관은 공단의 수하가 아니다
논설위원 칼럼 요양기관은 공단의 수하가 아니다
  • 김영숙 기자 kimys@doctorsnews.co.kr
  • 승인 2021.12.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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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우리나라 요양기관은 환자를 대신해 진료비 청구를 대행해왔다. 그러다 보니 실손보험까지도 청구대행업무를 요양기관에 의무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최근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고유업무인 자격확인 의무까지도 부과하려는 입법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의협신문

1977년 직장의료보험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행되면서 부터 의료기관은 환자를 대신해 진료비 청구를 대행해왔다. 요양기관은 환자 진료 후 진료비 총액 가운데 환자의 본인부담금만 직접 받고, 나머지 요양급여비용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해 지급받아왔다.

우리와는 달리 프랑스는 진료비 전액을 먼저 환자가 요양기관에 지불하고, 추후 건강보험 적용 금액을 건보공단으로부터 환급받는 수진자 직불제 방식을 택하고 있다. 
 
개별 국가들이 처한 사회문화적 관행에 따라 진료비 지불 방식은 달라질 수 있으며, 우리나라와 같이 요양기관이 수진자를 대신해 청구하는 방식은 환자가 병원 진료 후 진료비 지불기관에 따로 청구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앤 장점이 있다.

반면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청구프로그램 구입 등 비용 발생과 행정적 업무가 부과되지만 사회보험 하에서 의료소비자의 편익을 위해 요양기관이 감내해왔다. 

하지만 건강보험에서의 진료비 청구대행이 관행이 되다 보니 이것을 당연한 것 처럼 여기고 사회보험이 아닌 실손보험 까지도 요양기관에 청구업무를 의무화하겠다는 발상까지 나왔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논의중인 실손보험 청구대행은 보험계약자, 피보험자 등이 요양기관에게 진료비 계산서 등의 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찬성하는 측에선 건강보험에서도 이미 청구대행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어 의료계를 압박중이다. 실손보험은 소비자와 보험사 간 사적 계약으로 병원과 보험사는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음에도 '소비자의 편익'을 이유로 10여년째 공방중이다.

실손보험 청구대행은 그나마 '소비자의 편익'이라는 당의정으로 포장했지만  최근엔 아무런 근거도 없이 건보공단이 해야 할 일을 요양기관에 슬쩍 떠넘기려는 시도까지 등장했다. 지난 10월 강병원 의원이 발의한 요양기관 건강보험 자격확인 의무화법이 그것인데 요양기관에서 요양급여를 실시하는 경우 건강보험증이나 신분증명서로 본인 여부 및 자격을 확인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건보공단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갑자기 떠넘기겠다는, 황당한 발상에도 불구하고 11월 25일 보건복지위원회는 '타인의 명의를 대여·도용해 보험급여를 받는 것을 막을 수 있어 건보재정의 건정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며 이를 통과시켰다. 다행히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등 의료계의 강한 반발에 막혀 11월 30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상정 안건에서는 일단 제외됐지만 그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보건복지위원회 통과 당시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는 "일부 건보 수급자 자격관리가 건보공단의 고유 업무이기 때문에 책임을 전가하는 행정편의주의적 접근방법이라는 지적이 있으나 건보공단이 일선 의료현장의 가입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법안 찬성 의견을 냈다.

'행정편의주의'라는 의료계의 비판을 인지하면서도 건보공단이 가입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공단의 수급자 관리 업무를 제 3자인 요양기관에 떠넘기겠다는 것이다. 물론 요양기관도 건강보험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 건강보험 재정의 건정성을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법률로서 건강보험 자격 확인을 의무화하고, 위반시엔 과태료 및 징수금을 부과하는 처벌규정까지 넣겠다는 것은 요양기관을 공단의 수하로 보는 권위주의적 발상이 아닐수 없다. 

의료기관 일선에서는 환자가 부정 수급을 목적으로 허위 정보를 제시할 경우 자격 확인을 강제하거나 확인할 방법도 없는데다 최근엔 온라인·키오스크 활용 등 비대면 접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로 단순히 사진 확인만으로는 부정수급 여부를 확인하기 힘든 상황임을 토로하고 있다.

접수과정에서 건강보험 수급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확인되더라도 의료법상 진료거부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의료기관은 어떻게 대처할 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더욱이 사회보험 체제에서 생계형 건보료 체납자와 같은 건강 약자들의 진료권이 제한되는 문제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현재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보험급여를 받게 한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등 건강보험증 부정사용 시 처벌 수위가 낮지 않다. 2019년 말 개정했으니 이런 사실을 캠페인을 통해 명의대여·도용에 대한 국민 인식을 개선하는데 쏟으면 될 일이다.

또 필요하다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자격관리의 책임이 있는 건보공단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단지 요양기관이 하는 것은 쉽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의무를 강제하고 처벌하려 하기 보다 건강보험의 동등한 파트너로서 신분증 확인 등을 통한 본인확인절차도 상호 협력관계로 협조를 요청할 일이다. 

그동안 사회보험 제도 하에서 전국민의 보편적 건강을 위해 요양기관은 건강보험 청구 대행 등의 업무를 군말 없이 수행해왔다. 그럼에도 그 대가가 실손보험 청구대행이라든지 건강보험 자격 확인 의무화 등 요양기관이 져야할 의무가 아닌 것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압박하고, 짐을 지우려는 입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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