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법한 '의료법인'이라도 비의료인 실제 운영했다면 '사무장병원'
적법한 '의료법인'이라도 비의료인 실제 운영했다면 '사무장병원'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20.09.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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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사무장병원 의심되지만 비의료인 실질적 운영 안해" '무죄'
2심 "형식적으로 법인 개설해 비의료인 운영…사무장병원" '유죄'
ⓒ의협신문
ⓒ의협신문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을 적법하게 설립하고, 의료법인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한 경우 '사무장병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사무장병원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부산고등법원은 최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의료법 위반(비의료인 의료기관 개설) 혐의로 검찰에 기소, 법정에 선 A씨(아들)와 B씨(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각각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부자지간인 A씨와 B씨는 의료인이 아님에도 의료법인(C의료재단)을 설립, 순차로 이사장이 되어 2010년 10월 7일부터 2018년 7월 31일까지 의료기관인 D요양병원을 운영했다.

이들은 D요양병원을 통해 환자를 진료하고 2010년 11월부터 2018년 7월 31일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92회에 걸쳐 요양급여비 명목으로 225억여원을, 의료급여비 명목으로 31억여원 상당을 지급받았다.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서는 의료인(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이나, 의료법인, 비영리법인 등이 아닌 자의 의료기관 개설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처벌하고 있다.

비의료인이 의료인의 명의를 빌려 형식적으로 개인 혹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을 세우고 실제로는 자신이 의료기관 개설·운영을 주도함으로써 수익을 누리는 형태의 병원(사무장병원)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의료인 개인'이나 '생협'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사례뿐 아니라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을 설립해 목적사업으로 의료기관(요양병원)을 개설·운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비의료인 의료기관(요양병원) 개설, 사무장병원 여부 판단 기준 엇갈려
이번 사건에서는 비의료인의 의료법인 개설을 놓고 사무장병원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 기준은 무엇인지가 쟁점이 됐다.

1심 재판부(부산지방법원)는 피고인들 가족(A씨의 처, 모친)이 병원 직원으로 등록돼 특별한 업무도 없이 적지 않은 월급을 수령한 점, 피고인들 가족이 의료법인의 법인카드 등을 사용한 정황이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D요양병원이 사무장병원이라고 의심할 여지가 있다고 봤다.

그러나 ▲의료법인의 기본재산이 형해화(내용이 없어지고 뼈대만 남음)됐다고 할 수 없는 점 ▲급여가 금액이 다소 많다고 해 병원 수익을 피고인들에게 배당했거나 출연재산을 반환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 ▲이사회 운영이 정관에 따라 소집절차 등을 준수하는 등 합법적으로 이뤄진 점 ▲A씨의 처가 월급을 받은 사실에 대한 횡령 혐의는 검찰에서 혐의없음(증거불충분)의 불기소처분을 받은 점 ▲피고인들과 그의 가족들이 의료법인 명의의 차량이나 법인카드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정황이 있더라도 의료법인의 기본재산을 형해화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려운 점 ▲의료인의 진료에 개입하지 않았고, 병원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정한 방법으로 의료행위를 한 증거거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이 실체가 없는 의료법인의 외관만을 작출한 후 병원을 사실상 개인적으로 운영해 그 운영이익을 취득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피고인들에 대한 의료법 위반과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의 공소사실을 전부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부산고등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비의료인이 실질적으로 D요양병원을 관리·운영했다고 본 것.

부산고법, "비의료인이 실질적으로 요양병원 운영했다" 판단
부산고등법원은 의료법인 명의의 사무장병원이 문제가 된 이번 사건에 대해 의료법인을 생협과 동일한 방식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것에 무게를 뒀다.

부산고법은 ▲의료법인의 설립과 의료기관의 개설 과정, 이사회를 개최하지 않는 등 법률이나 정관에 규정된 의사결정 절차를 밟지 않고, 전적으로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자기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었는지 ▲법인이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 없거나 비의료인의 담보물권 등 설정으로 법인의 자본이 부실해졌는지 ▲의료기관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했는지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에 대한 투자의 대가로서 그 수익을 분배받았는지 ▲비의료인과 의료법인 사이에 재산과 업무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혼용됐는지 ▲의료기관의 규모 및 직원의 수는 어떠한지 등의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한 행위가 형식적으로만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을 가장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그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비의료인의 개인기업에 불과하거나, 그것이 비의료인에 대한 의료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이용된 경우에 이르렀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

부산고법은 피고인들이 형식적으로 의료법인을 개설하는 것처럼 외관을 가장한 뒤 실질적으로는 사익을 위해 자신들의 개인 의료기관을 운영할 목적으로 의료법인을 설립해 병원을 운영했다고 판단했다.

