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 걸리면 돈을 주지만, 예방에는 돈을 줄 수 없다는 아이러니
병에 걸리면 돈을 주지만, 예방에는 돈을 줄 수 없다는 아이러니
  • 김현지 서울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내과 진료교수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9.21 18: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식 후 예방접종

비급여 대상이란, 건강보험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환자본인이 진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항목을 말하며 대표적으로 예방접종이 있다. 그런데 정작 정부는 국가 예방접종 지원 사업(NIP)을 통해 소아 예방접종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정부가 최소한 소아에게 있어 예방접종의 중요성을 인정한 셈이다. 어쨌거나 공식적으로 예방접종은 비급여 대상이므로, 예방 효과가 명확히 밝혀진 경우도 정부가 추가 예산을 마련해 별도로 지원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2005년부터 6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인플루엔자백신 무료접종, 2013년부터 65세 이상 폐렴구균백신(PPV)을 무료접종, 2019년부터 임신부의 인플루엔자백신 무료접종이 시작됐다.

그냥 필수 예방접종에 대해서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하고 대상을 점차 확대하면 될 것을, 무척이나 번거롭다. (비급여 영역에 놓여있기에 성인 예방접종의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치명적인 문제점도 있지만 일단 넘어가자.)
  
급여든, 지원 사업이든, 아직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성인 예방접종 중 하나가 바로 이식 후 예방접종이다. 무비증 환자나 면역억제제를 먹는 장기이식환자는 면역력이 저하돼 각종 기회감염에 취약하다.

이 때 면역력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예방접종으로, 면역저하 환자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의료행위이다. 질병관리본부도 성인 예방접종 안내서를 통해 면역저하 환자에게 5∼7가지의 예방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식 후 예방접종은 비급여 항목으로 병원마다 가격이 제각각이다. 2018년 기준, 간이나 신장이식을 받은 환자는 1인당 35만8468원의 예방접종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여기에 진료비와 주사비까지 합치면 환자부담은 더욱 커진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에 공개되어 있는 2018년 장기이식환자 수를 곱하니 환자들이 부담한 비용이 무려 17억2000만원에 달했다.
  
'35만원 정도면 괜찮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면역저하 환자는 평생 치료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의료비 부담이 막중하다. 신장 이식의 경우 수술부터 퇴원 시까지의 평균 약 1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고, 퇴원 후에도 지속적으로 투약료와 검사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35만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2019년 국정감사에서 해당 내용을 질의서로 작성했다. 여기에도 뒷이야기가 있는데, 사실 이 질의서와 보도 자료는 2019년 1월, 윤일규 의원실에서 인턴을 했던 의대생 3명이 작성한 것을 수정한 것이다. 

나는 꼭지를 정해줬을 뿐인데, 본인들끼리 회의를 통해 적극적으로 업무 분담을 하고, 자료를 찾아 2주만에 완벽에 가까운 질의서와 보도 자료를 작성했다.

중간 중간 수정을 위한 조언을 해주면서 열정과 영민함에 몇 번이나 감탄했다. 요즘 의대생들은 정말 다르구나, 내가 벌써 '젊은 꼰대'가 된 건 아닌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질병의 치료보다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 세계적 동의를 얻은, '케케묵은' 아젠다인데, 2020년까지도 정부 정책에 반영되는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병에 걸리면 돈을 주지만, 예방에는 돈을 줄 수 없다는 아이러니. 이식 후 예방접종부터 시작해서 정녕 질병 예방을 위해 힘쓰는 정부의 달라진 모습을 기대해본다. 

■ 칼럼과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