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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증원의 근거와 정책의 결정 과정을 묻는다
의사 증원의 근거와 정책의 결정 과정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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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2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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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구 대한의학회장
장성구 대한의학회장 ⓒ의협신문
장성구 대한의학회장 ⓒ의협신문

정부와 여당은 2022년부터 매년 400명씩 10년간 4,000명의 의사를 증원하겠다고 전격 발표하였다. 정책의 결정권이 당국의 고유 권한이라고는 하지만 명색이 민주주의 국가인데 이렇게 중대한 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정되었는지 궁금하다. 정책결정 과정을 알고 있었어야 할 위치에 있는 의료계 사람들도 그 내용을 모르고 있어서 의아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 결정 내용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하면 의사 개인이나 의사 단체의 이기주의적 발상이라고 벌떼같이 달려들어 매도하기 십상인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다. 

그러나 집고 넘어가야 할 일은 분명하게 확인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정책 결정에 따른 책임 소재를 먼 훗날 추적해 볼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번 정책의 결정 과정은 몇몇 정치인들의 주고받은 이야기와 국회의원 선거 과정 중에 제시했던 선거공약을 실천하기 위하여 서둘러 졸속적으로 결정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의과대학의 신설을 전제로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검증되지 않은 논리를 앞세워 토론도 없이 급조된 정책인 것 같기 때문이다. 

의사라는 전문직에 대하여 적정수를 예측하여 수급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사가 부족한 것은 국가적으로 큰 문제이다. 동시에 의사의 과잉배출 또한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유발한다. 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 의사의 수요 예측에는 반드시 양질의 의사를 배출하여야 한다는 절대적 당위성이 전제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선진국에서는 각 나라의 사회적 현실을 고려하여 필요한 적정수의 의사 수를 추계하기 위하여 많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필자의 자료 분석에 의하면 국내에서도 의사인력의 추계에 관한 연구논문이 과거부터 최근까지 20여 편 이상 보고되었다. 의사인력의 추계에 대한 연구자들의 주장이 공급부족과 공급과잉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런 결과는 필요한 의사인력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연구 방법론의 차이 때문에 발생된 일이다. 그만큼 분명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이다. 

국내에서는 수십 년 동안 변함없이 판에 박은 듯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7년) 자료, 즉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 3.4명을 적정기준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는 2.3명으로써 의사부족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OECD 자료는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금과옥조와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매달려있는 현학적(衒學的)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OECD 자료만을 맹신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첫째, OECD 자료는 모든 국가가 따라야하는 국제적인 기준이 아니고, 단지 OECD 자료일 뿐이다. OECD 회원국 모두가 동일한 기준에 의하여 성실히 데이터를 제출하여 만들어진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자료 자체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

둘째, 시대적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OECD 자료는 의사인력 부족의 기준 중 하나일 뿐이다. 논리적 근거는 1974년 미국의 RAND 연구소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고 있다. 하지만 1960년부터 자료가 업로드 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60년 전부터 주장한 내용으로서 시대적인 변화, 사회적인 환경 그리고 의사의 기능적 역할의 엄청난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셋째, 지금도 많은 선진국에서 각 나라의 다양한 사회적인 요소를 고려한 의사인력 추계 연구에 심혈을 기울고 있다는 것은 OECD 자료의 신뢰부족의 또 다른 반증이다.

넷째, 전술한 대로 OECD 자료는 한국적인 사회 정황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OECD 자료가 움직일 수 없는 절대적인 기준이라면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의사인력의 추계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도, 연구할 필요도 없다는 논리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향후 우리나라의 의사인력 추계를 논의할 때에 OECD 자료는 참고 자료일 뿐이지 반드시 우리의 기준으로 삼아야 된다는 주장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사수급 상태가 현재와 같이 지속될 경우 장기적으로 의사인력 공급이 부족할 것인지 과잉일 것인지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및 정치권에서는 미래 의사인력이 부족하다는 전제하에 의사부족 문제를 의과대학 신설과 의대 입학정원의 증원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여 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단순히 의과대학 신설이나 의대 입학생의 증원만으로는 의사부족을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공급자 유인 수요를 유발하는 결과만을 초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능한 의사의 증원에는 졸업 후 의학교육(Graduate Medical Education:GME) 즉 수련 교육프로그램을 중시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연방정부의 재정지원 확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사인력 증원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수한 의사를 양성하고 증원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폭넓고 미래지향적인 생각이다.

이번에 의사 증원을 결정할 때 이런 점들이 고려되었는지 매우 궁금하다. 아니면 과거처럼 정권의 권력으로 의대 입학정원만 늘려 놓고 늘어난 입학정원을 논공행상 식으로 나누어 먹던 불행한 시대를 답습하려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 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의과대학의 신설은 양질의 의학교육이나 이를 수행하기 위한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정치적 이벤트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소규모 사립 의과대학이 다수 신설됨으로 해서 의사 한 명을 양성하는데 필요한 교육비가 OECD 국가 중 GDP 대비 가장 높은 국가가 되었다. 