병원장 제쳐두고 업무 전권 행사·운영 수익 분배도 커…"실질적 사무장병원"
부산고법은 ▲피고인 B씨는 2007년 7월 생협을 설립한 후 E의원과 F한의원을 각각 운영해 요양급여비 등을 받은 사실로 기소돼 2016년 10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확정판결을 받은 점 ▲D요양병원은 B씨가 설립한 생협이 E의원을 폐업한 직후 E의원 소속 의료진과 영업재산 등을 승계해 개설한 점 ▲생협은 G의사에게 106병상 규모의 D요양병원을 양도대금의 현실 지급 없이 양도한 점 ▲D요양병원에서 근무했던 의사·한의사들이 피고인들이 병원장인 G의사를 제쳐두고 병원의 운영과 심지어 환자진료에까지 개입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는 점 ▲G의사(병원장) 명의의 요양급여비 수취계좌와 피고인들 명의의 은행계좌 사이에서 의심스러운 거래 내역이 많은 점 ▲피고인 B씨가 D요양병원에 입주한 상가점포 4개 호실을 공매로 취득한 후 이를 기본재산으로 출연하고, 피고인들의 지인을 모아 이사·감사로 선임하는 등 설립발기인대회를 마친 후 의료법인을 설립해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점 등을 종합하면, D요양병원은 의료법인에 의해 인수되기 전 생협과 G의사 명의로 운영되던 당시부터 사무장병원으로 봤다.

특히 ▲피고인들이 실질적인 결정을 한 뒤 이사회는 단순히 형식적으로 이를 승인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던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들이 D요양병원을 운영함에 있어 병원 업무 전반에 대해 전권을 갖고 의사결정과 집행행위를 주도했던 점 ▲피고인들과 그 가족들이 급여 또는 기타의 방식으로 향유한 경제적 이익이 너무 커서 피고인 B씨가 의료법인의 설립 과정에서 출연한 재산에 대한 대가로 병원 운영 수익을 분배받은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점 ▲의료법인의 재정 및 회계처리가 피고인 B씨의 개인재산과 혼재돼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D요양병원은 사무장병원에 해당한다 판단했다.

부산고법 재판부는 "피고인들에 대한 의료법 위반과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의 공소사실을 전부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거나 의료법이 금지하는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으므로 파기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 피고인들에게 각각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다만, 피고인들의 방어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설립해 의료기관 개설·운영…사무장병원 기준 제시 판결
이번 판결은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을 설립해 그 목적사업으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한 경우, 어떠한 기준에 따라 이를 사무장병원이라고 판단할 것인지에 대해 명시적인 대법원 판례가 없는 가운데 나온 판결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부산고법에 따르면 종래 판결(고등법원)에서는 두 가지 판례가 대립했다.

①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의 임원으로 취임해 의료기관의 개설과 운영을 주도했더라도 그 의료법인이 적법하게 설립됐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의료기관을 개설해 주무관청의 관리·감독을 받으면서 운영됐다면, 이를 비의료인에 의한 의료기관 개설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는 없고, 다만, 비의료인의 그러한 행위가 형식적으로만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을 가장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비의료인의 개인기업에 불과하다거나, 그것이 의료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이용된 경우라면 달리 볼 수 있다는 입장에서, 의료법인의 형해화(재무건정성 포함)와 관련 법규 준수 등 여부에 주목하는 견해가 있다.

②종래 의사 개인의 명의를 빌린 사무장병원이 문제된 사안에서 대법원 판례가 제시한, 비의료인의 의료기관의 사실 및 인력의 충원·관리, 개설신고,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운영성과의 귀속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하는 것인지 여부를 판단기준으로 삼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부산고법 재판부는 "1심 재판부는 기본적으로 ①의 시각에서 사안을 분석해 결론을 도출했으나, 당심은 ②의 기준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제반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아울러 관련 서류들의 외형을 넘어서 이 사건 의료법인 내부의 실질적인 운영실체까지 검토해 이를 통해 파악되는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고자 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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