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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정부의 원격진료 추진배경을 목도하며
정부의 원격진료 추진배경을 목도하며
  • 여한솔 전공의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R2)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5.3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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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를 악용해 또다시 꺼내든 카드, 바로 '원격진료'에 대한 적극적인 정부 부처의 논의가 시작됐고 대통령의 직접적 언급이 있던 만큼,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원격진료는 기정사실화 된 듯 하다. 다행히 나는 원격진료와는 전혀 무관한 과를 선택했기에 ㅡ응급실에 원격진료를 설마 요구하진 않겠지?ㅡ이 거스를 수 없는 파도를 잠시 피해갈수는 있겠다만, 그냥 걱정이 된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자체가 그냥 걱정 투성이다.

'원격진료' 에 대한 물음이 의외로 많아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았다. 원격진료를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이 문제점을 충분히 알리기 위함도 있지만, 머릿속에 들어있는 내 생각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또 다른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간략하게 문제점들을 크게 7가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신체진찰의 중요성

환자는 직접 만나서 보고 듣고 두드려 보고 만져보는 것이 진단의 가장 기본이고 중요한 점이다. 거기에 각종 검사들과 영상학적 진단을 통해서 확진을 하는 것인데. (물론, 시진, 청진, 타진, 촉진만으로도 의사의 많은 경험과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놓칠수 있는 질병을 잡을 수도 있다.) 의사와 환자가 직접 만나서 행해지는 신체진찰의 중요성을 보건복지부는 절대 간과하고 있다. 아마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겠지.

2. 원격진료 안전성 문제

1번과 이어지는 문제점이다. 환자를 스마트 폰이나 PC로만 이용하여 의사가 만나 처방을 내렸을 때에 불가피한 의료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신체진찰을 행하지 못한 이유로 놓친 질병들, 전자장비의 문제 등등이 있겠다. 이러한 경우 환자 건강을 담보로 하는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까요. 책임소재가 불분명할것 같지만 최근 언론에서 보도되는 원격진료를 시행했던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것 같다. 사실 의사가 책임 안지면 누가 지겠나 생각해보니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책임소재를 논하기전에 의료사고의 최대 피해자는 의사도 아니고 대기업도 아니고 정부도 아닌 바로 이 원격진료를 받은 환자들이다.

3. 환자 대면진료 접근성 부족

오히려 산간도서지방의 국민들은 의료접근성이 떨어질 것이다. 대부분의 만성질환 환자들이 핸드폰이나 PC를 통해 진료를 받게 되었을 때에, 현지에 위치한 의료기관들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다. 운영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는 상황이 분명히 닥칠 것이다. 폐업하고 의료기관을 인구가 더 많은 곳으로-경쟁은 더 치열해지겠지만, 상대적으로 환자가 더 많은-옮기게 되면 오히려 그 지역의 의료접근성은 떨어지는 모순의 결과가 생길 것이다. 이것은 산간도서지방에 거주하는 국민들을 위한 의료정책의 명백한 퇴보이기에 오히려 이들의 대면진료접근성을 강화시키는 정책들을 펼치는 것이 진짜 국민 건강권을 수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 원격진료 장비 이용 및 시설 미비

도서산간지방에는 청장년층보다는 노인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이 분들은 스마트 폰이나 PC기기 자체를 소지 하고 계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ㅡ노인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ㅡ 이 분들이 스마트 폰을 잘 활용할 것이라는 것은 헛된 예상값입니다. 결국 추가적인 장비의 보급과 기술설명을 위한 국가재원이 사용되어질 텐데, 굉장히 비효율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5. 중소의원·병원 퇴보…대형병원·대기업들 배불림

가장 구린내가 나는 이유이며 이것이 시사 하는 바는 꽤 크다. 이전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원격진료 시범사업은 진행했었다. 보건복지부 관할 소속의 72개의원급에서 만성질환 관련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진행했는데, 그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산업자원부가 주관해 3년간 시범사업에 쓰였던 병원들과 기업들을 나열하겠다. 강북삼성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경북대학병원, SKT, LGU+ 그리고 삼성…. 힘없는 공보의들이 이용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시범사업을 추진해서 나온 결과 값들이 경제성 효용성 다 버리고 환자들에게 이익이었는지 되묻고 싶다. 

정부의 원격진료 추진배경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국민건강권 확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코로나바이러스 공포심을 이용해 구실 좋은 이유들을 나열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 정부 정부 출범 초기부터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원격진료는 추진되고 있으며, 이런 구상을 복지부가 의료법 등 법률 개정으로 제도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 맞다. 지금 국민들을 대상으로 '국민건강권'을 운운하는 것은 넌센스다. 국민건강에 대형병원만큼 핵심적으로 필요한 것은 동네 곳곳에서 제 기능을 수행하는 1차의료기관임을 잊으면 안되겠다.

6. 진료는 PC로? 그러나 약은 약국으로?

쉽게 진료를 받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겠다만, 여기서도 또 하나의 폐단이 일어난다. 진료는 원격으로 받겠지만, 처방받은 약에 대해서는 직접 약국을 찾아가야 하는 것인데 이 시스템도 보완한답시고 "여러분 이제 약도 택배로 받으시면 됩니다!"라고 홍보하는 정부를 쳐다만 봐야하는 웃지 못 할 지경까지 이르겠다.

7.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사실상 국민 대부분의 개인정보들이 이곳저곳으로 유출 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는데, 의료법에 명시되어있는 개인정보보호규정과 진료정보보호규정. 이것들이 붕괴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원격진료가 이뤄진다면 분명히 녹음 혹은 녹화로 의료 현장이 데이터로 저장될 것이고, 이것이 유출되었을 경우에는 주민등록번호 차원이 아니라, 개인 사생활정보까지 유출될 우려가 너무도 많다. 설마 이 책임도 의료기관장이 지어야 하는 것일까. 

다시 한 번 말하건대, 현재 대한민국의 원격진료를 추진하는 배경은  국민들의 건강권 확보와 수호를 위한 것이 아니다. 원격진료를 이유 없이 반대한다고 현대과학기술을 역행하는 꼰대라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의료의 원칙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대면'이다. 환자를 보지 않고 청진하지 않고 눌러보지 않고 진단을 내리는 것만큼 무모하고 어리석은 진료는 없다. 

원격진료를 논하기 이전에 먼저 서비스 공급자(의료인)와 수요자(환자)가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먼저 환자가 안전하게 진료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뒤, 그 후에 고려되어야 할 정책들이 무언가 본말이 전도되어 추진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치료 받는 환자의 건강권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우리 예비 의료인들과 현직에서 활동 중이신 선생님들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길 바란다. 

신중하게 한 번 더 '원격진료'에 대해 고민해 주길 기도한다. 나의 기도가 헛되지 않길 바랄뿐이다.

■ 칼럼이나 기고 내용은 룈의협신문룉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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