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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19 15:07 (화)
정부의 4000명 의사 증원이 반드시 실패하는 4가지 이유
정부의 4000명 의사 증원이 반드시 실패하는 4가지 이유
  •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7.2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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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하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 ⓒ의협신문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 ⓒ의협신문

1. 지방과 기피 중증 필수 의료에 인력이 부족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답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집을 가졌느냐의 여부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을 추월하는 나라에서 서울과 수도권에서 근무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의사뿐만이 아니다.

의대생들이 의사면허 취득 후에 고향이 아닌 서울의 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하고 서울에서 직장을 잡고 싶어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지방에서 개원하고 봉직하는 것이 이들에게 '합리적인 선택지'의 하나가 될 수 있을 정도의 분명한 유인을 제공하는 것만이 현실적인 답이다.

중증 필수 의료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의 미용, 성형 클리닉에는 피부과나 성형외과뿐만 아니라 외과나 산부인과 등 다른 과목의 전문의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인턴과 레지던트 최소 4~5년, 전임의까지 하면 적어도 자신의 전문과목 영역에서 5~10년 가까이 수련을 받은 전문인력들이다. 그런데 자신의 전공과목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되고 힘들고 위험한데 보상마저 적은 상황에서 이들이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것을 누가 비난할 것인가. 정부가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싶다면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의사 수만 늘리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2. 의대를 입학할 때부터 진로를 정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초등학생 때부터 문과, 이과를 나눈다거나 중고등 학생들에게 경제학과나 법학과처럼 미래의 지망과목을 미리 정하겠다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발상이다.

우리가 대학교 특정학과나 학부를 지망하기 이전에 초중고등학교에서 여러 과목을 같이 배우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여러 과목의 필수적인 내용을 습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떤 공부에 소질이 있고 어떤 공부가 나하고 맞는지 그래서 나중에 어떤 전공을 하는 것이 좋을지를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은 현재 정해져 있는 전문 임상 과목만도 26개이며 이 과목들도 다시 수십 개 이상의 전문과목으로 나누어진다. 예를 들면 내과학에는 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내분비내과 등 세부과목들이 있고 소화기내과 중에서도 상, 하부위장관, 간, 담췌 등으로 다시 나누어진다. 이러한 임상 과목에 기초의학과 여러 관련 과목들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방대한 전공과목이 존재한다.

의과대학에서는 이러한 여러 학문의 내용 가운데 의사라면 알아야 할 최소한과 가장 중요한 내용 위주로 공부를 하게 된다. 일반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4년보다 긴 6년이지만 각 학문의 맛만 보기에도 짧다. 의과대학 6년을 마치고 졸업하는 시점에서도 자신이 어떤 과목을 전공해야 할지, 내가 어떤 과목에 관심과 소질이 있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인턴과 레지던트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왕왕 있다. 과목을 선택해서 전문의가 되더라도 다시 세부적으로 어떤 전공을 할지 선택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의과대학에서 공부하고 실습하고 의사면허를 따고 다시 인턴, 레지던트 수련을 받고 심지어는 전문의로서 세부 전공을 연마하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진로 탐색이 이루어진다. 그것이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이다. 그런데 의대를 입학할 때부터 기피 필수 중증 의료분야로 전공을 정해놓는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흉부외과, 소아외과, 중증외상외과 등을 전공하는 의사가 되라고 하겠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거다.

