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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약급여화'의 부작용
'첩약급여화'의 부작용
  •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12.0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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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신경마비·뇌혈관질환후유증, 의과 치료 병행해야 좋다?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이 시작된 11월 20일 대한한의사협회는 첩약급여화에 대해 "국민의 진료선택권 보장과 경제적 부담 완화를 위한 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진료에 최선을 다할 것", "시범사업을 통해 한약의 뛰어난 치료효과를 다시 한 번 확실히 입증해 이를 위한 근거로 활용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먼저 "국민의 진료 선택권 보장"이라는 부분을 보자. 환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선택지보다는 효과와 비용 면에서 가장 우수한 선택지만 존재하는 편이 낫다. 효과 없는 치료를 선택하면 치료 기회를 박탈당하고 치료비를 빼앗기는 피해만 불러온다.

시범사업 대상 질환 세 가지 중 하나는 안면신경마비(벨마비)다. 벨마비는 여러 연구를 통해 발병 초기에 코르티코스테로이드를 써야 완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음이 알려져 있다.

2016년 발표된 코크란 체계적문헌고찰 논문에서는 발병 후 6개월이 지나도 안면의 운동기능이 완전히 회복된 비율이 코르티코스테로이드를 사용한 그룹은 83%, 사용하지 않은 대조군은 72%로 차이가 크다는 결과가 나오는 등 최선의 치료로 인정되고 있다. 

2015년 국내 한의사들이 개발한 '특발성 안면마비 임상진료지침'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연구들을 근거로 침술에 대해 "침치료를 시행하지 않는 것에 비해 시행하는 것을 매우 권고"한다며 A등급으로 권고했다.

한약에 대해서는 뒷받침되는 연구가 없는지 개발진의 임상경험을 의미하는 GPP등급으로 한약 사용을 권고했다.

한의사들의 임상진료지침은 신뢰할 수 있을까? 같은 2015년에 중국 연구팀이 여러 임상시험을 종합해 분석한 체계적문헌고찰 논문에서 침 치료를 뒷받침할 안전성과 유효성 근거가 미달된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심지어 2019년에는 중국의 한 병원에서 513명의 벨마비 환자의 진료기록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환자들의 예후가 좋았고, 발병 초기의 침 치료는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나서 저자들은 침 치료를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중국 학자들조차 부정하는 침술도 한의사들은 A등급으로 권고하는데, GPP등급의 한약은 더욱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해롭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한의협은 첩약급여화가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 선택권을 준다고 주장하는데 오히려 환자의 잘못된 선택이 돈은 돈대로 낭비하며 완치될 가능성을 낮추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의사들이 환자를 전적으로 책임지기는 어렵다고 느꼈는지 첩약급여화 홍보물에서 안면신경마비와 뇌혈관질환후유증에 대해 "의과·한의과에서 병행치료를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라며 의사의 치료를 함께 받으라고 권했다. 

한의협의 월경통 첩약급여 홍보물에는 3개월 동안 한약을 복용하라고 권하고 있다. 환자가 '반값한약'이라는 말만 듣고 갔다가 처음 10일분의 한약만 급여 혜택을 보고, 나머지 80일분의 비용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첩약급여화가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지 가중시키는지 아리송하다.

시범사업 세 가지 질환 모두 단기간의 치료로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다. 한의사들에게는 반값한약이라며 환자를 유인해 장기적으로 한약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좋은 선택일수도 있다.

10일 동안 먹은 한약이 아무 도움이 안 되더라도 "장기간 복용해야 효과가 있는데 10일만 복용해서 그렇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왜 정부는 근거는 제쳐두더라도 10일간의 치료로 끝내기 어려운 장기 질환, 게다가 두 가지는 의과 치료를 병행하라는 질환을 선정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의협은 시범사업을 통해 효과를 입증해 근거로 사용하겠다고 주장했으나 급여화는 안전성·유효성 검증과는 무관하다. 동의보감 등을 근거로 의약품 허가를 얻은 한약제제들 중 일부는 급여 적용을 받고 있지만 그 한약제제들이 안전한지 효과가 있는지 평가할 수 있는 데이터는 없다.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첩약급여화도 결국 "환자들이 만족했다"는 설문조사 결과 정도만 남아서 국민을 속이는 엉터리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작년에 발표된 한의약난임치료 임상연구는 대조군도 없는 엉터리 설계로 얻은 결과를 인공수정 1주기 성공률과 비교해서 인공수정 이상의 효과가 있다는 한의사들의 거짓 홍보로 이용됐고, 그 효과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실상은 한방 치료는 7개월간의 임신성공률로 난임 환자의 자연임신율보다 못할 수도 있는 수준인데 이 점은 충분히 알려지지 못했다.

게다가 연구를 맡은 한의사들은 국제학술지에 엉터리 주장을 담은 논문을 발표하려다가 심사를 맡은 영국 학자가 SNS를 통해 강력히 비판하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첩약급여화가 단순히 환자의 비용 부담을 덜어준다고 해서 좋게 끝나는 일이 아니다. 설명한 것처럼 여러 가지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철저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 칼럼과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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