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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 환수처분 당시 재량권 행사 안하면 "위법"
건보공단 환수처분 당시 재량권 행사 안하면 "위법"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21.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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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불법성 정도 고려해 재량권 행사하지 않고 지나친 행정행위" 판단
"환수처분 이후 재량권 행사해 감액하더라도 처분 당시 하자 치유 안 된다"
김주성 변호사, "공권력 사적 이익으로 남용한 것 제동 건 판결" 의미 부여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에 대해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당시 재량권 행사를 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위법하고, 나중에 재량권을 행사해서 환수처분 금액을 감액하더라도 처분 당시 하자가 치유되지는 않는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의료기관이 실시한 요양급여 내용과 요양급여비용의 액수, 의료기관 개설·운영 과정에서의 비의료인 개설자와 개설명의자의 역할과 불법성의 정도 및 이익의 정도, 의료기관 운영성과의 귀속 여부 등을 고려해 환수처분 당시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또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 제2항이 정한 부당이득징수는 기속행위가 아니라 재량행위로 보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대구지방법원은 최근 의료법인 이사장과 대표이사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 소송에서 건보공단의 환수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K이사장과 L대표이사는 2006년 8월경 각각 1억 5000만원을 투자해 Y의료법인을 설립하고, 의료법인 이름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해 운영했다.

K이사장과 L대표이사는 자신의 가족들을 이사 및 임원으로 선임하고, 법인을 개인 소유 지배 구조로 만들고, 의료기관 운영을 통해 수익을 창출했다.

이런 이유로 의료법위반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죄 등으로 기소돼 2019년 9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고, 항소했으나 항소심(대구고등법원)은 2021년 1월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2심 판결에 불복한 K이사장 등은 상고해 현재 상고심(형사사건)이 진행중이다.

형사사건과 별개로 건보공단은 2018년 K이사장과 L대표이사 등이 설립한 의료기관(요양병원)은 구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해 무자격자에 의해 개설된 의료기관임을 이유로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에 근거해 의료재단에 대해서는 144억원의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을, K이사장과 L대표이사에 대해서는 각각 86억원의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을 했다.

이에 K이사장과 L대표이사는 건보공단의 환수처분이 부당하다며 대구지방법원에 환수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환수처분 취소 소송이 진행되는 중 건보공단은 의료재단에 대한 당초처분의 환수금액 중 22억원을 감액했다.

K이사장과 L대표이사는 ▲Y의료법인이 설립한 요양병원은 비의료인이 의사 등의 명의를 빌려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경우와는 달리 봐야 하므로, '무자격자에 의해 개설된 의료기관임을 전제로 한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은 위법하고 ▲의료법인과 원고들에게 내린 각각의 처분은 재량행위임에도 건보공단은 병원이 실시한 요양급여 내용과 요양급여비용의 액수 등의 제반 사정을 참작하지 않은 채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환수하는 내용의 처분을 내려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대구지방법원 재판부는 "원고들이 같은 사유로 형사사건에서 유죄판결이 선고된 점 등을 고려하면, Y의료재단이 설립한 요양병원은 의료기간을 개설할 수 없는 원고들에 의해 개설된 의료기간으로서,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기관이 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적법하지 않은 요양병원이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를 실시하고, 그 급여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해당해 부당이득징수처분의 대상이 된다"며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은 요양기관에 대해 보험급여나 보험급여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고 규정해 문언상 일부 징수가 가능하다는 것을 눈여겨 봤다.

요양기관이 부당한 방법으로 급여비용을 지급청구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의 건정성을 확보하려는 데 입법 취지가 있지만, 요양기관으로서는 부당이득징수로 인해 이미 실시한 요양급여에 대해 그 비용을 상환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므로 침익적 성격이 크다고 본 것.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 제2항이 정한 부당이득징수는 재량행위라고 보는 것이 옳다"며 "건보공단이 환수처분 당시 원고들에 대한 환수금액을 산정하기 위해 고려가 필요한 제반 사정에 대해 재량권 행사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건보공단이 소송 중 Y의료재단에 대한 환수금액 중 일부를 감액하기는 했으나, 행정행위의 성질이나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하자있는 행정행위의 치유는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환수처분에 존재하는 하자가 치유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관련 형사사건을 보면, L대표이사가 병원 개설 및 운영을 주도했고, K이사장은 상대적으로 그 가담정도가 적어 보이는데, 건보공단은 원고들에게 별다른 차이 없이 동일한 금액으로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징수하려 했다"며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어 K이사장과 L대표이사, Y의료재단에 대한 각각의 환수처분은 취소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 "건보공단이 소송이 진행되는 중 감액한 22억원에 대한 원고들의 취소를 구하는 처분은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

이번 판결과 관련 김주성 변호사(법무법인 반우)는 "건보공단이 지나치게 행정행위를 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문제라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건보공단이 사후적으로 감액한 처분을 하려면 제일 먼저 내린 환수처분을 취소하고 재처분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공권력을 사적 이익으로 남용하는 것에 제동을 건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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