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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 소견에 따라 항암제 변경…급여비 삭감 이유 안 된다
의학적 소견에 따라 항암제 변경…급여비 삭감 이유 안 된다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20.12.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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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가원, 항암제 변경 '영상의학적 PD 소견 없다'는 이유로 급여비 삭감 처분
법원, "심사평가원 내부 기준, 요양급여대상 범위 지나치게 제한 해석해 위법" 판단
ⓒ의협신문
ⓒ의협신문

대학병원 의료진들이 유방암 환자의 항암제를 변경한 것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 요양급여비용을 삭감한 것에 대해 법원이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요양급여비용 관련 고시에는 투여중단 사유, 계속 투여 사유 등만 명시했는데, 심사평가원이 내부 기준에 따라 '변경 사유가 안 된다'고 확대 해석한 것이 잘못됐다는 판단이다.

A환자는 좌측 유방암 진단을 받고 2007년 7월 부분유방절제술 및 액와 림프절 절제술을 시행한 후 병기 ⅢA, pT2N2MO, HR/PR/HER2(-/-/3+)로 진단받고, 보조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로 및 허셉틴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2013년 1월경 전이·재발 소견이 드러났고 치료를 받다가 2015년 7월경 B대학병원(이 사건 병원)으로 전원 됐다.

B병원 신경과와 종양내과 소속 각 담당의사(이 사건 주치의)는 환자의 상완신경총(brachial plexus)에 유방암이 전이됐다고 진단하고, 항암화학요법으로 할라벤주를 투여해 경과를 관찰했다.

주치의는 환자에 대해 MRI 검사를 시행했고, 검사 결과 영상학적 질병의 진행(PD) 소견은 없었지만, 진료 당시 영상소견과 달리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 등 증상이 더 심해지고 움직임 장애가 악화하는 소견을 관찰했다.

그래서 종양내과 의료진의 논의를 거쳐 '할라벤주 투여에도 PD 상태'라고 판단했고, 할라벤주 투여를 중단하고 2017년 8월경부터 각 진료일에 트라스투주맙엠탄신 성분의 캐싸일라주를 투여하는 치료를 했다.

영상검사 판독의사는 상완신경총을 포함하는 주변부의 영상학적 변화는 없다는 소견을 제시하고, PD 또는 SD의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주치의에게 임상적인 판단을 추천했다.

그런데, 항암제를 변경한 것이 심사평가원장이 공고한 '암환자에게 처방·투여하는 약제에 대한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이하 심사평가원 세부사항)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양급여비용 삭감처분을 당했다.

심사평가원은 "환자에게 종전 투여하던 유방암 항암제를 캐싸일라주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CT나 MRI의 영상검사 결과에서 질병의 진행(PD)이 확인돼야 하나, 주치의는 임상학적 PD에 근거해 항암제를 변경 투여했고, 이는 공고 범위 외 투여에 해당해 요양급여비용 청구를 불인정한다"라며 13건에 대해 총 7765만 5855원을 감액 조정하는 처분을 했다.

즉 ▲객관적인 자료(영상학적 검사 결과)로 질병의 진행(PD)이 확인되지 않거나, 안정 병변(SD) 상태임에도 ▲임상학적 PD 소견을 근거로 항암제를 변경했으므로 변경된 항암제를 투여한 치료가 심사평가원장의 공고 범위 외의 투여로써 요양급여대상이 아니라는 것.

B대학병원은 2017년 8월경 삭감 처분에 대해 이의신청을 했으나 기각됐고, 다시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 재결을 신청했으나 2018년 12월경 '항암제 변경은 영상학적 PD 소견으로 가능한바, 임상적 PD 판단하에 투여된 캐싸일라주는 심사평가원장의 공고 범위 외로 판단된다'라는 이유로 기각됐다.

행정심판에 불복한 B대학병원은 소송을 제기하고 "A환자에 대한 치료가 요양급여기준 위반이더라도, 병원 의료진은 의학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캐싸일라주를 투여했고, 그러한 투여를 결정한 타당한 의학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삭감 처분은 비용 억제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춰 요양급여기준을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의료기관이 난치성 암 환자 진료를 포기하거나 효과가 낮은 의약품을 처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A환자에 대한 캐싸일라주 투여는 요양급여기준에 적합하고 의학적으로 타당한 치료다"라고 강조했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심사평가원장의 공고가 법령의 보충적 행정규칙이기는 하지만, 상위법령의 목적을 너무 확대·해석해 감액 처분을 했다고 판단했다.

법률(국민건강보험법,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보건복지부령인 요양급여기준규칙)의 해석은 가능한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 제·개정 연혁, 법질서 전체와의 조화, 다른 법령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해석해야 하고, 상위법령에 합치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심사평가원장의 공고는 그렇지 않다고 본 것.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심사평가원장 공고는 영상검사 결과에 따른 영상의학적 PD 확인을 항암제 변경의 요건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영상의학적 질병의 진행(PD)이 확인되지 않아 항암제 변경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처분 사유는, 심사평가원장 공고 사항의 해석 범위를 넘어 A환자에 대한 요양급여대상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해 해석한 결과로서 위법하다"고 밝혔다.

또 "약제가 투여되고 있음에도 질병이 진행된다면 해당 약제의 투여를 중단하고 다른 항암제로의 변경을 검토하는 것이 요양급여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봤다.

다른 항암제로의 변경을 '영상학적 PD 소견'이 확인돼야만 가능하다고 제한하면, 종전의 약제를 계속 투여할 수밖에 없다는 불합리한 결과에 이르러 오히려 이런 결과는 요양급여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 때문.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영상학적 검사 결과 병의 진행상태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더라도, 통증의 증가, 부작용 발생 등 임상 증상을 함께 고려해 질병의 진행상태(PD)로 판단할 수 있고, 그런 의학적 판단이 현저히 자의적이거나 불합리하다고 보기 어렵다면, 항암제 변경 투여의 적정성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심사평가원 삭감 처분 사유는 '영상검사 결과에서 PD가 확인되어야 항암제 변경이 가능하다'는 법령상 근거 없는 전제를 바탕으로 이뤄졌으므로, 이 사건 각 처분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위법해 모두 취소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감액조정 처분에 대해 이의신청과 행정심판을 거쳤으나 모두 기각됐지만, 재판부는 의료기관 측의 청구가 타당하다고 해 이의신청과 행정심판과는 달리 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을 심사평가하는 행정기관의 감액 조정 처분이 위법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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