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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혈우병 '노보세븐' 삭감 심평원 잘못" 8년 만에 의학적 판단 인정
법원 "혈우병 '노보세븐' 삭감 심평원 잘못" 8년 만에 의학적 판단 인정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21.01.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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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대학병원, 혈우병 환자 급여비 6억원 삭감 당하자 이의신청·행정심판·행정소송
법원 "심평원 요양급여 기준 자의적 판단 잘못...증상 악화 따른 적절한 진료" 판단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법원이 급여 기준을 벗어났다며 요양급여비를 삭감 처분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대해 "자의적 판단으로 요양급여비를 삭감한 것은 잘못됐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사건은 노보세븐 투여의 적절성이 문제된 사건으로, 6억원에 달하는 삭감 규모는 물론 혈액응고인자 결핍으로 치료제를 투여가 필요한 혈우병 환자의 적정진료 여부가 달려 있어 관심을 모았다.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재판부는 "D대학병원이 노보세븐을 투여한 것은 요양급여 인정기준에 관한 법령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적정하게 요양급여를 제공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와 다른 전제에서 감액 조정 처분을 한 것은 위법해 취소돼야 하고, 이를 지적하는 D대학병원 측의 주장은 이유가 있다"면서 심평원의 요양급여비 삭감 처분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사건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환자는 6세에 혈우병 A형을 진단받고, 2006년경부터 D대학병원 종양혈액내과에 내원해 혈우병 A형 치료를 받았다. 혈우병 A형은 선천적으로 8번 혈액응고인자를 만들지 못하는 유전적 결함으로 수술은 물론 발치 시에도 대량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D대학병원은 2008년 10월경 관절 통증을 호소하며 내원한 A환자에게 '훼이바'를 투여해 통증을 조절하려고 시도했다. 의료진은 진료기록에 '훼이바 사용 후 호전이 별로 없고, 통증이 심한 경우가 더 많아졌다'고 기재했다. D대학병원은 A환자에게 '노보세븐'을 투여하기 시작했다. 당시 진료기록부에 '노보세븐 사용 후 통증 점수가 10점에서 7∼8점으로 감소했다'고 기재했다.

A환자는 2011년 9월경 치아우식증으로 인해 혈종이 발생한 것처럼 잇몸 안쪽이 부어올랐고, 진료를 위해 2011년 9월 27일 D대학병원에 입원했다.

D대학병원은 2011년 9월 27일∼10월 18일까지 22일 동안 A환자에게 노보세븐알티주(이하 노보세븐)를 투여하고, 심평원에 요양급여비용 심사를 청구했다.

심평원은 2012년 4월 30일 '발치 전 노보세븐을 2시간 간격으로 연속 투여(2011년 9월 27일∼9월 28일)했음에도 잇몸 출혈이 악화하고, 팔꿈치 통증과 손목 배굴(펴는 동작) 불가 등의 증상이 계속됐다는 이유로 노보세븐은 효과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심평원은 발치 수술 전 출혈 제어를 위해 투여한 2일분과 발치 후 유지 요법으로 투여한 2일분(2011년 9월 29일∼9월 30일)을 합한 총 4일분만 적합한 것으로 인정했다.

나머지 투여 부분은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과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 사항에 반한다며 심사청구한 요양급여비용 중 6억 2013만 3470원을 감액 조정했다.

D대학병원은 불복, 심평원에 이의신청을 했으나 기각을 당했다(2012년 8월 28일). D대학병원은 보건복지부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으나, 역시 기각을 당했다(2014년 10월 22일).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는 "출혈이 계속되는 경우에는 1∼2일 이내에 효과를 측정해 다른 약제로 변경하는 등 신속한 조치가 필요했다고 판단된다"며 기각 이유를 밝혔다. 

D대학병원은 심평원의 감액 조정 처분이 잘못됐다며 행정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1심에서 패소한 D대학병원은 항소심에서 "훼이바를 투여했을 때 증상 호전이 없었지만 노보세븐을 투여했을 때 증상 호전을 보였다"면서 "심평원은 우회인자의 순차적 병용 투여법을 고려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방법은 치명적인 폐색전증의 합병증 사례가 보고되는 등 위험도가 높아 제한적으로 권유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A환자에 대한 노보세븐 투여는 요양급여의 적용기준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재판부는 "D대학병원이 2011년 10월 1일 이후에도 환자에게 노보세븐을 투여한 것은 요양급여 인정기준에 관한 법령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적정하게 요양급여를 제공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D대학병원의 손을 들었다.

2심 재판부는 2011년 9월 27일∼9월 30일까지 노보세븐을 투여한 데 대해 "이 사건 환자는 과거 훼이바 투여 시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다가 노보세븐 투여로 증상이 완화됐던 이력이 있었으므로, 병원이 환자의 과거력을 고려해 발치 시 출혈 예방을 위해 노보세븐을 사용한 것은 적절했다"고 판단했다.

2011년 10월 1일∼10월 6일까지의 노보세븐 투여와 관련해서는 "환자가 노보세븐 투여로 인해 증상이 악화한 상태가 아니었고, 발치 후 출혈의 경우 심각한 출혈로 인해 빠른 대처가 필요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약제를 변경해야 하는 장요근 출혈 등과는 달리 발치 후 출혈의 경우 약제 교체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빠르게 약제를 교체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환자에 따라 변이가 심하고 13∼14일까지 지혈이 지연되기도 하므로, 약제를 48시간 이내에 교체해야 한다는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의 판단이 반드시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2011년 10월 7일∼10월 13일까지의 노보세븐 투여와 관련해서도 "2008년경 훼이바로 투여 후 관절 통증에 호전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통증이 심한 경우가 더 많아졌고, 노보세븐 투여 후 통증이 완화됐다는 과거 진료기록이 있어 환자에게 훼이바 투여 효과가 들지 않을 우려가 있었으므로, 당시 의료진으로서는 불확실성 및 위험을 감수하고 약제를 변경해야 할 만한 뚜렷한 근거가 없었다고 판단했다"며 "병원 의료진의 판단은 적절한 것이었다고 존중할 만하다"고 밝혔다.

2011년 10월 14일∼10월 18일까지의 노보세븐 투여와 관련해서도 "감량 중 증상이 악화했다면 약제를 재투여하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이고, 증상이 악화한 이후 이틀간 노보세븐 투여량을 증량했다가 다시 증상이 완화돼 투여량을 줄인 후 환자가 2011년 10월 21일 출혈 소견이 없어 퇴원한 것으로 볼 때, 이 기간의 노보세븐 투여 행위는 증상 악화에 따른 조치로서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D대학병원 소송을 대리한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요양급여기준에 부합하는 진료를 했음에도 심평원이 기준 위반이라고 자의적인 판단을 한 것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의료진의 진료 재량을 인정함과 동시에 심평원의 조정 처분이 위법이라는 것을 인정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기관의 정당한 이익 보호와 함께 잘못된 심사 관행 개선을 위해 의료기관으로서도 부당한 삭감 조정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이나 행정심판뿐만 아니라 행정소송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심사평가원은 1심 판결에 불복해 1월 11일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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