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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죄 없다고 입증 못하면 유죄라니…"
"죄 없다고 입증 못하면 유죄라니…"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1.04.0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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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입증 책임 전가 분쟁조정법 개정안 비판 봇물 
헌법적 가치 '무죄추정원칙' 훼손…"즉각 폐기" 한 목소리
소송 남발·기피과 심화…방어·최소진료 등 의료 질저하 불보듯

"죄가 없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유죄라는 게 민주국가에서 가능한 일인가?"

의료기관에게 의료사고 입증 책임을 명문화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일부개정 법률안'에 대해 의료계의 비판이 들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지난 2월 25일 발의한 이 개정안은 의료사고 발생 때 의료기관의 입증 책임을 적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3월 초 각 의사회·학회 등 산하단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개정안 의견조회에는 '즉각 폐기'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의료인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불필요한 갈등과 분쟁을 유발하며 과도한 의료소송 남발이 불보듯하다는 지적이다. 또 방어진료, 최소진료, 과잉검사 등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결국 적극적인 진료를 통해 담보되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막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와함께 의료사고로 인한 환자배상책임과 의료과실 입증 책무를 법률로서 규정하는 것은 행위자의 정당한 판결받을 권리를 보호하는 헌법적 가치를 크게 훼손한다는 비판이다.

'의료사고'와 '환자 피해'에 대한 명확한 개념 규정도 없이 의사에게 무한책임을 전가하는 문제점도 짚었다. 

의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불가항력적 상황까지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모든 의료행위에 '과실없음'을 증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런 논의 이전에 과실과 무과실의 정의와 범위에 대한 결정이 선결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의료계는 부존재증명은 존재증명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에 결국 소극적 진료행위와 불필요한 검사가 이뤄지고, 모든 의료행위가 최선의 진료를 통한 질병 완치가 아닌 합병증 최소화, 최소침습적 행위로 유인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국민 건강권에 직접적인 침해가 예상된다는 인식이다.  

소송 피해가 우려되는 흉부외과·산부인과·외과 등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의료분쟁 조정이나 재판을 통한 입증과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의료기관이 의료사고 발생시 무조건 피해배상을 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으며, 중증 환자에 대한 진료 회피와 국가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필수의료의 공백, 인원부족 현상까지 맞닥뜨리게 된다는 진단이다.  

가뜩이나 법원이 피해자에 대한 의료사고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상황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과실이 없는 경우까지 의료소송이 남발될 우려도 제기했다. 

민·형사법 상 원칙적인 입장도 되새겼다. 일반적으로 불법행위에 대한 입증 책임은 피해를 주장하는 이에게 있고, 이는 의료현장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의협은 "의료사고에 대한 무과실 입증 책임을 전가해 모든 의료사고 피해 의심 사건에 대해 의료인에게 방어토록 하는 것은 법의 목적에 어긋나며 안정적 진료환경을 훼손시킨다"며 "무엇보다 다른 손해배상 책임제도와는 달리 의료사고에 한해 입증책임의 완전한 전환은 근대 손해배상법제도상 근본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못박았다.

이어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실시했더라도 의료행위와 무관하게 예상치 못한 예후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입증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전근대적이라는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불법행위법 상 다른 손해배상 책임제도와의 형평성에도 어긋나고 헌법적 가치인 무죄추정 원칙에서도 벗어난 개정안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이번 의견조회에는 서울특별시의사회·부산광역시의사회·대한내과학회·대한마취통증의학회·대한비뇨의학회·대한산부인과학회·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대한신경외과학회·대한영상의학회·대한이비인후과학회·대한재활의학회·대한피부과학회·대한비뇨의학과의사회·(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대한신경과의사회·대한신경외과의사회·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대한정형외과의사회 등 18개 전문가 단체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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