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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 치료의 만족도 평가 문제
한방 치료의 만족도 평가 문제
  •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1.2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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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검증보다 설문조사와 만족도를 내세우는 일은 대체의학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대체의학 검증 연구의 권위자 에드짜르트 에른스트 교수는 그의 저서 <대체의학이라 불리는 사기(SCAM)>에서 대체의학 논문들을 분석해 이 점을 지적했다. 이런 설문조사 논문들은 "많은 사람들이 대체의학을 활용하고 만족했기 때문에 비용 부담을 덜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식의 홍보로 이어지는 비과학적 사이비연구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시나 한의학이 임상시험 근거 없이 만족도를 내세운다. 그런데 만족도 조사가 효과를 평가하는 데에 얼마나 쓸모없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가 최근 발표됐다. 

지난달 전라남도 한의난임치료 지원사업의 만족도 발표가 매우 인상적이다. 2020년 참여한 난임여성 100명 중 17명이 임신하고 그 중 2명은 이미 유산했는데, 84.5%라는 높은 만족도가 나왔다는 것이다. 

총 몇 개월간의 임신을 성공으로 평가했는지 보도에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2019년 발표된 4개월간의 한약 복용기간과 추가 3개월까지 총 7개월의 임신을 평가한 한의약 난임치료 연구결과와 유사할 것 같다. 당시 연구에서는 90명 중 13명(14.4%)이 임신하고 7명이 출산, 6명이 유산했다. 대조군이 없어서 한약이 임신과 출산에 도움이 되는지 해로운지는 평가가 불가능했다. 원인불명의 난임여성들을 상대로 한 기존 연구들에서 나타난 자연임신율과 비교했을 때 14.4%는 유사하거나 오히려 낮은 수치다. 전남 한의난임치료 지원사업은 17%가 임신했다니 한방 치료가 특별히 도움이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사업에서는 임신을 앞두고 한약을 먹을 정도로 한의학에 대한 믿음이 강한 사람들에게 4개월간의 한약·침·뜸 등에 대한 치료비용 180만원이 지원됐다. 그럼에도 15.5%가 만족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랍지 않은가? 불만족인 사람들은 한의학을 믿지 않지만 가족의 강요로 한약을 먹게 됐던 것일까? 

난임여성들에게 태아에 해로울 가능성이 있는 한약이 아니라 영양제·한우고기·마사지 등을 180만원어치 씩 제공했으면 만족도는 100%가 나오지 않았을까? 아니, 그냥 현금을 쥐어줬으면 분명히 100% 만족도가 나왔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편이 임신과 출산 성공률이 더 높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한방 치료에 대해서도 만족도가 높다고 홍보했다. 한약을 무료로 준다는 홍보를 보고 연락해서 한약을 받은 환자들은 당연히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추나는 기원을 따지면 한의학이 아니다. 명칭은 중국에서 차용했지만 내용은 카이로프랙틱과 정골요법 등 서양의 대체요법을 바탕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수기치료가 의료로 활용되지 않았다. 1988년에 정부가 한의사들에게 한방물리요법을 허용하자 맹인안마사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500명이 생계를 보장하라며 시위한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수기치료나 마사지는 한의사들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중국에서 추나는 마사지사들의 마사지도 포함된다. 중의사들의 논문에서도 추나를 'Chinese massage'라고 기술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진짜 추나'를 받으려면 한의원보다는 중국전통마사지샵의 중국인 마사지사를 찾아가야 한다. 

필자는 어깨와 등 통증 때문에 중국마사지를 여러 차례 받아봤다. 한의사들에게 악명이 높아지기 전에는 탐방도 할 겸 한의원에도 다녀보면서 추나도 받아본 경험이 있다. 개인적인 평가를 매기자면 중국마사지사의 추나는 매우 만족이고, 한의사의 추나는 매우 불만족이다.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에서 한의사 추나보다 중국 추나를 지원해주면 더 많은 국민들이 행복해할 것 같다. 어차피 한의사들의 추나가 중국마사지사의 추나보다 치료효과가 좋다는 근거도 없다. 시간 대비 비용은 중국 추나 쪽이 훨씬 저렴하다. 

한방 치료를 원래 좋아하던 사람들에게 만족도를 조사하면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비용까지 지원해주면 만족도는 더욱 높아지고, 더 많은 지원을 해달라고 대답할 것이다. 의료에 대한 만족도 조사는 단순히 쓸모없는 정도를 넘어서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첩약급여화 시범사업도 만족도 조사로 평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15% 임신유지에도 84.5%의 만족도가 나온 전남 한의난임치료 사업과 마찬가지로 첩약의 실제 효과와는 관계없이 설문조사에서는 높은 만족도와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나올 것이 뻔하다. 

한약이 단순한 음식이고 추나가 단순한 마사지라면 만족도 평가로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한의원은 맛집이나 마사지샵이 아니다. 국민의 질병을 관리하는 의료정책을 결정하는 데에 만족도 조사에 속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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