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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의원의 전공의폭행 낱낱히 파혜쳐져야(기획)
현직의원의 전공의폭행 낱낱히 파혜쳐져야(기획)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03.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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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진료권' 훼손 안된다.이달 초 불거진 현역 국회의원의 전공의 폭행사건이 사태해결의 중요한 국면을 맞고 있다.
사건이 금방이라도 해결될 듯 보였던 초기 국면이 급격히 식어가며 사건 자체가 용두사미로 전락할 지경이다. 의료계의 겨울투쟁이 시작되고 사건 관련자들이 사태해결에 소극적으로 나선 것이 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번 전공의 폭행사건은 진료실 안에서 발생한 심각한 의권침해 사건이며 이번 사건의 해결과정이 곧 병원 내 폭력근절을 위한 운동 그 자체이기 때문에 반드시 정의로운 결말을 봐야 한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지난 4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명의로 발송된 보도자료가 사건의 발단이라면 발단이었다.

'전공의 폭력실태'라는 제목으로 발송된 이 보도자료는 대전협이 병원 내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폭력의 실태를 지적하고 병원 내 폭력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의도로 작성된 것이었다. 하지만 보도자료 말미에 언급된 사회지도층 인사의 전공의 폭력사례가 집중 조명을 받으며 3개월여간 묻혀 있던 이번 사건이 결과적으로 드러난 계기가 됐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8월 31일. 당시 내과 전공의 2년차였던 C전공의는 병원 내 VIP로 대접받고 있던 현승일 의원(한나라당) 부인의 병력을 청취하고 암일 가능성에 대한 소견을 얘기하자 현 의원이 갑자기 흥분하며 C전공의의 멱살을 잡고 옆방으로 끌고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심지어 넘어져 있던 C전공의를 구두발로 걷어 찼다. 그리고는 "환자에게 사형선고를 하느냐" , "의사노릇을 하지 못하게 해 주겠다" 는 폭언과 함께 다시 환자한테로 끌고 가 무릎을 꿇린 채 사과를 하게 했다. 해당 전공의는 당시 상황이 갑작스럽게 발생했고 현 의원이 워낙 흥분한 상태였으며 병원이 VIP 대접을 하고 있던 터라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폭행을 당한 C전공의는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지방으로 파견근무를 보낸 상태며 당시 받은 심적 충격을 추스리기 위해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는 상태다.

이번 사건이 의료계를 분노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침해받아서는 안되는 의사의 진료권한이 크게 훼손됐다는데 있다. 진료실 안에서 안정적이고 소신있는 진료환경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이는 의사의 권리가 침해받는 것은 물론 의료진을 더욱 방어적이고 소극적으로 만들어 최선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의 권리 역시 크게 침해하는 것이란 지적이다.

전공의들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런 병원 내 폭력은 이미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대전협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공의 10명 중 7명(75%)이 진료와 관련해 환자나 보호자에 의해 폭언 및 폭행, 소송 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은 응급실로 특히 응급실 근무시간이 긴 전공의들이 폭력에 쉽게 노출되지만 실제 폭력이 발생해도 이를 제지하거나 보호할 장치가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임동권 대전협 회장은 "지금과 같이 몇몇 대형병원 응급실에 환자가 몰리고 전공의에게 과다한 업무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환자나 보호자들과의 마찰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고 말하고 "특히 몇몇과 전공의들은 수련기간 내내 평균 2∼3회 정도 폭행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고 밝혔다.

이국종 교수(아주대병원 외과학)는 "외과의 경우 하루 4∼5번의 응급수술 중 환자가족에게 멱살 한번 안 잡히고 밤을 보냈다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 얘기한다" 며 "응급수술의 경우 온몸에 손상을 입은 환자는 수술 생존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좋은 얘기를 못 듣는 예가 허다하다" 고 말했다.

