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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CCTV 법안 통과, 그리고 의사의 직업적 권위와 자율성
수술실 CCTV 법안 통과, 그리고 의사의 직업적 권위와 자율성
  • 신동욱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9.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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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31일, 드디어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전 세계 최초로 국회를 통과했다. 절대다수의 여당이 주도하고, 국민 다수가 찬성하는 법이니 어차피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다. 많은 의사들이 반대의견을 피력하고, 필자도 얼마 전 한마디 거들었지만 소용없었다(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관련 기사 보기)

영화 한 편이 생각났다. 장예모 감독, 갈우, 공리 주연의 1994년 작, 인생 (중국어 원제 活着; 영문명, Lifetimes). 1940년대 국공내전에서 1960년대 문화대혁명에 이르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명작이다. 의사로서 보기에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영화의 맨 뒷부분이다. (관련 영상 보기)

모진 풍파 속에서 겨우 살아남았으나 아들까지 사고로 잃게 된 주인공 (갈우·공리) 부부. 어린 시절 열병을 앓으면서 언어장애가 된 딸이 혼기가 되어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게 된다. 만삭이 된 딸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문화대혁명 시기라 병원에 있던 의사들은 모두 반동으로 분류돼 감옥에 가 있는 상황. 병원에는 하얀 가운에 붉은 완장을 찬 학생들이 의사 역할을 하면서, 걱정하는 부부에게는 걱정하지 말라 한다. 그러나 갑자기 딸은 하혈을 하게 되고, 학생 의사들은 허겁지겁할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죽어가는 딸을 보며 주인공 (공리)가 외친다. 

"의사 선생님들, 내 딸을 구해줘요. 제겐 이 딸 하나밖에 없어요" -  영화내용 中

우리 전공의들에게 가끔 던지는 화두가 있다. 의사에게 왜 '면허'라는 것을 주는지 아느냐고. 오래 공부한 의사들 잘 먹고 잘 살라고? 아니다. 의사에게 진료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를 주는 이유는 환자들을 무면허자들의 돌팔이 의료행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서양의학사를 보면 의사들이 전문직종으로 대두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세기 중반만 해도 정규 의학 교육 체계는 없었고, 효과적인 치료라는 것은 거의 없었다. 의사가 아니어도 의료 행위가 가능했다. 의사는 전문직으로 규정지어지지 않았고, 대부분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일을 병행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부터 미생물학·방사선학 등 과학적 의학이 대두되면서, 의사는 권위를 가지기 시작했고,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경제적 지위도 상승하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면허라는 독점적 권리를 가지게 된 것은 의사집단의 요구도 있었지만, 사회도 그것이 환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전문직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고도의 훈련과 교육을 통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지며, 행동 규범과 윤리를 준수하고 공공의 복리에 기여하는 대신 고도의 직업적 자율성 (professional autonomy)과 자기 규제(self-regulation)을 보장받는 직업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가 의사들에게 면허라는 독점적 권한을 부여하고, 환자들이 의사에 대해서 직업적 권위를 인정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몸을 맡겼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번 세계 최초 수술실 내 CCTV 법안의 통과는 더 이상 의사들의 전문가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고, 의사들의 직업적 선의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직업성 자율성과 자기 규제 대신, 환자가 직접 의사의 행위를 감시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대리수술, 성추행 사건 등 환자와 국민들이 왜 이런 법을 찬성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입법을 했으니, 법안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이것이 현재 우리 국민의 뜻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사에게 그 동안 부여됐던 전문가로서의 대접은 절대적이거나 천부적인 권리는 아닐 것이니, 국민이 거둬 가겠다면 의사들도 뭐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냥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 감시하에서 수술하기 싫은 의사들은 본인이 수술을 그만 두는 수 밖에. 의대생이나 젊은 의사들은 아예 다른 진로를 모색하거나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혹자들은 이렇게까지 되지 않으려면 의사들이 자율적으로 정화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의사 면허는 대부분의 선진국과 달리 보건복지부가 관리한다. 범죄자들의 면허를 박탈하지 않은 것은 보건복지부이지 의사단체가 아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의사들이 사회와 더 많이 소통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글쎄, 필자가 보기엔 너무 막연한 지적이다. 환자를 보는 개별 의사들이 어떻게 사회와 소통할 수 있을까? 굳이 해야 한다면 의협의 홍보이사나 대변인 정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의료행위를 외부에서도 낱낱이 확인할 수 있다면 의사가 의료사고에 대비한 방어적 태도로만 수술을 할 우려가 있다. 병원 안에서 이뤄진 불미스러운 행위는 징계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정화하는게 바람직하다." 

누구의 말이었을까? 이번 수술실 내 CCTV 의무화 관련 법안을 공동 발의한 신현영 의원이 6년 전 의협 홍보이사 겸 대변인 시절에 했던 말이다. (관련 기사 보기)

다행히도 의원께서는 법안 통과를 알리면서 걱정이 됐는지,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 기피 문제 악화에 대해서도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의원께서 한 때는 외과 전공의인 적도 있었으니,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외과를 살릴 방책도 잘 만드실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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