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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네 손의 기도
네 손의 기도
  • 조동우 공보의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12.0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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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대상 수상작
조동우 공보의(경북 영주시보건소 풍기읍보건지소)
조동우 공중보건의사
조동우 공중보건의사

돌아가신 할머니와 비슷한 연배였던 그 환자를 처음 만난 건 면허를 따기 전이었던 2016년 여름, 한 대학병원의 산부인과 수술실에서였다. 당시 나는 교수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니며 책에서만 보던 것들을 실제 임상 현장에서 배워나가던, 막 병원 실습을 시작한 본과 3학년 학생이었다. 외과계 실습을 돌면 수술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주어지곤 한다. 수술에 절대 방해가 되지 않게끔 떨어져 있되, 생생한 현장을 하나라도 눈에 더 담으며 배우는 것. 수술을 참관하는 실습 학생의 가장 큰 덕목은 '적극적인 병풍'이 되는 것이다. 내가 참관했던 수술은 고령의 암환자에게서 자궁을 들어내는 비교적 큰 수술이었다. 수술실 한 구석에서 산부인과 레지던트 선생님 옆에 서서 마취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여느 때처럼 병풍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수술실 침대의 차가운 감촉 때문일까. 코가 시릴 듯한 수술실의 찬 공기 때문일까. 할머니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큰 수술을 앞둔 고령의 암환자의 마음을 어찌 감히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랴. 냉기가 감도는 푸른빛의 공간엔 곁을 지킬 남편도, 손을 잡아줄 자녀도 없었다. 오롯이 홀로 남겨진 채 너무나 큰 상대를 기다리는 그녀의 얼굴엔 형용할 수 없는 외로움과 불안함이 가득했다. 

"수술 전에 수녀님이 기도해주신다 캤는데예…수녀님 어디 계십니껴?"

가톨릭 재단의 병원답게 수술실 입구에는 수술을 앞둔 환자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시는 수녀님이 계신데, 급하게 들어오면서 못 뵌 모양이다.

"할머니, 기도는 밖에서 하고 들어오셔야 해요. 준비가 다 끝나서 다시 나가시긴 어렵고, 얼른 마취 시작해야 합니다."

"안되는디…기도 꼭 해야하는디…."

마취과 선생님의 안타까운 대답에 급기야 할머니의 두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셨고, 할머니를 제외한 수술실의 그 누구도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다. 마취 직전까지 준비된 환자를 다시 수술실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수녀님을 감염에 민감한 수술실 안으로 모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큰 수술을 앞둔 할머니의 마음을 모두가 잘 알기에, 서로 눈치만 보며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누구 하나 먼저 깨기 조심스러운 침묵의 끝을 알린 건, 터질 듯한 불안감을 애써 꾹꾹 눌러 담은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알겠습니데이…이제 그만 시작하이소."

무슨 용기였을까.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는 할머니께 다가가 주름진 두 손을 꼭 잡았다. 두 손의 떨림을 타고 그녀의 불안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취과 선생님께 딱 30초의 양해를 부탁드렸고, 다행히도 선뜻 허락해주셨다. 마주잡은 네 손에 아주 잠깐의 시간이 주어졌다.

"할머니, 제가 기도해드릴게요."

가톨릭 신자가 아닌 나로선 가톨릭에서 어떻게 기도하는지도 잘 몰랐다. 기도를 마칠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라고 끝내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 성부-성자-성령 순이 맞는지, 십자를 그릴 땐 왼쪽이 먼저인지 오른쪽이 먼저인지 헷갈렸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불안감을 이겨내고 부디 편안한 마음으로 수술을 잘 받으시길 진심으로 바라며, 눈을 감고 서툰 기도를 이어나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가 끝남과 동시에 마취가 시작됐다. 희미한 미소를 띤 채 편안하게 잠이 든 할머니의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긴장감에 땀으로 젖은 두 손을 뗄 수 있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준다는 것. 어쩌면 수술 직전의 상황에서 할머니가 가장 필요로 했던 작은 치료가 아니었을까. 

수술은 다행히 잘 마무리됐다. 아직 마취에 덜 깬 채 수술실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할머니를 뵐 수 없었다. 바쁜 실습 일정에 치여 기억에서 조금씩 희미해질 때쯤, 레지던트 선생님께서 급히 나를 찾으셨다. 그 때 그 할머니께서 퇴원하기 전에 수술실에서 기도해준 의사를 꼭 만나고 싶다고 주치의 선생님께 간곡히 부탁드렸단다. 

"아이구 슨생님, 을매나 찾았는지 모릅니더. 슨생님 기도 덕분에 지가 너무 편한 마음으로 수술 받을 수 있었다 아입니껴. 슨생님 덕분에 이렇게 수술 잘 받고 퇴원합니데이. 너무 감사합니데이."

두 눈을 글썽거리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할머니. 투박한 두 손이 이번엔 나의 두 손 위로 꼬옥 포개졌다. 따뜻한 온기가 양 손등을 감쌌다. 분명 거친 손인데 이상하리만큼 참 포근했다. 병실의 적막함을 가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할머니는 기도를 시작하셨다. 이 두 손이 훌륭한 의술을 펼치는데 잘 쓰일 수 있게 해달라고. 무엇보다 이 두 손으로 환자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질 수 있게 해달라고. 그녀는 나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주셨다. 두 손의 온기를 타고 그녀의 따뜻한 당부와 축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슴 한 쪽에 몽글몽글한 무언가가 차오르기 시작했고, 두 눈이 예고도 없이 뻑뻑해졌다.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네 손은 서로가 서로를 꼭 잡고 있었다. 나의 것인지, 할머니의 것인지 모를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려 우리의 네 손을 따스히 적셨다. 

5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본인을 의사라 소개하기가 어색한 이제 겨우 햇수로 4년 차 의사가 됐다. 더 이상 병풍이 아닌, 무언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로 환자 앞에 설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며 계속해서 배움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이따금 연세가 있으신 환자 분들이 내원하실 때면, 그 때 그 할머니가 종종 떠오르곤 한다. 얼굴도, 성함도 가물가물하지만 우리의 '네 손의 기도'는 언제나 선명하다. 환자의 증상과 질환에만 집중하다 환자의 마음을 세세하게 살피지 못하진 않았는지. 머리는 차갑도록 냉정해야 하지만 가슴마저 차가워지진 않았는지. 초심에서 한 걸음 멀어질 때마다 '아차'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기분 좋은 잔소리가 된다. 의사가 치료해야할 것은 비단 병뿐만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까지임을. 스물네 살의 의대생에게 건넨 그녀의 속삭임은 5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귓가에 멤돌고 있다. 

오늘도 환자를 향하는 나의 두 손엔, 5년 전 주름진 두 손에서 전해진 따뜻한 온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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