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길을 잃다
진료실에서 길을 잃다
  • 김승기 원장(경북 영주·김신경정신과의원)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4.0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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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길을 잃다

1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파요
더는 같이살기 싫어 저승 문턱도 몇 번 갔다 왔어요
남편이 의처증이에요 바람은 지가 피면서


약을 드세요
누구보다 힘든 당신과 아내를 위해 약을 드세요
일주일치 약을 처방했다


간호원실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데
여자는 가고 남편이, 의처증 환자가 나를 보자고 한다
순간 오싹했다
뒤틀리고 좁은 창을 가진 사람들은 집요하고 쉽게 분노한다
자기를 입원시킨 의사에게 칼을 들고 덤비기도 한다


 그는 갑자기 일어서 웃통을 벗고 자기 몸을 보여준다. 아내가 옆에 있어 말은 못 했는데 난 매 맞는 남편이에요. 며칠 전 집사람 전화기 밖으로 웬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리고 가끔 전화 걸다 보면 잘 못해서 녹음되는 수가 있잖아요. "자기 내가 사랑하면 되잖아..." 제 전화로 옮겨 놨는데 한번 들어 보실래요. 어떻게 내가 의심을 안 해요. 그러면서 술만 먹으면 유리컵을 던지고, 개새끼 씹새기 합니다. 나는 내놓으라 하는 공인 중개사인데 선생님은 내 얘긴 듣지도 않고...


칼 대신 원망이 나를 찔렀다


2

 제가 시동생 시누이 공부 다 가르치고 아파트도 사주고 했어요. 좀 싫은 내색하면은 이 집 땅 다 네 거다 하셨어요. 그리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러자 남편에게 연락도 않고 시골 재산을 오 등분해 나누었어요. 형제 다수가 동의하면 그럴 수 있다네요. 다 좋아요 포기했는데 우리가 현재 농사짓는 복숭아밭이 더 좋다며 소송이 들어왔아요. 남편은 자기도취 성격장애에요. 인터넷 찾아보니 딱 맞더라고요. 우선순위도 모르고 자기 고집만 부리고 뭐라면 제 생각에 취해 소리 지르고 욕하고 때리고, 분노조절 장애에요. 애들이 아빠가 들어오면 방으로 들어가 말도 안 해요. 근데 내가 무슨 지랄병이라고 나를 여기로 끌고 왔어요. 선생님 내가 무슨 정신병이지요... 궁금한 게 있는데, 하루 종일 이런 애기 다 들으시고 어떻게 푸세요.


나도 미궁에 빠질 때가 있다
하늘에 청진기를 댄다

김승기
김승기

 

 

 

 

 

 

 

 

▶2003년 <리토피아>로 등단/시집 <어떤 우울감의 정체> <세상은 내게 꼭 한 모금씩 모자란다> <역>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산문집<어른들의 사춘기><우울하면 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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