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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병상 절반으로 줄어들 판, 환자는 어디로 가나"
"정신병원 병상 절반으로 줄어들 판, 환자는 어디로 가나"
  • 고신정 기자 ksj8855@doctorsnews.co.kr
  • 승인 2020.12.1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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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정신의료기관 시설기준 강화 계획에 의료 현장 '우려'
"환경 개선 필요성 인정하지만 과도한 기준" 정부에 재검토 요청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정신의료기관의 시설 기준을 강화 방안을 놓고 의료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새로운 시설 기준에 맞추려면 각 병원에서 많게는 절반까지 병상 수를 줄여야 하는데, 병상을 잃을 환자들을 위한 보호조치는 전무한 상황이라 적잖은 혼란이 예상된다.

의료 현장에서는 최악의 경우 전국적으로 1만 8000명에 달하는 정신의료기관 입원환자들이 사실상 강제퇴원 돼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입원실당 병상 수 10병상→6병상 축소, '1.5m' 이격거리 준수 등 강제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말 정신의료기관 병상 기준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안의 내용은 이렇다. 

입원실 당 병상 수를 최대 10병상에서 6병상 이하로 줄이고, 입원실 면적 기준을 현행 1인실 6.3㎡에서 10㎡로, 다인실은 환자 1인당 4.3㎡에서 6.3㎡로 강화한다. 병상간 이격거리도 1.5m 이상 두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입원실에 화장실과 손 씻기 및 환기 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300병상 이상 정신병원은 감염병 예방을 위한 격리병실을 별도로 두도록 규정했다.

정부는 입법예고를 거쳐 내년 3월 5일부터 달라진 시설 및 규격기준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시행일 이후 신규로 개설 허가를 신청하는 정신의료기관에는 이 기준을 모두 즉시 적용한다.

기존 정신병원은 2022년말까지 기준 충족을 위한 유예기간을 주되, 해당 기간 내에는 입원실당 병상 수를 최대 8병상으로 제한하고 병상 간 이격거리 1m를 지키도록 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정신의료기관의 코로나 19 집단감염 발생에 따라 입원실 면적 확보와 병상 수 제한, 300병상 이상 격리병실 설치 등을 의무화해 정신의료기관 감염 예방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제도개선 추진 배경을 밝혔다.

ⓒ의협신문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 주요 내용(보건복지부)

의료 현장 "과도한 규제, 입원 환자 10명 중 4명 거리로 내몰릴 판" 

입법 예고안이 공개되자 현장은 발칵 뒤짚어졌다. 

시설 개선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기준 자체가 워낙 높아 현실적으로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신의료기관들의 지적이다. 

최재영 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장은 "10인실을 6인실로 줄인다고 가정하면, 전국적으로 전체 정신의료기관의 병상이 40%가 줄어든다. 이격거리기준까지 합하면 병원별로 많게는 전체 병상의 절반까지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단순 계산해도 현재 전체 입원환자 4만 4000여명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1만 8000명에 달하는 환자들이 사실상 강제퇴원 돼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고 토로했다.

"병상을 비우자면 현행 수가체계상 (낮은 일당 정액수가에 묶여 있는) 의료급여 환자부터 병원 밖으로 나가될 공산이 크다"고 밝힌 최 회장은 "사회적 취약계층이 가장 큰 불이익을 받게 되는 구조다. 정신병원 증설 등 추가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 환자는 어디로 가야하는가"고 반문했다.

병상 수 축소와 환자 감소가 곧 병원 인력 감축과 경영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이는 다시 의료 질 저하와 정신의료기관 부족 문제로 연결된다.

정신의료기관 관계자는 "경영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병원 입장에서 병상이 줄어 환자가 감소하면, 필연적으로 의료 종사자 수도 줄여나갈 수 밖에 없다"며 "관련 수가를 현실화하지 않는다면, 정신의료기관 붕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협신문
병실 기준 강화에 따른 입원환자 수 변화 예측치(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일각에서는 정액수가에 묶여 있는 정신의료기관에 일반 급성기 병원보다 높은 시설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일반 병원의 경우 입원실 면적 기준 1인당 4.3㎡, 병상간 이격거리 1m 수준의 시설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메르스 이후 강화된 기준이다. 정부는 정신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에서 정신의료기관의 시설기준을 이보다 높은 병상 면적기준을 1인당 6.3㎡, 이격거리는 1.5m로 정했다.  

최 회장은 "정부가 내놓은 시설 기준은, 현재 일반병원 보다도 높다"며  "시설 기준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수가 수준이 열악한 정신의료기관에 일반병원 보다 높은 수준의 시설기준을 강제하는 것은 과도한 요구다. 의료 현실을 감안해 기준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정신의료기관협회는 최근 보건복지부와 가진 간담회에서 이 같은 현장의 우려를 전달했다. 

개정안 의견 수렴 '전자공청회'..."반대합니다" 의견 폭주 

개정안에 대한 의견수렴을 위해 정부가 운영 중인 온라인 '전자공청회' 사이트에서도 반대 의견이 줄을 잇고 있다. 입법 예고 보름여 만인 10일 오후 현재 1600여개에 달하는 반대의견이 달렸다. 

통상 온라인 입법예고에 붙는 의견이 아예 없거나 1∼2건에 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폭발적인 반응이다. 

"현실을 전혀 모르는 탁상공론(최**)", "마녀사냥식 정책(김**)"이라는 비판에 더해 "병상 수가 줄어들면 치료 받아야 할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천**)", "환자 수가 줄면 일하는 직원도 줄어야 하는데 실업자 만들건가(이**)"는 우려까지 다양한 문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지원 없이는 힘든 정책(김**)"이라거나, "저수가 상황에서는 너무 비현실적인 일이다. 정신의료기관에만 적용되는 차별적인 정액수가를, 행위별 수가로 전환하는 등의 수가 현견화 방안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이**)"는 의견도 다수 게시됐다.

'전자공청회' 입법예고안 의견 갈무리
'전자공청회' 입법예고안 의견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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