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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희귀질환 신약 급여, '근거' 부족하다더니…한방 첩약?
항생제·희귀질환 신약 급여, '근거' 부족하다더니…한방 첩약?
  • 최원석 기자 cws07@doctorsnews.co.kr
  • 승인 2020.07.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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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3상 연구 효과·안전성 입증 신약, 기등재 比 우월성 입증 못해 '난항'
임상연구 없는 한방 첩약, 政 "선등재 후 모니터링"…합리적 판단 맞나
일러스트 / 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의협신문
일러스트 / 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의협신문

항생제와 희귀질환, 신경계 신약은 '근거'가 부족하다며 급여권 진입에 난항을 겪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다. 전 국민 건강보험을 운용하는 정부가 재정의 한계 탓에 '근거'에 까다로운 잣대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한방 첩약에 정부가 드리운 잣대는 전혀 다르다. 임상연구가 전무하지만, 일단 급여권에 진입시킨 후 모니터링을 통해 '근거'를 만든다고 한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임상 3상 연구에서 안전성·유효성을 입증한 신약과 수백년간 쓰였다는 경험이 유일한 '근거'인 첩약. 정부의 이중잣대는 합리적일까.

30일 <의협신문>은 급여에 난항을 겪고 있는 대표적인 의약품군인 항생제·희귀질환·신경계 신약의 사례를 통해 한방 첩약 급여화에 대한 '근거'의 합리성을 따져봤다.

대규모 임상 3상 데이터를 확보한 항생제·희귀질환·신경계 신약의 급여 필요성은 의료계와 환자, 정부 모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약가제도 아래 각자의 이유로 급여권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슈퍼항생제 "임상 3상 데이터로 부족…25년 전 약가 받아라"

2014년 이후 미국식품의약국(FDA)에 승인된 13개의 항생제 신약 중 국내에서 급여권에 진입한 제품은 없다. 항생제 다제내성균 감염 급증에도 대응할 수 있는 옵션이 부족한 상황.

국내에서 허가된 유일한 제품은 MSD의 '저박사(성분명 세프톨로잔-타조박탐)'다. 2017년 시판허가를 획득했지만, 여전히 급여권 진입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저박사의 허가는 18세 이상의 복잡성 요로 감염 또는 복잡성 복강내 감염에 대한 치료효과를 확인한2가지 임상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복잡성 요로 감염환자 대상의 ASPECT-cUTI 연구에서 저박사는 대조약인 레보플록사신(68.4%, n=275/402) 대비 유의하게 우수한 미생물학적 및 임상적 완치(76.9%, n=306/398) 결과를 보였다(Difference 95%, CI 2·3-14·6). 총 800명이 참여한 다국적 이중맹검 연구였다.
 
복잡성 복강내 감염 환자를 대상으로 한 ASPECT-cIAI 연구 또한 대조약인 메로페넴(87.3%, n=364/417)과 저박사·메트로니다졸 병용요법의 동등한 임상적 완치 효과(83.0%, n=323/389)를 확인했다(weighted difference, -4.2%; 95% CI, -8.91 to 0.54). 이 연구 또한 800명 이상이 참여한 다국적 이중맹검 연구다.

임상에서 저박사는 다제내성 녹농균 및 ESBL 생성 장내세균에 생체 외 활성을 입증했으며 그람음성균 및 그람양성균에도 효과를 보였다. 내성 녹농균이 발생하고 있는 카바페넴계열을 대신할 수 있는 치료제로도 주목받은 바 있다.

저박사의 급여 지체 이유는 명확하다. 1995년 개발된 메로페넴과 비교해 경제성을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박사가 임상에서 메로페넴과 효과면에서 우월성이 아닌 비열등만 입증했다는 것이 배경이다. 

해당 효과 비교에서 내성에 대한 고려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정부는 효과면에서 우월하지 않은 의약품의 약가를 기존 치료제 대비 큰 폭의 상향해 책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위한 잣대에 현장에서는 "다제내성균 감염이 높아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쓸 항생제가 없어 환자가 사망하고 있다"는 푸념이 이어진다.