전술하였듯이 우리나라는 앞으로 필요한 의사인력의 정확한 추계를 전혀 못하고 있는 나라다. 다만 정치권과 이들에게 의도적으로 동조하는 일부 현시적인 사람들에 의하여 OECD 기준 잣대를 수십 년간 우려먹고 있을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여러 나라가 국가별로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인력 추계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모든 국가에게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는 단일한 정답모형은 없다. 이는 국가마다 서로 다른 의료제도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문화·인구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요소들이 의료제도에 미치는 정도에 차이가 있어서 의사인력의 수급 변화의 양상도 각각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향후 의사 인력을 추계할 때 반드시 고려하여야 할 요소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있다. 해당 국가의 인구학적 변동 추이(인구 감소, 저 출산, 고령화), 인공지능 의사의 출현과 진료 동참의 정도, 사회적 의료이용 빈도, 보건의료 체계의 형태, 현대 의학적 의료수준, 졸업 후 의학교육 프로그램의 형태와 충실도, 노동시장의 변화와 의사들의 근무조건 예측, 향후 의료형태의 변화, 의사들의 근무 형태 변화 및 직업 이탈률(의사이면서 의사 노릇을 안 하는 사람들) 등 아주 다양한 것을 고려하여야 비교적 정확한 의사인력 추계를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힘들고 복잡한 것이 의사인력 추계 문제이다. 

이 분야에서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다고 정평이 나 있는 네델란드의 예를 들어 보자. 이 나라는  보건의료인력 시스템(Health Workforce Planning:HWP)을 구축하여 전문가 조직에서 연구를 수행한다. 정부는 일절 관여를 하지 않고 monitoring만 한다. 이들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의료인력 계획자문위원회(Advisor Committee for Medical Manpower Planning:ACMMP)가 의사인력을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의 연구 및 정책 결정에 대한 신뢰가 높은 것이다.

그러나 정책 결정 과정이 합리적인 것이지 의사인력 추계 자체를 모든 나라가 따라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부가 의사인력의 추계를 발표하고 정책을 수립하기까지는 이렇게 다양한 요소를 충분히 고려한 연구와 전문가 집단과의 수없는 정책 토론회를 거쳐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번에 추계한 의사인력의 근거와 정책 결정이 과연 어떤 과정에 의하여 결정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소상히 밝혀야 할 의무가 정부에게 있다.

과거 정부에서 추계인력의 계산상 착오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예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알고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원하는 국민들은 누구든 대학을 들어 갈 수 있게 하겠다는 정책으로 대학 설치 기준을 완화하였다. 결과적으로 1996년 당시 전국 264개 대학이 351개 대학으로 늘어났다.

한편 인구의 절대 감소로 인하여 대학입학 가능 인구가 2020년 1만 8천명, 2022년 8만 5천명, 2024년 12만 3천명의 정원미달이 발생되고, 2024년에는 전국적으로 87개 대학이 학생이 없어서 폐교하여야 한다. 이 형편없는 정책도 당시는 획기적인 정책이라고 권력자들은 자화자찬 했던 일이 있다. 

2018년 우리나라 신생아는 32만 6,900명(출산율 0.98)이 태어났고 2019년은 약 27만 명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2020년에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취학아동이 없어서 문을 닫는 초등학교가 사상 처음 생겨났다. 2030년이면 전국 초등학교의 29.5%, 2033년에 중학교의 28%, 2036년에 고등학교의 41%가 인구 감소로 폐교된다. 이런 정황을 예측 못한 정부는 2015년에 수립한 정책에서 2030년까지 교사인력을 35만 명까지 유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것이 결국 전국 교육대학교 학생들과 사립 사범대학 학생들 간의 전국적인 싸움판을 만들고 말았다. 

이러한 일들은 인력 추계와 정책 결정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몇 개가 될지 모르지만 의과대학을 신설할 것으로 예상한다. 필자의 머리를 맴돌고 있는 것은 이미 폐교된 서남의대 설립 당시와 너무도 비슷한 현상이 정치권과 의료계 밖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의학교육이 갖추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어떻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사람들이 경천동지할 말을 내뱉으며 의과대학의 신설을 주장하고 있다. 교육은 물론,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교육조차도 권력자들이 일천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한국적 현실의 처참함이다. 

선진국에서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최고의 의사를 양성하는 것을 의학교육의 기본 과제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의과대학 설립 전 부터 정부와는 무관한 독립된 전문가 단체인 의학교육 평가원의 철저한 평가를 받고 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힘 있는 분들에게 이러한 선진제도에 대하여 단 한 시간만이라도 할애하여 공부하시기를 간절히 권고 한다.

의사인력을 증원하는 문제든, 의과대학을 신설하는 문제든 지극히 전문적인 분야의 중요한 문제들이 전문가들의 참여와 숙고 없이 정치적인 이벤트와 권력의 관심사에 따라서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나라는 저급한 국가이다. 실낱같은 희망이지만 이렇게 척박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정황에서 벗어나는 날이 대한민국에도 반드시 찾아 올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이번 정부정책의 결정 과정을 소상히 밝힐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이 칼럼에 언급한 통계는 국내외 여러 연구자들의 주장과 연구결과를 인용하였으며 지면의 한계와 칼럼 형식의 글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인용 사실을 명시하지 못한 점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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