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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29 (목)
"치료효과 검증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치료효과 검증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5.1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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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자나 환자의 경험만으로 효과를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은 현대의학에서 상식이다. 그러나 인간의 직관과는 반대되는 사실이라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코로나19의 치료제를 찾는 과정에서 효과를 검증하기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세포실험, 동물실험, 의사들의 경험과 증례가 모여도 임상시험에서 뒤집어지는 결과들이 나왔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억제할 가능성이 실험실 연구 수준에서 제시된 물질은 수십 가지가 있었다. 항바이러스제 개발은 성공 확률이 낮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환자에게 효과가 있으리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여러 후보들 중에서 곧장 사용할 수 있는 물질들은 다른 용도로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을 통과해 시판중인 약이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를 억제하는 두 가지 성분으로 조성된 항바이러스제 칼레트라와 항말라리아제 클로로퀸 및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가장 큰 기대를 모았다. 

칼레트라는 초기에 환자를 치료한 의사들의 경험담이 세계 언론에 보도되고, 학술지에 증례들이 보고되면서 큰 기대를 받았다. 칼레트라를 사용하면 환자 상태가 호전된다고 했지만 진짜 효과가 있는지 저절로 좋아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중국에서 199명을 상대로 실시한 무작위대조군임상시험에서 칼레트라를 사용한 환자들과 사용하지 않은 환자들의 경과에 차이가 없었다는 결과가 3월 18일 <NEJM>에 발표되면서 실망을 안겼다. 

다음으로 주목받은 물질은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었다. 유사한 이 두 가지 물질들은 원생생물인 말라리아원충에 작용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시험관 실험에서 클로로퀸과 렘데시비르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억제한다는 논문도 발표되고, 중국에서는 클로로퀸이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뚜렷했다며 진료지침에 포함시켰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아지스로마이신을 같이 사용했을 때 효과가 있었다는 소규모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미국 보건당국의 신중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극찬하자 사람들이 무턱대고 구입에 나서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웨덴에서는 심각한 부작용 발생이 잇따라서 사용을 금지시켰고, 브라질에서는 클로로퀸을 사용한 환자들이 대조군에 비해서 더 많이 사망해서 임상시험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자가면역질환이나 말라리아에 안전하게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더 높은 용량을 폐렴과 심혈관 문제들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 감염 환자에게 사용했을 때의 안전성은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마지막 희망처럼 여겨진 후보는 렘데시비르였다. 허가된 의약품은 아니지만 에볼라 임상시험에서 안전성은 확보가 됐기 때문에 곧바로 대규모 임상시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4월 10일 <NEJM>에 렘데시비르를 동정적 사용(compassionate-use)한 환자 61명에 대한 데이터가 발표됐다. 대조군이 없어서 효과 유무에 대해 전문가들의 평가가 엇갈렸다. 이상반응이 60%에서 발생해서 부작용 우려도 나왔다. 

4월 29일에 중국에서 237명을 상대로 실시된 무작위대조군 이중맹검 임상시험 결과가 <Lancet>에 발표됐다. 측정 항목들에서 위약 대조군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반응도 렘데시비르군 66%, 대조군 64%로 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효과도 없지만, 이상반응도 대부분은 렘데시비르가 원인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같은 날 논문 공개에 앞서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와 길리어드는 진행 중인 임상시험 중간 데이터를 발표했다.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는 1063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대조군에 비해 렘데시비르 투여 환자들이 회복 기간이 31% 짧고, 통계적 유의성은 없었지만 사망률이 8.0%대 11.6%로 낮았다고 발표했다. 미국 FDA는 이 데이터를 근거로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논란도 뒤따랐다.

아직도 진행 중인 코로나19 치료제를 찾기 위한 이 혼란스러운 과정은 세포 및 동물실험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었다. 치료를 받고 회복된 환자, 성공적으로 치료한 의사, 환자들에 대한 임상 데이터로도 효과와 안전성을 판단할 수 없으며, 대조군 임상시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상식도 재확인시켜주었다.

이런 기본 상식은 대한민국에서 무시되고 있다. 작년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한약제제 10개 품목을 한방건강보험용의약품으로 허가했는데, 임상시험이 아닌 동의보감 같은 옛날 한의학 서적이 근거다. 한의사들은 증례보고나 동물실험 논문을 가지고 현대의학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난치병을 치료해낼 수 있음을 국제학술지에 입증했다고 홍보해 환자들을 현혹하는 게 일상이다. 

코로나19 치료제를 찾는 과정에서 벌어진 우여곡절을 통해서 우리 국민이 치료법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임상시험 없이 평가할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하고, 엉터리 주장에 피해를 입는 국민이 없도록 법률도 보완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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