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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120년 역사 의약품 광고…효시는?
120년 역사 의약품 광고…효시는?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0.03.1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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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 치료제 '급계랍' 1896년 '독립신문'에 게재
국내 광고산업 선도…과장→계몽→창의→기업PR 시대별 진전

"세계에서 제일 좋은 금계랍을 이 회사에서 또 새로 많이 가져와서 파니 누구든지 금계랍 장사하고 싶은 이는 이 회사에 와서 사게 되면 도매금으로 싸게 주리라."

1896년 독립신문에 실린 우리나라 첫 의약품 중간상인 모집 광고 문안이다.

국내 의약품 광고의 효시는 독일인 회사 세창양행이 수입해 판매한 말라리아 치료제 '금계랍' 광고였다. 금계랍은 당시 사회적으로 신통한 약으로 소문났으나 약물 오·남용과 가짜약 유통 등 사회적 문제도 야기했다. 국내에서 만든 첫 의약품 광고도 1897년 독립신문에 실렸다. 보영당(한약방)의 간기병 치료제 '보영산'이었다.

강화도조약(1876년)과 부산·원산·인천 개항 이후 서양물품이 밀려들면서 소개할 매체가 필요했고, 한성순보·한성주보·독립신문·황성신문 등이 속속 창간했다. 의약품 광고도 이들 매체를 중심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1886년 2월 22일 한성주보 제4호(우리나 최초의 주간 신문)에 실린 우리나라 최초의 광고 '세창양행'.
1886년 2월 22일 한성주보 제4호(우리나 최초의 주간 신문)에 실린 우리나라 최초의 광고 '세창양행'.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최근 펴낸 단행본 <의약품 광고심의 30년, 그 의미와 나아갈 길>은 국내 광고 역사속에서 의약품 광고의 발자취를 되짚고 있다.

1896년 '독립신문'에 실린 독일인 회사 세창양행의 의약품 판매 중간상인 모집 광고. 광고는 '세계에서 제일 좋은 금계랍을 이 회사에서 또 새로 많이 가져와서 파니 누구든지 금계랍 장사 하고 싶은 이는 이 회사에 와서 사게 되면 도매금으로 싸게 주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1896년 '독립신문'에 실린 독일인 회사 세창양행의 의약품 판매 중간상인 모집 광고. 광고는 '세계에서 제일 좋은 금계랍을 이 회사에서 또 새로 많이 가져와서 파니 누구든지 금계랍 장사 하고 싶은 이는 이 회사에 와서 사게 되면 도매금으로 싸게 주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약품 광고시장은 1900년대에 들어오면서 단순한 활자중심 광고에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 방식이 변화했으며, 간판·플래카드 등도 활용됐다. 동화약방·제생당·화평당·개풍국 등은 한방 처방에 기반한 의약품을 생산·판매하면서 광고 역시 등장했다.

동화약방은 1909년 대한매일신문을 통해 궁중비방과 서양 약학을 혼합한 위장약 '활명수'를 선보였다. 특히 광고 문구에 '우리의 정신으로 공익을 위해', '전통적인 동양 지식과 서양의 새로운 발명이 합해 하나가 되었소' 등의 키메시지를 담아 현대 제약광고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신문지면 통제와 검열 등 언론탄압이 강화되고 광고산업은 일본기업 상품이나 일본인 광고주들이 좌지우지하게 된다. 일본제품을 중심으로 일러스트레이션·기사형광고·시리즈캠페인·우편주문광고·섹스어필 광고 등 다앙한 기법과 양식이 등장했다. 상품 판매만을 목적으로 한 과대·과장 광고가 난무했지만, 의약품 광고시장은 양적·질적 성장이 이뤄지면서 광고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로 인식되기도 했다.

1930년대 유한양행의 자양강장제 '네오톤토닉' 광고는 자양강장제의 의과학적 작용원리에 대해 접근했다. 과대 광고가 횡행하던 시기였지만 약물의 작용원리를 담은 계몽적 광고였다.

한국전쟁 이후 의약품 국산화가 시작됐다. 항생제·진통제 등 전문의약품과 비타민·자양강장제 등 일반의약품의 소비가 함께 증가하며 제약산업은 급성장을 이뤄나갔다. 이에 따라 의약품 광고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전성시대를 맞는다. 

1964년에 동아일보에 게재된 동아제약 '박카스' 광고는 생명력과 젊음이라는 컨셉을 도입해 식욕증진·피로회복·숙취해소·피부미용·간장기능 강화·연탄가스 중독 해독 등 만병통치약 수준의 효능을 알렸다.

196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의약품 광고는 양적 성장과 함께 비용이 크게 증가했고, 제약사 광고담당자들은 '광고의 합리화와 과학화'를 내새웠다.

1966년 대한약품공업협회(현 한국제약바이오협회)내에 의약품 PR구락부라는 광고협의회기구가 출범했다. 의약품 PR구락부는 주로 제약광고물량 축소, 단가 책정 등에서 신문매체와 대립하면서 광고시장에서 주류이던 의약품 광고 비중이 축소됐다.

광고에 의존하던 제약업계 역시 치료제 개발 필요성을 절감하고 '의약품 원료합성단계부터 시작하자'는 슬로건 아래 구태를 벗기 시작했다.

1929년 7월 '매일신보'에 실린 활명수 광고.
1929년 7월 '매일신보'에 실린 활명수 광고.

당시 게재된 종근당 기업광고에는 '당신이 주무시는 한밤에도 종근당의 연구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라는 슬로건 광고로 치료제 개발 의지를 표현했다.

1980년대에는 만병통치식의 과장 광고 방식이 점차 사라지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킨다는 의약품 본연의 사명에 충실하도록 제품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광고가 많아졌다. 또한 의약품 광고에 창의성(크리에이티브)를 추가하며 신선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한일약품 '화이투벤'은 목감기·몸살감기·기침감기 등 효능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내용을 광고에 담았고, 부광약품 '코리투살'은 '코코코 코리투살'이라는 인상적인 카피를 도입해 감기약 인식을 소비자에게 각인시켜 제품 매출을 높였다.

의약품광고에 대한 규제는 1990년대 시작을 알렸다. 의약품 광고 관리 정책과 위반 광고의 처벌규정을 강화했으며, 과대포장이나 허위광고 등이 주요 처벌 대상이었다. 이런 규제속에서도 제약광고의 질적 수준은 진일보했다.

의약분업은 의약품 광고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중광고가 금지된 전문의약품이 제약사의 주요 전략품목으로 부상함에 따라 기업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기업PR광고가 활발히 진행됐고, 의사·약사 대상 전문매체 광고가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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