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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06:00 (금)
한국에도 로비스트가 있다 < I 편>
한국에도 로비스트가 있다 < I 편>
  • 김현지 서울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내과 진료교수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10.1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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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 국회 협력관

국회에 처음 들어갔을 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생소했던 직종이 바로 국회 협력관이다. 협력관이란,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 각종 이익단체, 기업 등에서 파견되며 국회를 상대로 자신들이 속한 곳의 이익을 대변하고 가교 역할을 맡는다. 어떻게 보면 한국형 로비활동인 셈이다. 

거의 대부분의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 협회는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지방자치단체·검찰·경찰·국정원 등에서도 협력관을 파견한다. 기획조정실이나 '~담당관실' 혹은 '대외협력팀' 등 소속이며 2∼3명이 팀을 이룬다. 정부 부처의 경우, 사무관이 주로 실무자로 활동한다. 

정부 부처 협력관과 기업이나 협회 등 민간 대관의 차이는 공공성에 있다. 정부 부처 협력관은 부처의 정책과 제도, 법안과 예산을 관철시키는데 주력한다면 민간 대관은 국회의 입법 등 의정활동이 소속 기업이나 단체의 이익에 미칠 영향을 따져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 (편의상 여기서는 정부부처의 대관은 국회 협력관, 그 외는 대외협력팀이라고 지칭한다.) 

옆에서 지켜보아도, 국회 협력관은 '극한직업'이다. 어떻게 버티나 싶을 정도다. 일단 국회의원실이나 전문위원실과의 잦은 소통과 접촉은 필수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왜 또 오셨어요?"라고 물었을 정도로 자주 찾아온다. 미국에서는 '돈'을 이용한 로비가 합법이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김영란 법'이 통과되면서 밥 한 끼 함께 먹는 것도 조심스러운 세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주 눈도장을 찍고 발품을 파는 것이 고전적이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합법적 '로비활동'이다. 

국회 협력관은 소속 상임위의 여야 의원실 자료 청구/제출을 조율하고 각종 민원을 처리하며, 부처 예산을 관철시키고, 상임위나 국정감사 때 부처에 던져지는 질의의 '수위조절'을 맡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국회의원실 보좌진이 '갑질'하기 좋은 상황이 된다. 실제로 협력관에게 못되게 구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다. 한참 나이가 많은 국회 협력관에게 새파랗게 젊은 보좌진이 반말을 하거나 욕설을 하는 등, 부적절한 처사도 꽤 있었다. 

업무 자체도 '빡세다.' 일례로 국회는 서울에, 보건복지부는 세종에 있지 않은가. 복지부 협력관은 1주일에도 수차례 서울과 세종을 오가고, 국회의원실과 상임위 전문위원실에서 찾으면 바로바로 대응해야 하므로 늘 긴장 속에 살아야 한다.

전공의 시절, '의국 치프'라는 이름으로 1달 간 의국 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잡일과 민원을 처리하는 턴이 있었는데, 동기들 사이에서 '동사무소 턴'이라고 불릴 정도로 하루 종일 카카오톡, 문자, 전화와 메일에 시달려야 했다. 정규 근무시간이 뭔가요,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가 지긋지긋해서 핸드폰을 진동으로 바꿔놓는 습관이 몇 년째 유지될 정도다. 

내 눈에는 국회 협력관이 의국 치프와 비슷해 보였다. 그들의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연락은 최소화하고 항상 친절하려 노력했지만, 국정감사 앞에서는 답이 없더라. 내가 요청하는 자료는 굉장히 구체적이고 예민한 자료가 많아서 부처에서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차일피일 미루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나도 그 많은 정부부처를 상대로 하루 종일 전화기만 붙잡고 있을 수도 없는 일, 결국 급한 상황에서는 애꿎은 국회 협력관을 쪼아댔다. '협력관님, 자료 좀...', '협력관님, 어디어디 과에서 자료 제출 안합니다...', '협력관님, 자료 오늘까지 준다면서요...' 가 그 시절 단골 멘트였다. 아마 나 때문에 적잖은 협력관들이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정감사 시즌이 돌아왔다. 지금이 1년 중 국회 협력관들이 가장 바쁠 시기다. 힘든 와중에도 항상 웃는 낯으로 먼저 인사를 건네주시던 몇몇 분을 추억하며, 건투를 빈다. 

■ 칼럼과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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