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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19 15:07 (화)
"잘못된 답안지로 회장되는법"
"잘못된 답안지로 회장되는법"
  • 여한솔 전공의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R2)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4.1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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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0일 제 40대 대한병원협회(이하 병협) 회장이 새로 추대됐다. 먼저 당선하신 선생님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지난 3월 병협 회장 선거에 출마한 분들의 공약을 읽어보았을 때 너무나 신기한 주장들을 내세워 시간이 지나서 누가 회장이 되나 확인해야겠다 생각하다-어느새 잊고 있었다-오늘 응급실 나이트 근무가 끝나고 집으로 퇴근하는 길에 뉴스를 확인했다. 대체 의료계 '가진 자'들의 대표 명사인 병협 회장 후보들이 어떤 공약을 내세워 그들이 '더 가지려고 하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대다수일 것 같아 짧게 공약을 발췌해 본다.
 
 A 후보자의 공약 : '개원의 1만 명 병원급 근무'
 B 후보자의 공약 : '원격의료, AI 등 도입 논의'
 A, B, C후보자 공통 공약 : 'PA 합법화', '의료계 인력난 해결을 위한 의대 정원 확충'

병원에 의료인력이 부족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의료인력이 부족함을 해결하는 답이 잘못 제시돼 있다.

환자들을 컴퓨터의 카메라 앞에 앉혀두고 진료보는 것도 잘못되었으며, 의사가 아닌 인력이 의사가 해야 할 일들을 도맡아 하는 것에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도 잘못되었고, 기피 과가 생겨나는 고질적인 문제점은 무시한 채 더 많은 젊은 의사들을 뽑아내어 기피 과로 쑤셔 넣겠다는 생각도 잘못되었다.

대체 어떻게 이 대한민국의 왜곡된 의료현장을 선두지휘하는 후보들이 이런 잘못된 해결책을 회장 선거에 이용했을까 고민해 보았다. 이들이 바보여서 그러할까? 절대 아니다.

전공의가 없는 중소병원을 제외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문제에 접근하겠다. 사실상 진짜 인력난에 허덕이는 곳은 고만고만한 지역의 중소병원이 아닌 밀어닥치는 환자들을 더는 막을 수 없는 대학병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료계의 '가진 자'들은 병원에 의료인력이 부족한 진짜 이유의 중심에 서 있는 '전공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하지 않았다.

일주일 100시간 내지 120시간 동안 착즙기의 과일처럼 빨아 먹던 시절의 전공의가, 2015년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대체로 대학병원에 연착륙하며 근무시간이 최대 주 80시간 내로 제한되는 모습을 보이자 궁여지책으로 앞서 언급한 공약을 철면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배 의사로서 후배 의사들에게 의사로서 가져야 할 긍지심을  짓밟기 시작했다. 더는 젊은 의사들에게 들릴 탄식과 비난이 부끄러운 게 문제가 아니다. 자신들이 벌어들일 수익을 위해서는 의사가 아닌 다른 인력을 고용해서 의사가 해야 할 일들을 대체하는 것이 그들의 수익구조를 극대화하기 위한 최선이라고 판단한 듯싶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의료전달체계에 대해 지적을 했던 후보자가 당선된 것이다. 

현재 환자들의 특정병원 쏠림 개선을 근본적인 문제해결로 내세워야 하지, 이미 들이닥치는 환자들을 무조건 꾸역꾸역 진료 보겠다는 오만한 생각이 대한민국 의료계의 대표적인 편법들로 가득 차게 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훌륭한 우리나라의 전문의 인력들이 그들이 운영하는 병원 밖을 나서 골목상권의 의원급으로 개원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 더욱 고민해 주셨으면 한다. 'No pain, No gain'은 의과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수험생들이 책상 앞에 써놓는 미국 속담이라면, 'No gain, No pain'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논리 중 하나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더 가진 부르주아가 덜 가진 부르주아를 노예 삼으려는 촌극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단 한 번도 부르주아라고 생각하지 못한, 다르게 말해 덜 가진 부르주아는 오늘도 땀 뻘뻘나는 Level D 보호복을 입고 응급실의 열나는 환자 코로나 검사를 하러 간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 칼럼이나 기고 내용은 <의협신문>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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