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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의협에 와서 놀란 세 가지
변호사가 의협에 와서 놀란 세 가지
  • 전성훈 의협 법제이사(법무법인 한별 변호사)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10.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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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임직원 엄청난 업무량 소화...회원 권익 위한 회무 최선
회원 신뢰·참여·회비 납부 뒷받침 해야 '협회 목표' 달성 가능
전성훈 의협 법제이사(법무법인 한별 변호사)ⓒ의협신문
전성훈 의협 법제이사(법무법인 한별 변호사)ⓒ의협신문

안녕하세요. 대한의사협회 제41대 집행부 법제이사로 일하고 있는 전성훈 변호사입니다. 서울특별시의사회 법제이사로 6년을 일했고, 다른 몇몇 의사단체들에서 법제이사로 일했으며, 올해 5월부터 의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먼저 고백하건대, 저는 학창 시절에 그리 모범생은 아니었습니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친구가 많았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말썽 피우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런 제 눈에는, 당시에 집-학교-도서관-집을 반복하는 모범생 친구들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저러고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서울시의사회와 다른 의사단체들에서 법제이사로서의 업무량이 적지 않았기에, 저 나름으로는 의사단체 법제이사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협회에서 일한 후 한 달도 안 되어 깨달았습니다. 과거의 업무량은 '맛보기'였음을 말입니다.

집-회사-의협-집을 반복하면서, 회사에서 동료 변호사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주말마다, 추석 연휴에도 나와서 일하고 있는 저를 몇 달간 지켜보고는, 가까운 후배 변호사가 한숨을 쉬면서 물었습니다. "형, 그러고 어떻게 살아?"

그렇습니다. 제가 협회에 와서 첫 번째로 놀란 것은 '업무량이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주된 업무를 보면, 매주 열리는 상임이사회, 소속된 10여 개 위원회의 회의, 의료배상공제조합 관련 여러 회의는 고정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세보지는 않았지만, 주당 5∼8회 정도의 회의가 열립니다. 회사는 하루에 보통 한 번 가지만, 의협은 하루에 세 번도 갑니다.

여기에 더해 의협 내부자문 검토, 의협 관련 소송에 관한 검토, 의료계 현안에 대한 법률 검토 등이 '내가 제일 급한 일이오'를 외치면서 밀려듭니다. 소화 불가능한 일정 같지만, 그래도 사명감 있는 의협 직원들이 성실하게 지원해 주기에 소화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카카오톡과 전화를 통해 수시로 들어오는 비공식적인 법률 검토 요청 또한 많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비공식적인 법률 검토에 드는 시간을 모두 합치면 공식 업무에 드는 시간 못지 않습니다.

제가 의협에 들어와서 두 번째 놀란 것은 '모든 임직원들이 이렇게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장단·상임이사·자문위원 등 임원들과 소속 직원들이 각자의 담당부서에서 엄청난 업무량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매주 열리는 상임이사회 회의자료가 100페이지를 넘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수십여 개의 각종 위원회 회의 등을 위해 만드는 회의자료를 생각해 보면, 의협에서는 매주 수천 페이지의 자료를 생성하고,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부와 국회가 계속 던지는 강속구들, 예를 들어 코로나19 정책, 비대면진료, 실손보험, 의료법 개악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이슈들을 의협은 잘 받아치거나, 적어도 '커트'해 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외에도 의료계의 반응을 떠보는 '잽'과, 전국에서 발생하는 회원 민원에 대응해야 합니다.

의협은 이 방대한 업무를 70명의 임원과 100명의 직원으로 커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과중한 업무량을 호소하면서 지난 몇 년간 10명이 넘는 직원들이 퇴사했습니다. 코로나19 이슈 등으로 협회 업무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예산 문제로 아직까지도 인력 충원이 쉽지 않습니다. 모든 부서에서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임원과 직원 모두 '적당히' 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제가 의협에 와서 세 번째 놀란 것은 '이렇게 일하고 있음에도 협회에 불만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대한변호사협회 대의원이고, 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여러 위원회에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단순 비교는 어려우나 변호사단체의 업무량도 적지 않지만 의협의 업무량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커버해야 하는 업무 범위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의료 시장은 정부 예산과 급여·비급여를 합쳐 200조 원에 이르는 반면, 법률 시장은 정부 예산과 민간 지출을 합해도 13조 원 정도입니다. 참고로, 의사는 13만 명이고, 법조인은 3만 6,000명입니다.

예상하시는 것과 같이, 변호사들 역시 의사들처럼 대부분 주장이 뚜렷하고 자존심이 강합니다. 그래서 개별 사건에서의 동료 변호사들의 업무 결과나 업무량에 대한 평가는 전체적으로 박한 편입니다. 쉽게 말해 '그 정도는 해야지', '그것도 못해'라는 식이죠.

반면 개별 사건에서와는 달리,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변호사단체에서 임원으로서 일하는 것을 전체 변호사에 대한 봉사임을 분명히 알고 있고, 변호사단체에서 일하는 동료 변호사들이 국민의 인권과 변호사의 권익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의협 회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도 의료계의 여러 커뮤니티에 속해 있으므로 여러 경로로 의협의 업무에 대한 평가를 듣게 됩니다. 위와 같이 의협 임직원들이 회원분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회원분들의 협회 임직원들에 대한 평가는 다소 박한 것 같습니다. 조금 솔직히 말하자면, 고생하는 것은 알겠지만, 일을 처리하는 방향이나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겠죠.

