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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19 17:45 (화)
국민 선택권 보장은 한방 건강보험 분리로부터
국민 선택권 보장은 한방 건강보험 분리로부터
  • 신동욱 성균관의대 교수 (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7.1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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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먹지 않는 사람들, '보험료 풀'에서 분리해야 마땅"

보건복지부는 2020년 10월부터 한의원에서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관리 등 3개 질환에 대해 환자에게 치료용 첩약을 처방하면 이를 건강보험에서 그 비용의 절반을 지원한다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첩약 급여 시범사업 세부안에 따르면, 첩약 한제(10일분)당 수가는 ▲심층변증·방제기술료 3만 8780원 ▲조제·탕전료 3만 380원∼4만 1510원 ▲약재비 3만 2620원∼6만 3010원(실거래가 기준) 등을 합해 14만∼16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기존에 20만원 선으로 이야기되다가 깎인 수가이다. 

의약품 안전 관리의 기본인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입증 없이 성분도 불분명한 '첩약'이라고 하는 것을 국민에게 먹이겠다는 것 자체가 글로벌 스텐다드에서 몰상식한 결정이라는 것은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우리 선조들이 해온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국수주의적인 생각인지, 아니면 정치적인 지지에 대한 보답인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신약에 대해 들이대는 '안전성, 유효성' 에 대한 까다로운 기준은 갑자기 없어지고 말았다.

그런 이중 잣대에 대해서는 작년 이맘때에도 본 지면을 통해 이야기한 적이 있으니 이번에는 넘어가기로 한다. (참고=기사링크 : 인보사와 경혈두드리기, 국수주의적 이중잣대. 의협신문. 2019.7.28)

첩약 급여화 시범 사업으로 소요될 재정은 연간 500억원이라고 한다. 77조원이 넘는 전체 건보 예산으로 치면 얼마 안되는 돈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순히 생각해봐도 몇 백원짜리 소염진통제(NSAID)로 조절될 수 있는 월경통에 15만원짜리 한약을 먹고, 가만히 있으면 대부분 치료 없이 낫거나 몇 십원짜리 스테로이드로 호전되는 안면신경마비(Bell's palsy)에 15만원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낭비인가?

또한 현재는 세 개 적응증에 대한 시범사업이나, 향후 다른 증상이나 질환으로 더 확대된다면 몇 조 단위의 돈이 들지 모를 일이고, 이는 건강보험료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약진흥재단의 '한의의료이용 및 한약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첩약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가 높다고 한다. 한의사협회에서는 첩약 급여화가 '국민 의료비 부담을 완화시키고 환자 치료 선택권을 확대시키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복지부에서도 "건정심에 포함된 소비자 단체들이 찬성표를 던지고 있다는 점도 영향이 크다"는 것이 첩약 급여화 추진의 배경이라고 한다.  

이것이 현실이고, 간극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근거 중심의학을 교육받은 의사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검증되지 않은 '첩약'이라는 것은 대개 효과가 없고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이 보기에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 일반 국민들이나 정책결정자가 볼때에는 합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의사들의 반대는 본인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직역 이기주의로 밖에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의 선택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참에 의료보험 선택에 있어서도 국민 선택권을 넓히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국민 입장에서도 강제 가입이다. 좋으나 싫으나 소득이나 재산이 있다면 건강 보험료를 납부할 수 밖에 없다. 

국민 상당수는 한약을 신뢰한다. 그러나, 다른 상당수는 한약을 신뢰하지 않는다. 일부 한약을 먹고자 하는 환자들의 선택권 보장을 위해, 한약을 먹지 않을 사람들이 공동의 풀에 보험료를 내는 것은 불합리하다. 나는 영원히 참석하지도 않을 동창회에 회비만 계속 내는 꼴 아니겠는가? 

건강보험을 일반건강보험과 한방건강보험으로 나눠 각각에 대해 선택해 보험가입을 선택적으로 실시하거나, 또는 둘 다 원할 경우 둘 다 가입을 시행하도록 하여 각각에 대해서 보험료를 풀링(pooling)하면 국민의 선택권은 최대한 보장된다. 

'믿지 못할' 한방을 평생 이용하지 않을 사람들은 한방에 대한 보험료를 내지 않아서 좋고, '위험한' 일반의료를 이용하지 않을 사람은 일반의료에 대한 보험료를 내지 않아서 좋다.

둘 다 선택적으로 이용하고 싶은 사람은 좀 더 부담하더라 도 마음껏 두 가지를 이용할 수 있으니 좋다. 의사들이 한방 건강보험 재정을 걱정할 이유도 없고, 한의사들이 일반 건강보험 재정을 걱정할 이유도 없어진다.

또는 자동차보험의 한방특약과 같은 방식으로 '기본형'과 '한방 특약' 등으로 해서 한방의료의 보장은 추가 보험료 부담을 통한 특약 형태로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하고 각자 자신들을 찾는 환자들에게 최선의 결과를 제공해줄 수 있도록 자유롭게 기술과 서비스를 발전시켜 나가면 되지 않을까? 많은 국민이 신뢰하고 원하는 한방의료의 가능성을 미리 폄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혹시 아는가? 한의학이 그런 경쟁 과정을 통해서 안전성과 유효성에 훌륭한 서비스까지 확보해 'K-의료'로서 위상을 떨치게 될지. 그리고 '방탄허준단'과 같은 스타 한의사들이 탄생해 미국, 유럽을 누비며 우리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첩약과 침술을 전수해 줄 날이 올지…. 

■ 칼럼과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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