의협은 이번 담당의사 폭행사건을 접하고 지난 10일 상임이사회를 열어 강력한 대응을 천명했다. 이 자리에서 김재정 의협회장은 "진료실에서 의사를 폭행한 사건은 의권을 침해한 심각한 사안" 이라고 지적하고 "대전협 등과 연계해 해당의원의 책임을 물을 것" 이라고 밝혔다. 이와함께 의협은 진료 중인 의사를 보호하기 위한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의협이 요구하게 될 개정안은 진료 중 의사에게 위협이나 폭력을 휘두른 범죄에 대해 가중처벌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의협과 함께 대전협도 폭행 피해자가 전공의인 만큼 사태해결을 위해 적극 나설 태세다. 대전협은 사건이 불거진 이번 달초 폭행을 휘두른 것으로 알려진 국회의원이 현승일 의원임을 공개하고 현 의원측에 재발방지를 위한 사과를 요구했다.
또한 11일 '현역 국회의원의 전공의 폭행사건에 대해 분노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현 의원의 소속당인 한나라당에 해당의원의 당 윤리위원회 회부 등의 징계조치를 요구했다. 대전협은 현 의원의 징계요구가 받아 들여지지 않을 때에는 현 의원 지역구 항의방문과 낙선운동 전개, 사이버 시위, 한나라당사 항의방문 등의 다양한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협과 대전협 뿐 아니라 이번 사건에 대해 의사 네티즌들의 항의도 눈길을 끌었다. 사건을 접한 의사 네티즌들은 의협 게시판을 통해 현역의원의 행태를 강하게 비난하고 의협의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했다. 또한 한나라당 홈페이지와 청와대 홈페에지 게시판에 현 의원의 폭행사실을 알리고 항의하는 의견이 적극 올라왔다.

아이디가 'eam1'인 네티즌은 "정말 열이 난다. 이제 갓 피어나는 전공의를 패고 환자 앞에 무릎을 꿇리다니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떠나 마지막 남은 의사들의 자존심을 의협이 지켜줘야 한다" 고 주장했다. 또한 한나라당을 지지해 온 30대 의사라는 'dermaman'를 아이디로 가진 네티즌은 한나라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현승일이는 공천돼도 100% 떨어질테니 두고 보라" 며 "최병렬 대표는 현승일부터 물갈이를 해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게시판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디가 'tabora104'는 "생명을 구하는 의사를 때려 잡으니 이제 어디가서 치료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겠냐" 며 현 의원의 행태를 강하게 비난했다.

의료계의 이런 대응 움직임과는 달리 정작 현승일 의원측은 사건이 불거진 4일 당시에는 보좌관들을 통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 5일 전공의를 폭행한 사실이 없다며 발뺌을 해 의료계를 분노케 하고 있다. 현 의원측은 5일 공식의견 표명 후 미국으로 출국한 것에 대해서도 '시간끌기'를 통해 사태가 가라 앉기를 바라는 꼼수가 아니냐는 곱지않은 시선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이번 폭행사건이 현 의원쪽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데 있다. 우선 피해 당사자가 속한 서울대병원은 최근 사태확대를 막기로 결정하고 피해 전공의와 내과 전공의, 서울대병원 전공의들에 대한 단속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전공의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병원장께 서울대병원 이름으로 성명서 하나 내야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올렸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걸로 봐서 사태가 넘어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병원측의 입장인 것 같다" 고 말했다. 또한 피해 전공의와 동기라는 한 회원은 "해당과 교수들이 나서서 전공의들을 달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해당과 교수들이 그러는 돼야 어쩔 수 있겠냐" 고 자조 섞인 말을 덧붙였다.

결국 이번 사건이 국민과 의사를 위한 정의로운 방법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서울대병원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한 관계자는 "서울대병원이 가만히 있어서 그렇지 만약 병원이 직접 나선다면 사태가 전혀 다른 양상으로 갈 것이다. 그게 바로 서울대의 힘이다" 라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서울대병원이 사태해결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의협도 역시 사태해결을 주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내년 초 계획된 각종 의료계의 집회 준비로도 여력이 없으며 내년 2월까지는 의협의 모든 관심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체계에 대한 문제제기로 모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전협 역시 이번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조직과 경험면에서 역부족인게 사실이다. 당장 11일 성명서가 대전협 명의로 나가기는 했으나 이후 사태해결에 이렇다할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증거다.

누군가 왜 이번 사건이 반드시 해결돼야 하는냐고 묻는다면 이번 사건의 해결과정 하나하나가 병원 내 폭력 근절을 위한 행동 그 자체이며 곧 예방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회의원이든 누구든 의료현장에서 의료인에게 폭력을 행사했을때 어떤 응분의 책임이 돌아가는지에 대한 교훈을 주고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때 그 어떤 법적, 제도적 예방책보다 효과적인 예방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서울대병원도 전공의협의회도, 피해 당사자도 누구보다 어려운 시기가 남아 있지만 꼭 넘어야만 하는 고비라는 인식이 공유되면 현역의원의 전공의 폭행사건은 의외로 쉽게 풀릴 구석도 있다. 물론 의료계가 사태의 중요도를 인식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수많은 입장설명과 성명서, 비난보다 하나의 행동이 아쉬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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