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1회 졸업, 서울의대 학장·총장 역임
교육부·보사부·환경처 3개 부처 장관 맡기도
우강(又岡) 권이혁(權彛赫) 대한의사협회 고문(전 교육부·보사부·환경처 장관)이 12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다. 14일 오전 10시 발인하며, 장지는 서울 추모공원.
유족으로 장녀 고 권인택(첫째 사위 윤용범·서울대 명예교수, 외손주 윤원재·윤인재), 차녀 권성택(둘째 사위 이명묵 세종병원장, 외손주 이기문·이기임), 삼녀 권송택(셋째 사위 안화승, 외손주 안미미·안미규), 장남 권윤택(며느리 이영미)이 있다.
1923년 7월 13일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에서 태어난 우강은 경기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경성제국대학(서울대 전신)에 입학, 조선민족해방협동당에 가담, 일본 경찰의 체포 명단에 오르자 도피생활을 했다.
광복을 맞아 의학부로 돌아온 우강은 1947년 제1회 서울의대 졸업생이 됐다. 서울의대 위생학교실 무급조교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6·25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 부산 피난생활을 하다 미군 제9군단 민사처병원에 취업, 2개월 만에 병원장을 맡아 3년 동안 근무했다. 1955년 미국 미네소타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과정을 밟은 뒤 귀국, 1956년 서울의대 조교수로 부임했다. 선배 한범석 교수의 뒤를 이어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명주완 당시 서울의대 학장과 김인달 교수와 함께 서울대 보건대학원을 설립을 주도했다.
1960년 서울의대 학생과장을 시작으로 1970년 서울의대 학장에 취임, 6년 동안 직무를 수행하며 새로운 의학교육과정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통합교육을 선보였으며, 1975년 교수훈련과 교육연구를 지원하는 의학교육연수원을 설립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장(1976∼1978년)·서울대병원장(1979∼1980년)과 서울대 총장(1980∼1983년)을 역임한 뒤 1983년 문교부 장관에 취임, 제적학생 복교·해직교수 복직을 비롯해 학원사태 때 공권력 개입을 최소화 하는 학원자율화 정책을 도입해 캠퍼스의 봄을 조성했다. 보건사회부 장관(1988∼1989년)·환경처 장관(1991∼1992년) 등 3개 부처 장관을 역임했다.
과학기술 진흥에도 족적을 남겼다.
1982년 대한민국 학술원상 저작부문(人口와 保健)을 수상했으며, 1986년 학술원 정회원으로 선출됐다.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1990∼1992년)·대한민국 학술원장(1992∼1996년)을 맡아 과학기술인 권익 신장과 과학기술 진흥의 기틀을 다졌다. 1990년 남북 민간과학기술교류협의회를 창립, 남북 과학기술교류의 물꼬를 트는 데 앞장섰다. 성균관대학교 이사장(1996∼2006년)을 맡아 대학 발전의 버팀목이 됐다.
성균관대 이사장을 끝으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우강은 "여유작작(餘裕綽綽)한 마음으로 글을 써 보겠다"며 집필에 전념, 2006년 <여유작작>을 시작으로 <온고지신>(2007), <마이동풍>(2008)을 비롯해 2008년 51명의 보건학 분야 제자들과 <보건학과 나>를 공동집필했다. 이후에도 <어르신네들이시어 꿈을 가집시다>(2009)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자>(2010) <청춘만세>(2011) <인생의 졸업과 시작>(2012) <여생을 즐기자>(2013) <평화와 전쟁>(2014) <유머가 많은 인생을 살자>(2015) <천천히 서둘러라>(2016년) 등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1953년 미국자유훈장, 1968년 3·1문화상, 1982년 대한민국 학술원상, 198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2006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2006년 서재필 의학상, 2007년 대한보건협회 보건대상, 2014년 서울대총동창회 관악대상, 2019년 대한의학회 의학공헌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