3. 지역이나 전공을 법으로 한정한다는 것은 개인이 스스로의 능력을 향상시킬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수련병원을 결정하는 것은 보통 집 가깝고 편한 곳이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은 전공,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느냐가 우선이 된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 수련을 원하는 것은 꼭 폼이 나서가 아니라 큰 병원일수록 더 많은 케이스를 볼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배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병원이라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다 같지 않다. 어떤 병원에서는 특정 질환을 구경하기 어렵기도 하고 특정 세부과목이나 술기, 수술을 아예 다루지 않는 병원들도 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곳을 선택하는 것이고 그래서 주로 수도권의 대형병원이 선호된다. 반면에, 정반대로, 원하는 과목을 전공하기 위해서 서울 태생으로 쭉 서울에서 살던 의사가 기꺼이 지방으로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의사면허 취득 후에 특정 지역에서 10년간 복무할 의무가 있는 의사가 자신이 하고 싶은 전공이나 배우고 싶은 기술이 있어도 복무 의무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하거나 원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이것은 분명한 부당한 불이익일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의사로서의 능력을 신장시킬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다른 지역에서도 수련을 받을 수 있고 다만 나중에 돌아와서 지역에서 복무기간을 채우면 된다"고 해명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해당 지역 내에서 수련을 받으면 그 기간 동안 10년의 의무기간 중 상당 기간이 '해결'되는 상황에서 소신에 따라 다른 지역에서 수련을 받고 돌아와서 다시 그 기간 만큼을 복무하는 선택을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지역 내에서 수련을 받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의사를 지역에 묶어 놓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개인이 성취할 수 있는 의사로서의 능력과 경력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의사가 의무 복무하더라도 애초에 사회가 기대하는 만큼의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 있다. 관점을 환자의 입장을 바꾸더라도 이것은 해당 지역의 주민 입장에서도 매우 불쾌한 일이다. 왜 지방 사람이라고 해서 이 지역 안에서 수련받은 의사에게 진료받아야 하나. 만약 자유롭게 원하는 수련을 받은 의사와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복무기간을 채우고 있는 의사가 있다면 주민의 입장에서 어떤 의사를 더 선호하겠는가.

4. 현실적으로 계속 유지될 수 없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의대생과 차별되는 다른 교육과정을 마련해서 별도의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와 같은 별도의 공공의사라는 새로운 면허 종별을 만들지 않는 이상, 다른 의사들과 동일 또는 거의 비슷한 교육과 시험을 통해 의사면허를 취득했는데 근무지역과 전공과목을 제한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면허를 박탈, 취소하겠다는 것이 과도하게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 아니냐는 법적인 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가 정해놓은 지역 또는 전공만 선택하기로 정해놓은 의대생의 입장에서 같이 공부하고 같은 시험 봐서 의사가 된 동기들이 자유롭게 원하는 지역에서 원하는 전공을 선택해서 의사로서 활동하는 것을 볼 때 과연 어떤 생각이 들 것인가.

공부하다 보니 다른 전공도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도 생겼는데 그것을 할 수 없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그런 이들에게 '니가 이국종 교수 멋있다고 고등학생 때 선택한 거잖아... 싫으면 10년 하고 나서 다른 거 다시 하든지...'라고 할 것인가. 자연스럽게 평등과 자유의 문제가 제기될 것이고 결과에 따라서 이 제도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4천 명의 의사는 사실상 정부가 의도와 달리 개인적인 합리적인 선택에 의해 움직이게 될 것이고 현재와 같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는 지방이나 필수 의료분야, 연구 분야로 진출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론. 정부는 쉬운 길을 선택했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오직 의사와 국민이다.

특정 지역과 분야에 의사가 부족한 이유를 파악하고 임금이나 처우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더 많은 환자를 보고 더 많은 수술이나 술기를 할 수 있는, 그래서 계속 스스로의 역량을 발전할 수 있는 자리를 선호하는 의사라는 전문직의 특성을 감안하여 거기에 맞는 유인책을 만들고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의사 한명 한명의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의 공익 향상의 방향, 즉 '의료 공공성 강화'와 합치될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오래 걸리며 힘든 일이다.

그에 비하면, 벌써부터 우리 지역에 의대생을 유치하면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며 '정원 따먹기'를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정치인들과 짝짜꿍이 되어서 20여 년 만에 의대 정원 확대라며 대단한 성과라도 벌써 낸 것처럼 대대적으로 떠들면서 뇌피셜로 만들어낸 청사진으로 치적을 홍보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의료계를 기득권 적폐 세력으로 몰아가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도 쉬운 일이다.

과거 의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될 당시에도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의학 분야로 유입되면 임상뿐만 아니라 기초과학 지원자가 늘어나고 의과학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정부와 일부 학자들이 청사진을 내놓았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는 한마디로 처참한 실패다. 그러나 그 당시 관계자 가운데 누구도 지금 와서 이에 대해 책임지거나 반성하거나 복기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정부는 쉬운 길을 택했다. 그 성패는 적어도 10~20년은 지나야 평가할 수 있으니 부담도 없을 것이다. 그 사이에 정권이 바뀔 수도 있고 담당자나 관계자들도 그때에는 다른 위치에 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패하더라도 추진한 사람들 중 누구도 책임질 일이 없다. 오직 당사자인 의사와 그 의사들이 치료할 환자들만이 실패한 정책의 영향을 고스란히 몸으로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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