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원 전립선관리협회장 "베품은 언제나 외롭지 않습니다"
권성원 전립선관리협회장 "베품은 언제나 외롭지 않습니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0.03.18 1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36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권성원 한국전립선관리협회장

아버지의 마음이 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 덕에 몸은 쇠락하고 열정 깃든 마음마저 시들해지면서 애달픈 일들이 잦아지지만 위안보다는 외로움이 깊다. 그저 가족을 위한 매 순간이었다는 자조 섞인 푸념으로 스스로를 챙길 뿐이다.

이 땅의 아버지들은 그렇게 살았다. 그 아버지들을 찾아 나선 이가 있다. 같은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소피 보는게 너무 힘들어…."

나이 들어 불편해진 배뇨에 시달리면서도 어느 한 곳, 누구에게라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늙은 아버지들에겐 천명이었고 감내해야 할 말 못할 고통이었다.

그 아버지들에게 옮겨진 발걸음이다.   

제36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을 수상한 권성원 한국전립선관리협회장(CHA의과학대학 석좌교수·강남차병원 비뇨의학과)은 스무 해 동안 협회를 이끌면서 2003년부터 18년째 의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도서벽지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 전립선 질환을 알리며 인술의 손길을 건네고 있다. 어르신들에게 때로는 시원스레 소핏길을 터 줬고, 생명의 끈을 이어줬으며, 때로는 동년배로서의 회한과 고뇌를 나누며 삶을 이야기했다.

이순 넘어 전라남도 고흥에서 내디딘 그의 첫 여정은 세월의 더께가 쌓여 산수(傘壽)를 지난 올해에는 충청남도 서천으로 향한다.

그가 영원한 현역으로 진료현장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사로서 무엇을 서원하고 있을까. 아직 못 이룬 소망은 무엇일까.

평생을 함께 한 전립선 이야기와 함께 베품과 인연의 의미에 다가선다.

권성원 한국전립선관리협회장 ⓒ의협신문 김선경
권성원 한국전립선관리협회장 ⓒ의협신문 김선경

평생을 전립선 질환과 함께 한 삶이다. 한국전립선관리협회에서도 20여년이 지났다. 왜 전립선일까.

"보통 전립선 질환은 60대 이상의 60%, 70대 이상의 70%가 앓고 있습니다. 어느 질병보다 유병률이 높습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예순을 넘기면서 배뇨가 편한 사람은 드뭅니다. 전립선 질환은 약도 효과가 좋고 저렴합니다. 진료만 받으면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숨깁니다. 그래서 병을 키우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조금은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혼자서는 이어올 수 없는 일이다. 오랜 시간 곁을 지켜준 인연이다. 힘겨울 때 내민 손길을 외면치 않은 고마운 이들이다. 

"김영균 서울대 명예교수께서 한국전립선관리협회를 창립하신 이후 많은 동료 교수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18년째 고성건 고려대 명예교수, 김세철 한양대 명지병원의료원장 등 은퇴한 원로 교수들과 함께 전국을 다닙니다. 부인들도 동반하는 데 오히려 그 분들이 더 열정적입니다. 모두 재능기부라는 생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저희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합니다." 

생각만으로는 절대 이뤄질 수 없다. 비용도 적지 않고 도움의 손길도 필요하다.

"함께 해준 의사들 못지 않게 감사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비용을 흔쾌히 후원해 준 많은 기업이 있습니다. 비뇨의학과 전문의를 중심으로 200여명의 기부자 모임도 있습니다. 그 분들이 저희 활동에 씨앗을 뿌려주셨습니다. 또 마음을 보태고 뜻을 더하며 스스로의 시간을 내어 저희를 돕기 위해 참여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있습니다. 모든 분들의 마음이 모여 오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의협신문
ⓒ의협신문 김선경

진료 연인원 8만 8000명, 총 순회 연장거리 5만㎞, 자원봉사자 1만 4000명, 시혜 금액 200억원…. 숫자로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도 있다.

"지난 17년 동안 많은 곳을 다녔고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가끔 기록을 통해 저희가 지나온 길을 되짚어봅니다. 한 번에 많게는 1400분이 저희를 찾은 적도 있습니다. 큰 금액을 아무 조건 없이 후원하는 분들도 있고, 편지를 통해 감사를 전하는 환자들도 이어집니다. 전국을 찾아다니며 전립선 질환 치료와 알리기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제겐 행운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지리라는 생각은 못했다. 전라남도 고흥은 또다른 시작이었다. 