의협 임원의 일원으로서 해명 아닌 해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서 주장이 뚜렷한 의사들이, 복잡한 의료 현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부부 간에 자식 하나만 놓고도 의견 일치가 어려운데, 13만 의사들이 다양한 상황과 이해관계에 대해 모두 의견 일치를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래서 의협은 대의제를 선택했고, 대표자를 선출하여 그의 소신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도록 위임하되, 대의기관을 구성하여 대표자를 협력하고 견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표자와 대의기관의 의사결정을, 설령 일부는 마음에 들지 않으시더라도, 의료계의 의사결정으로 인정하고 지지해 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의협은 다양한 경로로 정부·국회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전문가단체로서 의협의 위상을 보면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런 정보들 중에는 진행 중이거나 진행해야 할 협상을 고려할 때 대외적으로 공개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현장의 회원분들이 접할 때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협회의 의사결정은, 공개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의사소통 수단이 발달할수록 의사소통은 줄어든다는 말과 비슷하게, 소통할 채널이 늘어났지만 소통의 폭증으로 오히려 내부 협의가 쉽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의협 임원들은 회원분들의 여러 의견들을 공유하고 최대한 회무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본 임원들은 모두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회원분들이 물어보시는, 변호사단체에 관한 말씀을 간단히 드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나본 많은 의사들이 변호사단체를 부러워합니다. 변호사 전원이 회비를 낼 수밖에 없는 구조와, 상당한 수준의 자율징계권을 가지고 있는 것 때문입니다. 의외일 수도 있지만, 위와 같은 결과물들은 정부와 싸워서 얻은 것이 아니라, 협상하여 얻은 것입니다. 오히려 정부가 자율징계권을 부여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빼앗아 가려고 시도했을 때에도 협상으로 이를 막았고, 이 위기를 넘긴 후 자율징계권을 오히려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협상으로 말입니다.

많은 회원분들은 변호사단체가 힘이 센 것으로 생각하지만, 힘이 센 것이 아니고, 약은 것입니다. 변호사들은 싸워야 할 상황 자체를 가능한 만들지 않고, 싸워야 할 상황에서도 질 싸움이라면 일단 피하며,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들 때만 싸웁니다. 그리고 변호사단체도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어떠한 법률 이슈에 관해 정부가 칼자루에 손을 댄다면, 변호사단체는 함께 칼을 잡지 않고 먼저 칼을 내려놓고 협상하자고 제안할 것입니다. 정부가 칼자루에서 손을 뗀다면, 변호사단체는 준비된 협상안을 제시할 것입니다.

반면 의협은 힘이 셉니다. 변호사가 파업하면 대부분의 국민이 아무런 관심도, 비난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사가 '제대로' 파업하면 대부분의 국민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지난해에 보신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의협은 힘이 세기에 정부는 의료계의 단합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다른 분야라면 (심지어 변호사단체라 하더라도) 절대 하지 않을 양보를 하기도 합니다. 물론 정부가 그냥 양보하는 경우는 전혀 없고, 이는 의협이 여러 경로로 설득하고 강력하게 저항하여 이뤄지는 것입니다. 평소 정부가 매사 밀어붙인다고 생각하거나, "의협이 하는 일이 뭐냐"고 묻는 회원분들이 많지만,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의협과 변호사단체는 처해 있는 상황이 다릅니다. 그래서 의협이 변호사단체와 같은 대응을 해야 한다는 말은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의료계가 칼을 뽑을 생각이더라도, 상대방을 완전히 없애버릴 수 없다면, 결국에는 공존을 전제로 협상을 준비해 둬야 합니다.

따라서 협상에서 제시할 논리와 근거,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대외적 협상안을 준비하는 것은 의협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대외적 협상안을 확정하기 위해 논의하는 '대내적 협상안'에 대한 입장을 정하고 의사로서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은 회원 개인의 역할입니다.

협상 이전에 특정 이슈에 대해 '뭉개는' 것도 아주 좋은 협상 전략입니다. 하지만 정부와 이해관계단체들이 '의료계가 계속 뭉갠다'라는 불만을 쌓게 하면 위험하므로 '그만 뭉개야 할 시기'가 언제인지 잘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기를 잘못 판단하면 순식간에 '의료계 패싱'을 보게 될 것이고,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자주 보아 왔습니다.

따라서 의협이 어떤 이슈를 언급하거나 논의를 시작한다면, 이는 '회원의 권익 보호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여러 정보를 종합할 때 '더 이상 뭉갤 수 없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의협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 한 가지를 조언하고 싶습니다. 이는 변호사단체가 회원들에게 항상 간곡히 요청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것은 의협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고, 많은 의사표시와 참여를 통해 힘을 실어 주며, 숨은 저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회비를 납부하는 것입니다. 내부적 신뢰, 참여, 재정의 뒷받침 없이는 어느 단체도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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