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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19 11:25 (화)
코로나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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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0.07.0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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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사시인회 제8집 '코로나19 블루'에 붙이며...
김연종 원장(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김연종 원장
김연종 원장

블루칼라의 시집이 도착했다. 시집 제목은 <코로나19 블루>, 한국의사시인회 제8집이다. 예년 같으면 조촐한 출간 모임이라도 가졌을 텐데 이번엔 영락없이 우편으로 책을 받아야 했다.

시집 제목을 선정하면서도 고민이 많았다. 조금 더 시적이고 문학적인 제목을 선정하려 했지만 우리 앞에 당면한 현실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감정의 대부분을 소진한 진료 현장이라 코로나19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독을 품고 떠도는 소문일 뿐
감춰진 것은 좀체 드러나지 않으며
보이는 것도 전부가 아니다
이즈음 사람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21세기의 거리에 마스크만 걷고 있다
-조광현, 「코로나19 블루」부분
 
코로나 19로 변한 세상의 풍경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호모마스크스 시대의 도래를 예견한 것인가.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을 보는 게 더 이상하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악수 대신 손등 인사를 하고 쉴 새 없이 손을 씻는다.

모든 스포츠는 관중 없이 치러지고 온라인으로 원격 수업을 한다. 그토록 인파에 가득 찼던 장소들이 유적지처럼 황량하게 변해버렸다. 모든 사람을 온라인이라는 가상 세계에 끌어들여 놓았던 이 혹독한 봄을 먼 훗날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
 
왕관을 쓴 바이러스가 세상을 지배하자 백성들은 머리를 조아렸다
사람들은 대문 앞에 나서기를 꺼렸고 땡볕에도 죄인처럼 복면을 벗지 못했다
도깨비처럼 그가 스쳐 지나가면 학교도 교회도 병원도 시름시름 문을 닫았다
광장과 밀실, 숙주와 백신을 구별할 수 없어 믿음과 신뢰 모두를 살처분했다
대낮에도 환하게 불을 켜고 연결고리를 찾았지만 비밀의 정원은 찾을 수 없다
혼자 악수를 하고 혼자 샤워를 하고 젖은 옷을 서랍에 넣고 가만히 문을 닫는다
혼밥이 두려운 파랑새가 파란 칠판과 파란 하늘과 파란 식탁을 닦고 또 닦는다
늘 이번 주가 고비라는 맹신으로 오늘의 현황판을 어제처럼 들여다본다
- 졸시, '코로나 블루'
 
"온 나라가 코로나 괴질로 범벅이 되어 우울하게 가라앉는 이 봄날, 몇 편의 시로 가라앉는 우리의 마음을 건져낼 수는 없겠지만 고흐가 그렸던 태양 아래에서 노랗게 익어가던 밀밭처럼, 우리도 두 팔 벌리고 햇살 속에 누워 우리 몸과 마음 이곳저곳에서 푸릇푸릇 희망이 싹을 틔울 때까지 기다려보고 싶어진다."  정의홍 시인은 표4글을 통해 우리의 심정을 대변한다.

코로나로 인해 의사와 환자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됐다. '요즈음 밥값을 벌었다는 말은 국가를 구한다는 것과 같다'라는 어느 페이스북 친구의 말이 울컥 눈물 나게 하는 화창한 봄날이다." 김완 시인 역시 '시인의 말'을 통해 답답한 심경을 그대로 드러낸다.

시국이 답답하기는 서홍관 시인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온통 바이러스 이야기다. 그들 미생물이 이 지구를 뒤덮은 주인이 맞다. 우리 인간들도 근신하고 이들과 같이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어지러운 날에도 햇볕은 내리쬐고 바람은 불고, 제비꽃은 핀다는 것이 감사한 날이다."
 
아무리 고달픈 현실일지라도 어김없이 꽃들은 피어난다. 바이러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퍼져나가지만 부대끼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인정사정없는 바이러스가 인간의 삶의 형태마저 바꾸어 놓았지만 세상의 어긋난 틈새로도 봄이 오듯 우리의 삶은 계속돼야 한다.
 
밥 한 번 같이 먹자는 말이
밥만 같이 먹자는 말도
한 번만 먹자는 말도 아닌 것을 알겠다
빈말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을 때
친구는 이미 알고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던 것은 아닐까
-홍지헌, '밥 한 번 같이 먹자' 부분
 
기어이 밥을 같이 먹지는 못했다. 한국의사시인회 시집 8집을 내는 동안 만나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현재로선 다음 만날 날도 기약할 수 없다. 밥 한 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약속이고 얼마나 소중한 일상인지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그러나 어쩌랴. 기약 없는 약속이지만 우리는 만날 것이고 다시 만나는 날, 밥 한 끼뿐 아니라 그동안 쌓인 회포까지 모두 풀기를 기대할 뿐. 그런데 그날이 대체 언제란 말인가!

하릴없이 오늘의 코로나 현황을 살핀다. 2020년 6월 30일 신규 확진환자 4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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