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법을 보며- 법안 발의 전 면밀한 문제 분석과 대책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정인이 법을 보며- 법안 발의 전 면밀한 문제 분석과 대책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 신동욱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1.17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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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편승한 법안 발의·건수 올리기 식 법안, 더 이상 안돼

지난해 10월, 16개월 나이의 어린 정인이가 세상을 떠났다. 온몸이 멍들고, 팔 다리가 부러지고, 장기가 파열된 채로. 실로 끔찍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1월 2일 방송 보도로 정인이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국민의 공분을 샀다. 여야 의원들은 불과 사나흘 사이에 16개의 법률안을 무더기로 발의하였다. 그리고 1월 8일 소위 '정인이 법'이라고 불리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아동학대 신고 즉시 수사 착수, 경찰과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의 출입 가능 장소 확대, 아동학대 혐의자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제재 등을 담았다. 단 일주일만에 벌어진 일이다. 

아동학대는 늘 일어났다. 보건복지부의 <2019 아동학대 보고서>를 보면 2019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4만 1389건이고, 최종적으로 학대로 판단된 건수만도 무려 3만 45건이다. 즉 하루에 거의 100건 정도의 아동학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같은 해 아동학대로 42명이 사망했는데, 한 달에  3∼4명에 달한다. 어떻게 보면 정인이 사건은 일상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법을 만들기보다 기존의 제도와 정책을 제대로 집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2013년 칠곡 의붓딸 학대 사망 사건 이후 아동학대 치사죄를 만들었으며, 2017년 준희 사건으로 취학전 아동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 제도도 강화했다. 2020년 천안 아동학대 사건 이후 학대 의심신고가 2회 이상이면 아이를 분리하도록 바꿨다. 즉, 있는 제도만 잘 활용해도 상당부분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현실에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정인이 사건도 사망 전까지 어린이집 교사, 이웃, 의사가 3차례 아동학대 의심신고를 했다. 그러나 경찰은 제대로 된 수사도, 보호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인이는 사망했다. 

대통령은 1월 4일 정인이 사건에 대해 "입양 아동을 사후에 관리하는데 만전을 기해 달라, 입양 절차 전반의 공적 관리, 감독뿐 아니라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했다. 

그러나 2019년 아동학대로 판단된 약 3만건 중 양부모에 의한 학대는 94건으로 전체의 0.3%이고, 사망한 42명 중 입양 가정은 1명에 불과하다. 실제 대부분의 아동 학대는 친부모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입양'을 강조하면서 입양 부모는 '잠재적 아동학대범'으로, 입양아들은 '불쌍한 아이'로 사회적 낙인만 더 찍고 있다. 2012년 입양 특례법 개정으로 입양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2010년 1462명이던 국내 입양 아동수는 2019년 387명으로 줄었다. 

이번에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법안이 여러 건 나왔다. 전문가들은 처벌을 강화하면, 오히려 범죄가 숨어든다고 한다. 실제로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정형을 강화한 이후 기소율이 떨어졌다고 한다. 형량을 높이면 입증 책임 역시 커지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은 최종 법안에는 포함되지는 않았다. 

발의 법안 중에는 약사를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에 포함하는 법도, 의사 등 아동학대 신고의무자가 학대 의심상황을 목격하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1000만원으로 올리는 내용도 있다. 역시 통과 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인이 사건에서 정인이를 '단순 구내염'으로 진단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의사면허를 박탈해 달라는 청원과 비난에 시달렸다. 본인은 아동학대를 의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실효성도 없고, 부작용만 일으킬 수 있는 법안들이다.

실제로 응급실 의료진이 멍 등 학대를 의심한다고 해도, 부모가 "넘어져서 멍이 생긴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상황에서 의심만으로 신고하기는 쉽지 않다. 또 뒷감당이 두려워 신고를 기피할 수도 있다. 지난해 순창의 의료원에서 의사가 아동학대를 의심해 신고 했지만 경찰이 의사의 신원을 노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신고 의사는 부모의 폭언과 욕설에 시달렸다고 한다. 서울대병원에서 지적장애아에 대한 학대가 의심이 되어 경찰에 신고했더니 "병원에서 고발장을 작성하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경찰도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경찰은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정황을 확인해 부모와 아이를 분리시켰다가, 온갖 민원과 민형사 고소에 시달렸다고 한다. 내부적으로도 직위해제와 정직 등 불이익을 당했다고 한다. 법의 미비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는 기전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정인이 법에서 보듯, 심사숙고의 과정 없이 이슈에 편승하거나 건수 올리기 식으로 법안을 발의하는 것은 문제다. 대부분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결과적으로 실효성이 없고 오히려 현장을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도 툭하면 별반 실효성도 없고, 부작용만 있는 법들이 충분한 검토 없이 발의되고 있다. 유령수술 사건이 문제가 되자 '의료인 명찰 패용 의무화법'과 '설명 의무법' 등이 통과됐다. 이것이 과연 법으로 해결할 문제인지 의문이다. 

메르스 때는 '가운 착용 의무화법'이, 중증 소아 환자 사망때는 '응급환자 전원금지법'이, 백남기 씨 사망때는 '최상위 책임자 진단서 작성법' 같은 비현실적 법률안들이 발의됐다.

2016년에는 강제입원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하지만 입원이 필요한 정신질환자들이 입원하기 어려워졌고, 이웃주민 5명을 살해하는 안인득 사건이 발생했다. 

지금도 유사한 법안이 여럿 나와 있다. 

시골이나 기피과에 보낼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공공의대'를 만들겠다는 법이 나왔고, 대리수술을 막기 위해 수술실에 CCTV를 달겠다는 법, 의사가 설명을 더 친절하게 하도록 하겠다는 '친절한 의사법'까지 발의되어 있다. 

20대(2016∼2020년)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는 무려 2만 1384건에 달한다. 이는 프랑스의 20배, 독일 및 일본의 60배, 영국의 80배에 이른다고 한다. 평균 발의 건수가 71건이니 한달에 1.5건을 발의한다는 뜻이다. 매일 동료의원이 발의한 법안 수십 건을 검토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이는 부실한 검토와 회기 마지막날 일괄 통과 등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이슈가 나올 때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슈에 편승해 발의 건수 올리기 식의 법안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전문가들과 시민들 간에 진지하게 숙고하고, 조금 더 문제를 깊이 분석해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는 결과물로 제대로 된 소수의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필자가 딱 하나의 법을 만들 수 있다면, 부실 법안 방지법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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