"2003년 개인적인 인연이 있던 김광호 사노피-신데라보 코리아 부사장과의 저녁자리에서 머릿속에 있던 순회진료에 대한 속내를 털어 놓았습니다. 김 부사장은 이내 제 뜻에 흔쾌히 공감하면서 자료조사와 함께 답사까지 지원해 주었습니다. 일회성으로 추진한 행사였지만 당시 김 부사장을 통해 기부된 1억원이 이후 순회진료의 종잣돈이 됐습니다."

연명 아닌 연명이다. 순회 진료에는 의약품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매번 5000∼6000만원이 든다.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한 기업에 부담을 많이 드릴 수도 없고, 소액 기부자들에게만 의지할 수도 없고, 게다가 공정경쟁규약이 마련되면서 각종 후원에 대한 규제가 심해졌습니다. 필요 경비는 정해져 있는데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속만 태우다가 안면 있는 분들께 도움도 청해 보고, 로터리클럽 인터내셔널 등의 매칭기금 덕도 보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늘 채워 주셨습니다."

진료에서는 많은 일들이 이뤄진다. 어르신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를 찾고 해결해주는 시간이다.

"순회 진료 지역은 반경 100㎞ 안에 대학병원이 없는 곳을 선정합니다. 진료에서는 먼저 강연을 통해 전립선에 대해 알려드리고 이해의 폭을 넓힙니다. 피검사·초음파검사·요석검사 등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검사를 시행하고, 검사 결과를 원로 교수들이 설명해 드리고 약 처방을 보건소에 내리고 환자가 받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암이 발견된 경우는 해당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의뢰합니다. 아침부터 오시는 환자들을 위해 갓 구운 빵과 우유·음료 등과 선물도 마련합니다. 한 번이지만 가장 필요한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 2002년 창간한 계간지 <건강한 전립선 시원한 배뇨>(구 전립선)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소통의 창구이자 인연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출판계에는 잡지는 5년을 버티면 회갑이고, 10년을 버티면 팔순이며, 15년이면 상수(上壽)라는 말이 있습니다. 근데 회갑을 치르는 잡지가 40%가 안된다고 합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무가지로 8000부 가량을 발간해 의료계, 학회, 보건소 등에 18년째 보내고 있습니다. 제작비 마련하는 게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이 잡지를 통해 서로가 소통하고,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질 때는 보람을 느낍니다. 이번 달로 협회 회장직을 마무리합니다. 모종의 음모(?)까지 꾸며 김세철 선생님께 짐을 떠넘겼습니다. 이 부담까지 드릴 수 없어서 계간지 발행인은 당분간 유지키로 했습니다. 협회도 정부와 치매환자 배뇨관리 등 다각적인 사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차제에 정부 지원이 확대되길 기대합니다."

발품은 글품으로 이어진다. 두 권의 책 <아버지 마음>(2012) <아버지 눈물>(2015) 판매 수익금은 모두 협회에 기부했다. 5월이면 새 책도 상재된다. 이어령 선생의 평가를 갈무리하면 그는 '칼잡이 글쟁이'다.

"중앙일보 주필을 지내신 고 최우석 선생님의 '좋은 글은 적선'이라는 강요에 못이겨 시작한 글쓰기로 두 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1억원이 넘는 수익금을 협회에 기부할 수 있었습니다. 글이 좋아서가 아니라 제가 하는 일에 뜻을 보태주기 위해 사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5월이면 협회 창립 25주년을 맞습니다. 사반세기를 기념하는 의미로 세 번째 책 <아버지 영혼>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권성원 한국전립선관리협회장 ⓒ의협신문 김선경
권성원 한국전립선관리협회장 ⓒ의협신문 김선경

17년의 시간은 학술적 성과도 남겼다. <Journal of Health Informatics and Statistics>에 우리나라 전립샘비대증 발생률과 유병률에 관한 논문 두 편이 실렸다.

"연구대상 8만여명, 연구기간 25년의 기록입니다. 우리의 자랑입니다. 의학에서 통계나 역학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논문이 전립선 분야 연구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의학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 발표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이 자료는 우리나라 노인 질병 관련 정책 수립에도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눈물로 지낸 20년이다. 늘 혼자는 아니었지만 또 혼자였다. 해야할 일은, 맡겨진 숙명은 그의 몫이었다. 어떻게 이어왔을까.

후학에게 전하는 여든 넘은 노교수의 가르침에서 답을 찾는다.

"의사는 베품이 깃든 영혼 있는 직업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