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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19 15:07 (화)
엄중한 시기에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지 말자
엄중한 시기에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지 말자
  •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3.0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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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의협신문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의협신문

어떤 사람이 살인죄를 저질렀다. 그런데 그 가족까지 감옥에 보내 버렸다. 당연히 가족은 이에 항의했다. 그랬더니 온갖 언론이 이렇게 보도했다. '저 가족은 살인죄를 저지른 흉악범을 감옥에 보내는 것에 반대한다.' 이쯤 되면 언론이 협박하는 격이다. 가족이 입을 다물지 않으면 가족 모두를 파렴치범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의사면허 결격사유를 확대하는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의료계가 이에 항의하니 온갖 언론이 '의료계는 살인·강간범의 면허 취소를 반대한다'고 보도했다. 이쯤 되면 언론이 협박하는 격이다. 의사들이 입을 다물지 않으면 의료계 전체를 파렴치범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의료계가 살인·강간범의 면허 취소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언론은 의료계의 주류적 주장과는 거리가 먼 내용으로 의사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의료계는 살인·강간범의 면허 취소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이를 넘어 무차별적으로 면허 취소 사유를 확대하는 것에 반대한다.

의료인의 면허를 관리하는 것은 환자의 안전을 위해 필수적이다. 의료인이라 함은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조산사를 말한다. 의료법은 사전적으로·사후적으로 의료인의 면허를 관리한다. 의료법 제8조는 의료인 면허를 받을 수 없는 사유를 열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약중독자는 의료인이 될 수 없다. 의료법 제65조는 사후적으로 면허를 취소하는 사유를 열거하고 있다. 이 중 하나가 의료법 제8조의 결격사유다. 따라서 면허 취득 후 의료법 제8조의 결격사유에 해당하면 의사 면허가 취소된다. 

그런데 의료법 제8조 제4항은 11개의 보건의료 관련 법령, 그리고 형법의 일부 조항을 위반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것도 의료인의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형법의 일부 조항은 허위진단서 작성죄, 낙태죄, 업무상 비밀누설죄, 허위진료비 청구로 인한 사기죄 등 의료인의 직무와 관련된 규정이다. 

그런데 이번 개정 법률안은 모든 금고 이상의 형으로 결격사유를 확대하였다. 살인·강간범의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무차별적으로 면허 취소 사유를 확대하였다.

사실 의료법 제8조의 결격사유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예전에는 시각·청각·언어장애도 결격사유에 포함되었다. 이런 장애를 갖고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환자 진료 외에도 의사로서 여러 업무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결격사유는 장애인에 대한 부당한 차별로서 인정되어 삭제되었다. 또한 예전에는 파산도 결격사유에 포함되었다. 친척의 보증을 섰다가 파산선고를 받을 수도 있다. 이런 파산선고가 의료인의 결격사유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과도하다. 따라서 이런 결격사유도 삭제되었다.

의료계가 개정 법률안에 반발하니 여러 변호사가 나서 의사 때리기에 가세하였다. 변호사는 이미 모든 금고 이상의 형이 결격사유로 규정되어 있는데 의사들이 동일한 결격사유에 반대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형평이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다. 만일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형평에 반하는 것이다. 변호사가 수임료가 너무 싸다고 거부하면 처벌받는가? 전혀 아니다. 의사는 처벌받는다. 변호사가 집단으로 폐업한다고 처벌받는가? 전혀 아니다. 의사는 처벌받는다. 변호사가 강제로 수임료를 정부에 의해 통제받는가? 전혀 아니다. 의사는 통제받는다. 의사와 변호사가 다른 점을 찾자면 수도 없이 많다. 따라서 변호사의 결격사유가 하나의 참고는 되겠지만 단지 그것만을 이유로 의료계의 주장을 비합리적인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과도하다.

