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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많아 초진환자 안 본 의사 '해임' 처분은 잘못
업무 많아 초진환자 안 본 의사 '해임' 처분은 잘못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20.05.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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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학교법인, 초진환자 접수 중단 및 응급실 문자 스팸 처리한 교수 '해임' 징계
법원, "인력 부족 호소 수단으로 한 부적절한 행위…해임은 재량권 남용" 판단
ⓒ의협신문
ⓒ의협신문

전공의법 제정·시행으로 인한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학병원 교수가 초진 환자 접수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응급실 야간당직 문자 호출 번호를 스팸 처리한 것은 부적절 하지만, 이를 이유로 '해임' 처분한 것은 과도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월 16일 대학병원을 운영하는 A학교법인이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교원 해임취소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낸 소송에서 사실상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학교법인은 2015년 4월경부터 2017년 4월경까지 혈액종양내과 분과장직을 수행한 B교수에게 2018년 3월 1일 직위해제 처분, 2018년 4월 5일 '해임' 처분을 했다.

B교수가 ▲신규 외래환자(초진 환자) 접수 중단 지시(제1 징계사유) ▲응급실 야간당직 문자 호출을 받지 않기 위해 응급실 번호를 스팸 처리하는 방법으로 응급실 호출 거부(제2 징계사유) ▲전공의에게 폭언하고, 이후 전공하게 될 진료과장에게 연락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말하고(제3 징계사유) ▲국민신문고에 병원 인력 수급 및 근로시간에 문제가 있다고 민원을 제기해 고용노동부 관계자가 조사를 나오도록 해 병원의 명예를 손상(제4 징계사유)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징계 처분에 대해 B교수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교원의 징계처분에 대한 재심 및 교육공무원의 고충심사청구 사건을 심사·결정하는 교육부 산하기관)에 징계 처분 무효확인 및 직위해제·해임 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청 심사를 청구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제3, 4 징계사유는 인정되지 않고, 제1, 2 징계사유는 인정되지만, A학교법인의 처분은 B교수의 근무 태만 행위와 비교해 과중하고 사회 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징계권자의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는 이유로 해임 처분을 취소하는 결정을 했다.

그러나 A학교법인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해 '교원소청심사위원회 결정 취소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A학교법인은 "응급실 호출은 병원 내에서 원칙을 정해 놓고 시행되는 것으로 모든 교수가 응급실에서 호출이 오면 당연히 응답하고 있는데, B교수만 자의적인 판단으로 응급실 호출을 스팸 처리한 것은 환자 진료 거부를 위해 고의으로 스팸 처리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의사는 어떤 사유를 불문하고 응급환자를 거부할 수 없다는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으로서 중징계가 불가피하고, 전공의에게 교육 차원이라는 이유로 폭언(욕설)을 해 상당한 모욕감과 자괴감을 들게 했다"며 의료법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은 물론 교원징계규정(직무상 의무 위반으로 손해, 대학의 명예 손상 및 교원 품위 손상) 위반에 해당한다고 징계 처분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같은 진료과 C교수는 B교수보다 약 3∼4배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있음에도 병원 내부 소통창구가 아닌 국민신문고를 통해 병원의 인력 수급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민원을 제기한 것은 A학교법인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이라며 교원소청심사결정은 위법하다고 항변했다.

A학교법인의 주장과는 반대로 B교수는 ▲전공의가 없는 상황에서 환자에 대한 진료를 충실히 하기 위해 초진 환자에 대한 접수를 잠시 중단하라고 간호사에게 지시했으나, 실제로 초진 환자의 접수가 중단되지 않았고, 접수된 모든 초진 환자를 진료한 점 ▲당직자가 제대로 된 진료를 할 수 있는 정보를 '전화 보고'를 통해 알려달라며 '문자 호출'을 스팸 처리했으나 야간당직 업무를 수행했고, 주간 당직 때도 응급실에서 전화로 보고를 하는 경우 모든 응급환자를 진료한 점 ▲제3, 4 징계사유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 결정과 같이 징계사유가 인정되지 않는 점을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전공의법(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2016년 12월 23일부터 시행) 시행과 병원이 인력충원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을 눈여겨 살폈다.

서울행정법원은 교수는 진료할 환자 수를 조절할 수 있는 재량이 있지만, 2년간 초진 환자 접수중단은 재량의 범위를 벗어난 조치로써 근무상태 불량으로 평가되고, 2016년 11월 29일 당시 응급실에서 8회의 문자 호출을 했음에도 받지 않고 스팸으로 처리한 것도 근무상태 불량에 해당한다고 봤다.

다만, 응급의학과로서는 B교수에게 문자 호출뿐만 아니라 전화로도 호출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B교수가 응급실 문자 호출 스팸 처리로 인해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은 B교수의 근무상태 불량이라는 이유(징계사유)만으로 A학교법인이 징계 처분을 한 것은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남용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A학교법인의 징계 처분을 취소한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병원이 의료진의 근로조건을 향상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A학교법인은 3차 상급 종합 의료기관으로서 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의 적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전공의법 시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력 공백이 명백히 예상됨에도 인력충원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

서울행정법원은 "교수들은 수업, 외래·입원환자 진료, 연구 등의 업무에 더해 장기간 야간당직을 수행하는 경우 그 업무가 과중하게 되므로, 병원은 야간당직을 수행하는 전문의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제로 B교수가 인력충원을 요청했으나 병원은 인력충원을 하지 않았고, 다른 진료과도 인력충원을 요청했으나 제대로 인력이 채용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B교수가 인력 부족 등을 호소하는 수단으로 초진 환자 접수중단, 문자 호출 스팸 처리 등 부적절한 행위를 했지만, 의료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B교수가 한 행위는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으므로 근무상태 불량이 심한 정도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라고 밝혔다.

서울행정법원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인정된 두 가지(제1, 2 징계사유)와 전공의에게 욕설한 부분(제3 징계사유)은 징계사유로 볼 수 있지만, 그것을 근거로 A학교법인이 '해임' 처분을 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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