희귀질환·신경계 신약 "직접 비교임상 없다면 약가 줄 수 없어"

희귀질환 신약도 마찬가지로 '근거' 부족으로 급여권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어 임상연구 진행이 어렵다. 이를 극복하고 임상 3상을 통과했지만, 급여까지는 갈 길이 멀다.

베링거인겔하임의 특발성폐섬유증 치료제 '오페브(성분명 닌테다닙)', 노바티스의 크리오피린 관련 주기적 증후군·신생아 발현 다발성 염증질환 치료제 '일라리스(성분명 키나키누맙)'이 대표적이다.

괄목한 임상 3상 데이터에도 기존 치료제 대비 경제성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급여권에 진입하지 못했다.

항생제와 희귀질환 신약은 그나마 상황이 낫다. 희귀질환에 이어 최근 항생제도 경제성평가를 면제받을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신경계 신약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급여기준 협상에서 고배를 마신 유씨비의 뇌전증치료제 '브리비액트(성분명 브리바라세탐)'.

뇌전증 등 신경계 질환은 발생 원인과 작용기전이 다양해 기존 치료제와의 직접 비교 임상이 어렵다. 임상 3상에서 위약과의 비교해 효과적인 발작 증상 조절 효능과 내약성 프로파일을 확인했지만, 기존 치료제 대비 우월하다는 근거는 없다.

브리비액트가 급여권에 진입하려면 기존 치료제를 기준으로 한 가중평균가를 수용해야 한다. 기존 치료제는 특허만료로 가격이 처음의 절반으로 떨어져 있다.

유씨비는 임상 3상에서 5개 이상의 기존 뇌전증 치료제를 사용하고도 발작을 보이는 환자에게 효과를 보였다며 2차 치료제 개념의 급여기준 마련을 요구했지만, 이 또한 급여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건보재정 한계, 급여진입 잣대 '근거'일 수밖에…한방 첩약은?

신약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급여화에 더 많은 '근거'를 요구하는 배경은 결국 건보재정의 한계다. 건보재정의 지속성을 고려해야 하는 정부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된 약제를 대상으로 급여의 우선순위를 설정한다.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근거'가 된다.

의료계는 이번 한방 첩약의 급여화에서 정부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임상연구 등 과학적인 안전성·유효성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첩약이 급여진입을 요구하고 있는 검증된 약제보다 우선순위가 앞선다는 것.

정부는 오는 10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3년간 한방 첩약 시범사업을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증 관리 등 3개 질환에 대해 진행할 계획을 공개했다. 연간 건보재정 500억원, 환자부담 5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계하고 있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이 진행된다면 향후 대상 질환이 지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건보공단 의뢰로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치료용 첩약 시장규모는 1조 4000억원에 이른다.

급물살을 타고 있는 한방 첩약이 항생제·희귀질환·신경계 신약보다 '근거'가 뛰어나다고 판단한 배경은 뭘까.

한의계는 정부 예산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사업을 통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첩약 유효성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 사업에서 국내외 논문을 통해 효과가 입증된 질환을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한다면 유효성에 문제가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중국 논문을 인용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사업. 이를 다국적 대규모 임상 3상 연구와 비교할 수 있을까. 어떤 '근거'를 우선순위에 둬야 할까.

의료계는 임상연구를 진행하지 않은 점은 물론 한방 첩약에 들어가는 재료가 표준화되지 않았고, 유통이 투명하지 않아 안전성이 확보된 상태인지 알 수 없다는 점까지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첩약 급여화 관련 회의에서 지적된 안전성 문제에 대해 "첩약이 급여화를 통해 제도권으로 들어왔을 때 오히려 안전성이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항생제·희귀질환·신경계 신약에 요구하는 안전성과 너무나 다른 잣대다.

급여권 진입에 난항을 겪고 있는 다국적제약사 관계자는 "글로벌 임상 3상 데이터를 갖고도 신약의 급여권 진입을 위한 협상은 어렵다. 급여권에 진입해야 마켓에 안착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근거를 제시하고 정부와 글로벌 본사 설득을 반복한다"며 "첩약에 대해 잘 모르지만, 임상 데이터 없이 약제가 허가도 아닌 급여까지 이뤄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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