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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살아난 원격진료, 상황 더 나빠졌다
코로나19로 살아난 원격진료, 상황 더 나빠졌다
  • 고신정 기자 ksj8855@doctorsnews.co.kr
  • 승인 2020.04.2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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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전화상담·처방 등 비대면 진료, 포스트 코로나 제도화 가능성
병원·환자 '제한없는' 원격진료 이미 경험...거대여당, 새 국회도 '변수'
(사진제공=청와대)

우려가 결국 현실이되는 모양새다. 코로나19 사태로 기사회생한 '원격진료'에 관한 얘기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병원급 의료기관과 환자들이 '제한 없는' 원격진료를 먼저 경험하면서, 기존의 저지선마저 넘어설 태세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원격진료 추진 계획을 공식화하면서, 도서·벽지와 군부대 등 의료사각지대에 한해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이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지역이나 종별과 무관하게 모든 의료기관에서 전화로 상담·처방을 할 수 있게 하는 원격진료가 전면 시행되면서, 둑이 터졌다.

코로나 19로 물꼬 튼 원격진료 허용...政, 제도화 만지작
큰 병원 더 적극적, 기관당 청구건 상급 204건-의원 26건

정부는 코로나19 방역대책 강화방안의 하나로, 지난 2월 환자가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전화로 처방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전화상담·처방'을 전격 허용했다.

의사가 의료적 판단에 따라 안전성이 확보된다고 판단한 경우 전화를 이용한 상담과 처방을 허용하며, 이 경우 외래 진찰료의 100%를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의료계는 즉각 편법적인 원격진료 추진이라며 반대입장을 밝혔으나, 정부는 "의료기관과 요양시설 등 취약시설의 집단감염 방지를 위한 '한시적인' 예방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워 제도 시행을 강행했다.

초기 고전하는 듯 했던 계획은 병원들의 호응 속에 자리를 잡았다.

중대본에 따르면 전화처방 건수는 시행 초기 한달 간 2만여건에 그쳤으나, 최근 크게 늘어 '3말4초' 첫 주에만 5만건이 넘었다. 4월 12일 현재 누적 전화상담·처방 건수는 10만 3998건을 기록하고 있다.

큰 병원이 더 적극적이다. 해당 기간 참여기관 1곳당 전화상담 처방 건수는 의원 26건, 병원 51건, 종합병원 188건, 상급종합병원 204건이다.

전화상담·처방 건수가 큰 폭으로 늘어나자 정부는 이달 초 '비대면 진료 활성화' 카드를 전면에 꺼냈다. 고 허영구 원장 사건으로 코로나19 대응 의료인 안전문제가 화두가 된 시점이기도 했다.

정부는 의료인력 감염 예방을 위해서는 비대면 진료를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가벼운 감기환자·만성질환자 등은 전화 상담·처방과 대리처방, 화상진료 등 비대면 진료를 적극 활용토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정부는 전화상담 수가를 추가하는 등 후속대책을 진행했다.

전화상담과 처방시에도 대면진료와 동일하게 야간·공휴·심야·토요·소아 등 각종 가산을 별도로 산정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원격진료 활성화를 위한 정책수단을 추가로 동원한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원격진료'에 대한 정부의 시각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의 비대면 산업 발전 가능성에 세계를 선도해 나갈 역량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정부는 비대면 산업을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4차산업혁명 기술과 결합한 기회의 산업으로 적극적으로 키워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급부상하고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비대면 거래, 비대면 의료서비스, 재택근무, 원격교육, 배달 유통 등 디지털 기반의 비대면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할 것"이라며 '비대면 의료서비스' 강화 필요성을 직접 언급했다.

병원-환자 '제한 없는' 원격진료 경험...처방전 리필 수단 전락?
대통령 당기고, 정부 밀고...거대여당, 새 국회서 법 개정 가능성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2월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 보건지소와 공주 교도소 등 취약지 원격의료 현장을 방문, 현황을 점검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2월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 보건지소와 공주 교도소 등 취약지 원격진료 현장을 방문, 현황을 점검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의료계는 의사-환자간 원격진료 허용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입장을 밝혀온 바 있다.

원격진료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만큼 오진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고, 전화 등을 통한 비대면 진료는 환자의 진단과 치료를 지연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일관된 논리다.

특히 병원급 의료기관 이상 의료기관의 원격진료 참여에 대해서는 숱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강력히 반대해왔다.

지금도 원거리 장기처방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인만큼 병원급 원격진료가 '처방전 리필 수단'으로 전락, 환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1차 의료 붕괴와 의료전달체계 무력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는 의사-환자간 원격진료를 재추진하되, 그 대상을 도서·벽지, 원양 선박, 교도소, 군부대 등 의료사각지대에 한정해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진행해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병원급 중심의 산업적 목적이 아닌, 격오지 만성질환자 건강관리 등 의료접근성 향상을 목적으로 제도를 운영해 나가겠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을 보자면, 이런 최소한의 저지선마저 무너질 공산이 커 보인다.

코로나19 이후 경제 살리기가 국정운영의 제1과제로 떠오르고 있는데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이미 다수의 병원과 환자들이 제한없는 원격진료를 경험한 까닭이다. 매일 현장에서 쌓이고 있는 전화상담·처방 데이터는 코로나 이후 제도개선 논의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국회의 상황도 주목할 만하다. 여당이 21대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필요하다면 여당 단독으로 관련 의료법 개정이 가능한 상황에 놓여있다. 새 국회가 열리는 5월 이후 관련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도 원격진료 제도화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20일 브리핑에서 "코로나19가 던진 여러가지 화두들이 있다. 이 화두를 정책체계 내에서 어떻게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며 그 가능성을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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