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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심평의학' 적용 요양급여비 감액처분 부당"
법원, "'심평의학' 적용 요양급여비 감액처분 부당"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21.10.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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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고시에도 없는 심평원 내부 기준으로 감액처분 잘못" 판결
해외 일부 의료진 연구결과 근거로 요양급여비 감액처분 불인정 사례
ⓒ의협신문
ⓒ의협신문

'비특이적 용혈요독증후군'(aHUS)에 맞는 표준 치료법인 혈장교환술을 실시한 것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해외 일부 의료진의 연구결과를 근거로 요양급여비용 감액조정처분을 한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을 보건복지부령으로 고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 장관이 현재까지 aHUS와 관련해 혈장교환술의 실시 여부에 관한 세부사항을 고시하지도 않았는데, 심사평가원 내부 기준을 적용해 감액조정처분한 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

서울행정법원은 10월 8일 S대학병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감액조정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승 판결을 했다.

S대학병원은 2015년 9월부터 2015년 11월 9일까지 '혈전성 미세혈관병증'(TMA)으로 입원한 환자 Y씨에게 총 30회에 걸쳐 혈장교환술을 시행하고 요양급여비용에 대한 심사를 심평원에 청구했다.

혈장교환술은 환자의 혈액 안에 있는 질병을 유발하는 병적인 성분을 혈액성분 채집기를 이용해 분리하고 제거한 뒤, 제거한 혈장의 양만큼 신선동결혈장이나 알부민을 보충하는 것을 말한다.

즉, 혈액의 성분 중 액체성분인 혈장 안에 있는 자가면역항체, 면역복합체, 독성 물질 등을 제거함과 동시에 새로운 혈장단백을 보충하는 것으로, 혈소판 수치가 낮거나 혈액응고인자가 부족한 경우 출혈의 위험이 있어 시술이 불가능할 수 있다.

심평은 S대학병원 의료진이 2015년 10월 16일까지 약 3주간 15회에 걸쳐 혈장교환술을 실시했음에도 환자는 호전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같은 기간 ADAMTS-13 활성도 검사(이하 이 사건 검사) 결과가 18%로 확인돼 '혈전성 혈소판감소성 자반증(TTP)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움에도 퇴원 시까지 계속해서 혈장교환술(나머지 15회)을 실시해 요양급여 인정기준을 어겼다며 요양급여비용 1986만 8864원을 감액조정했다.

일부 의학 문헌 등에 따르면 TTP 또는 aHUS 환자에게 혈장교환술을 실시할 수 있는데, 이 사건 검사결과 수치가 10% 미만일 때에는 혈장교환술을 지속할 수 있지만, 수치가 10% 초과일 때에는 혈장교환술 이외의 다른 치료법을 고려하라고 되어 있다.

즉, 심평원은 이 사건 검사결과 수치가 18%로 확인됐기 때문에 혈장교환술을 시행할 수 없다고 본 것.

심평원의 요양급여비용 감액조정처분에 대해 S대학병원은 이의신청을 했으나 기각됐고, 2017년 1월 6일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에 심판청구를 했으나 이 역시 기각됐다.(단, 심판청구가 진행되는 중 감액조정처분 중 계산 오류로 늘어난 124만 1800원 부분은 직권취소했다)

S대학병원과 의료진은 심평원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S대학병원은 "Y환자에 대해 적절히 진단하고, 이 사건 검사결과를 확인한 후 비특이적 용혈요독증후군(aHUS)에 맞는 표준 치료법인 혈장교환술을 실시했던 것이며, 실제로도 지속적인 혈장교환술을 통해 Y환자의 상태가 호전됐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병원 의료진이 이 사건 검사결과를 확인한 후에도 계속해서 혈장교환술을 실시한 것이 요양급여 인정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며 심평원의 처분이 적법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보건복지부도 TMA, TTP, aHUS와 관련해 세부사항을 고시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심평원 내부 기준을 적용해 감액조정처분을 하는 것은 부당하고, 심평원이 제시하고 있는 기준 역시 해외 일부 의료진의 연구결과에 불과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봤다.

또 관련 의학지식 및 관련 학회의 의견을 보더라도 S대학병원 의료진이 Y환자에게 한 의료행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aHUS 치료제인 에큘리주맙이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를 받고 요양급여목록에 편입된 2018년 7월경 이전까지는 aHUS에 특별히 특화된 치료방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료진에 따라 aHUS 환자에 대해서도 TTP 환자와 마찬가지로 혈장교환술을 지속하면서 경과를 살피는 치료방법을 취하기도 한 점 ▲관련 학회에서는 당시 임상의학 수준과 제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병원 의료진의 판단 및 치료과정이 적절하다고 보이는 점 ▲혈장교환술 시행 후 PLT 및 LDHL 수치가 개선돼 혈장교환술이 치료에 효과적이었다고 보이는 점 ▲환자가 고령임에도 aHUS의 가장 심각한 합병증인 사망과 신대체요법 시행 상태까지 이르지 않은 것은 의료진의 적극적인 치료 노력의 결과로 판단되는 점 ▲이 사건 기준은 2010년 이탈리아 신장내과 의사들이 기고한 논문에서 발췌한 것인데, 저자들이 정의한 것에 불과하며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는 점 ▲혈소한 상승은 스테로이드의 직접적인 효과가 아니라, 병행된 혈장교환술과의 상승 작용에 의한 것으로 보아 환자가 단순히 스테로이드 투여에 의해 혈소판 수치의 증가 혹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할 수 없는 점 등을 이유로 심평원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Y환자는 TMA를 야기할 수 있는 다른 원인인 EHEC 감염 또는 2차적 원인이 임상적으로 확인된 바 없으므로, 이 사건 검사결과를 확인한 후 TTP가 아닌 aHUS에 해당한다고 본 의료진의 판단에는 문제가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고령의 aHUS 환자가 상당기간 생존하면서 혈액투석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지속적인 혈장교환술의 영향이었다고 볼 수 있고, 이에 대해 심평원은 혈소판 수치의 상승이 단순히 당시 투약된 스테로이드 때문일 뿐 혈장교환술의 영향은 아니라고 주장하나, 혈소판 수치 개선이라는 결과가 오로지 스테로이드 투약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오히려 혈장교환술도 그 개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Y환자의 혈소판, 헤모글로빈 수치가 이 사건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혈소판, LDH 수치가 혈장교환술 실시 후 상당 부분 개선된 것은 사실"이라며 "보건복지부 고시에도 없는 심평원 내부 기준을 적용해 요양급여비용을 감액조정처분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 "근거가 미약한 심평원 내부 기준이 의료행위의 적절성 평가에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명시적으로 확인한 것"이라며 "소위 '심평의학'의 부당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의의를 밝혔다.

그러면서 "근거가 미약한 '심평의학'으로 인해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한 치료가 위축될 위험에 처했으나 다행히 재판부의 사려깊은 판단으로 그런 위험을 모면하게 됐다"며 "이번 판결은 의료기관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상당한 도움이 돌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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