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8 17:57 (목)
전문가가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며
전문가가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며
  •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전라남도의사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6.03 12:05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VID-19 헌신한 의사들 폐업 위기...감병 싸움 또 나설지 의문
정부, 말로만 '덕분에' 아닌 '체감'할 수 있도록 조속히 지원해야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선별검사 자원봉사에 나선 한 의료진의 고글이 습기로 가득하다. [사진=김선경 기자 photo@kma.org] ⓒ의협신문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선별검사 자원봉사에 나선 한 의료진의 고글이 습기로 가득하다. [사진=김선경 기자 photo@kma.org] ⓒ의협신문

전문가는 '기술, 예술, 기타 특정 직역에 정통한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다. 역사상 항상 존재해 왔고 시대상을 반영하며 그 의미도 변해왔다.

19세기 시작된 산업화 사회는 21세기 들어 지식, 정보화 사회를 향해 탈산업화됐다. 이는 기계 기술의 쇠퇴와 동시에 전문지식을 기반으로 한 전문가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유리한 사회적, 경제적 위상을 점유하게 하였다. 최근에는 의사·법률 전문가·대학교수 등 전통적인 전문가들뿐 아니라 방송인·프로스포츠 선수·전문 경영인 등 '신흥 전문가'들도 등장했다. 이들은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과 자율성을 토대로 새로운 산업의 형성과 시장구조의 변화에 따라 새로이 등장한 세력이다. 

우리는 흔히 전문가의 의견은 존중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어느 정도의 권위를 당연시한다는 의미이며, 그 권위는 단순히 면허를 통한 '규범적 권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비전문가에 비해 뛰어난 통찰력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지적 권위'를 포함한다. 그 권위는 절대적으로 행사할 수는 없으며 내면적인 자긍심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빛을 발한다. 이는 곧 '명예'라고 불리며, 전문가들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에 대한 실천 의지를 강화한다.

인류 역사상 국가·사회적으로 갈등과 위기가 생기면 어김없이 분열을 조장하고 결국 희생양을 만들어 임시 봉합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일례로, 중세 유럽에서는 유대인·성 소수자·밀렵꾼 등 종교·인종·계급·성 정체성과 같은 기준과 잣대로 분열을 조장해왔다.

희생양을 만들고 분열을 조장하는 것만큼 쉬운 정치적 판단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니, 몇 달 전에는 특정 종교인들이, 얼마 전에는 동성애자들이 그런 비난을 받았다. 권력과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이나 특권이 없는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사회적 갈등을 조절하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사회적 갈등과 위기를 임시 봉합한 뒤 아이러니하게도 비난의 화살이나 책임이 갈등과 위기를 해결한 '권력 없는' 전문가들을 향하기도 한다. 전문가 집단은 '특수한 집단'이어서 일반인들의 공감대와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기에 희생양이 되기 쉬운 모양이다. 

방상혁 의협 상근부회장이 지난 2월 대구 서구 구민운동장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의심 환자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의협신문
"이 위기에 단 한 푼의 대가, 한마디의 칭찬도 바라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시민들을 구합시다. 우리 대구를 구합시다." 이성구 대구광역시의사회장의 눈물어린 호소에 전국에서 수 백명의 의사들이 대구와 경북으로 달려갔다. 방상혁 의협 상근부회장이 지난 2월 대구 서구 구민운동장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의심 환자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의협신문

COVID-19 진행 상황을 보면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의료인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헌신했다. 하지만 그 헌신을 왜곡해 원격의료의 발판으로 삼는다거나, 의대 정원을 늘린다거나, 민간의료기관의 역할을 부정하면서 '공공의료기관'을 확대하는 등 의료인의 자존심과 명예를 깎아내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COVID-19 사태 동안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대구·경북지역 의사들은 적자에 허덕이고, 제때 지원을 받지 못해 폐업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국 각지에서 책임감 하나로 대구로 달려온 간호사들은 제대로 된 보상조차 받지 못해 심한 자괴감에 빠져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번 COVID-19 사태에서 헌신한 의사·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인들에게 다양한 우대 및 지원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아쉽게도 현재 정부의 정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상황을 보자면 향후 어느 누가 감병과의 싸움에 책임감과 긍지를 가지고 나설 것인지 궁금하다.

정부에서 행정적으로 수립하는 정책의 영역은 전문가 집단의 입장에서 무조건 좋거나 나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책을 수립하면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면 전문가들의 자존감은 하락하고 패배감에 빠져들며 명예가 실추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가적 위기인 COVID-19는 아직 진행형이다.

이필수 의협 부회장(전남의사회장)
이필수 의협 부회장(전남의사회장)

지금도 어디에선가 의료인들은 COVID-19로 생명의 위험에 처한 환자들을 살리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들이 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전문가로서의 자긍심, 자존감 그리고 의료인으로의 소명 의식 때문이다. 
이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문가로서의 자존감을 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말로만 '덕분에'가 아닌, 이들이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을 조속히 해주어야 한다. 또한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이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더욱 필요하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