2019년 현재는 결격사유와 관련하여 의사와 변호사는 같지 않다고 판시하였다. 의사, 약사, 관세사는 직무 범위와 법령에 따라 부담하는 의무가 전문영역으로 제한되지만, 변호사는 그 독점적 지위가 법률사무 전반에 미치기 때문이다. 즉 의료법, 약사법, 관세사법과 달리 변호사의 결격사유가 되는 범죄의 종류를 직무 관련 범죄로 제한하지 않아도 합리성과 형평에 반하는 자의적인 차별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료계가 헌재의 위 결정을 인용하니 어느 법학 교수는 이렇게 의료계를 비판했다. 헌재 결정은 의사와 변호사를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국회의 입법 재량에 속하기 때문에 합헌이라는 것이지 이 둘을 항상 달리 취급하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은 맞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은 의사와 변호사의 결격사유를 달리 취급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입법적 관점에서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국회의 입법 재량이 있지만 달리 취급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면 달리 취급하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면허나 자격을 요구하는 직종이 많다. 변호사, 회계사는 금고 이상의 형을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건축사는 건축법, 건축사법 단 두 법을 위반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만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달리 복지 분야에서는 금고 이상의 형을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회복지사가 대표적이다. 반면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통상 직무와 관련된 금고 이상의 형을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종합하면 법과 관련 있는 직종은 모든 금고 이상의 형을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고 기술과 관련 있는 직종은 직무와 관련된 금고 이상의 형을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복지 분야는 모든 금고 이상의 형을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헌재는 이러한 범주적 구분에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그래픽/윤세호기자seho3@kma.org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seho3@kma.org ⓒ의협신문

그런데 모 의대 교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하여 피해자의 관점에서 감정적인 언어를 구사하였다. 모 교수에 따르면 중앙선을 침범한 교통사고로 중대한 피해를 야기한 의사가 버젓이 진료를 계속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끔찍한 일이라는 것이다. 

피해자도 중요하지만, 환자도 중요하다. 지속해서 세심한 관리를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는 자신을 진료해 온 의사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주치의가 더는 자신을 진료해 줄 수 없다고 전해 왔다고 생각해 보자. 교통사고를 일으켜 금고 이상의 형에 집행유예를 받았기 때문이란다. 환자는 절망스럽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 있다. 도대체 의사가 일으킨 교통사고와 내 진료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필자는 의대에서 의료윤리를 가르쳐 왔지만, 교통사고가 의료인의 직업윤리에 위배된다는 주장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교통사고의 피해자라면 보상을 위해서라도 의사가 진료를 계속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것 같다. 교통사고를 야기한 의사가 진료하는 꼴을 못 보겠으니 법으로 이를 금지해 달라고 한다면 다른 선진 외국에서는 의아한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전근대적인 동해보복(同害報復) 사상과 유사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통사고와 의사의 업무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물어올 것이다. 파산과 의사의 업무가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묻는 것과 유사하다. 

한편, 의료인의 우려가 계속되니 이창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개정 법률안은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악질적인 사고일 때만 교통사고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보건의료정책관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문제가 없다면 약사의 결격사유는 왜 확대하지 않는가? 같은 보건의료인임에도 불구하고 의료인보다 훨씬 결격사유가 좁은 약사는 내버려 두고 의료인의 결격사유만 강력히 강화하는 것은 균형 있는 정책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유행이라는 엄중한 시기에 직면해 있다. 시급한 일과 시급하지 않은 일을 섞어 불필요한 갈등을 만드는 것은 어리석다.

해법은 있다. 먼저 살인·강간범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의료법을 개정하자. 이를 위해서는 의료법 제8조의 결격사유에 형법의 일부 조항만 추가하면 된다. 그리고 시간을 갖고 넓게 보건의료인의 면허 결격사유에 대해 종합적인 연구를 하자. 그래서 보건의료 인력 간의 형평성을 도모하는 합리적 법률을 만들어 보자. 최소한 지금 이 시기 불필요하게 코로나19과 싸우는 의료인을 겁주고 방해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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