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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9 15:39 (금)
질 향상 교육 적정수가 등 뒷받침 돼야

질 향상 교육 적정수가 등 뒷받침 돼야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3.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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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원, 건강보험에서만 한 해 2억8천만원 번다”(김홍신 국회의원 9월 14일 국정감시정책리포트 자료).
“지난해 개인 병원 및 의원 사업자 5만3,788명은 한 해 동안 15조8,277억원의 수입을 올렸다”(국세청 9월 21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국정감사 제출 자료).

김홍신 의원이나 국세청 자료는 결국 국민에게 동네의원은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뿌리내리는데 상당히 기여하고 있다. 김 의원은 “한 해 평균 건보수입만으로 2억8천만원을 버는 것은 일반국민들의 통상적인 수입규모에 비해 매우 큰 것”이라며 “의사의 수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경영위기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벼랑 끝으로 내 몰리고 있는 동네의원 의사들은 이러한 자료와 언론 보도를 접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도 어렵다”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통계학적으로 객관성을 갖춘 자료가 빈약하다 보니 이렇다할 항변도 못한 채 불신과 울분만 쌓이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1차의료 활성화 방안-무너지는 1차의료를 살리자'를 주제로 지난 9월 27일 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마련한 제 7차 의료정책포럼에서는 동네의원의 경영위기와 적자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객관적으로 규명한 자료가 제시돼 눈길을 끌었다. 이날 포럼에서 임금자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경영·사회팀장은 `2003년도 의원의 경영분석' 주제발표를 통해 의원의 운영과 관련해 소요된 필요경비, 즉 `비용'에 대한 경영분석자료를 제시했다.

임 팀장은 “현재의 환산지수는 원가의 89.07% 밖에 되지 않아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때마다 원가에 미달하는 만큼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며 “의원의 경우 현재의 환산지수 수준에서는 언제나 손실을 기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즉, 현재의 건강보험 급여비용의 구조는 `매출(수입)<비용'의 구조이며, 의원에서 창출된 매출 중 비급여수입을 포함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것. 임 팀장은 2002년 의원의 연간 건강보험급여수입(매출액=본인부담+공단부담)이 2억6,747만원인데 비해 이러한 수입의 창출을 위해 소요된 비용은 서울대(2001, 2002), 삼일회계법인(2002), 시립대(2001, 2003), 연세대(2002) 등 어느 조사기관을 불문하고 더 많은 금액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는 건강보험공단이나 정부당국도 의원의 경영상태가 이미 오래전부터 심한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한 임 팀장은 “이를 몰랐다고 하면 직무유기”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지금까지 의원의 경영과 관련된 언론보도는 대부분 비용을 누락한 채 매출에 대해서만 접근해 왔다. 매출이 바로 순수입인양 호도되거나 왜곡된 자료가 난무하고 언론도 경영과 통계의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부분을 간과한 채 동네의원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식으로 몰고 갔던 것이 사실이다.
비용이 제외된 매출만으로 구성된 원자료의 한계를 덮어둔 채 그럴 듯하게 포장해 언론사에 제공한 자료제공자측의 잘못된 의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철저한 검증과 사회적인 파장에 대한 고려 없이 보도에만 급급했던 언론사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의료계로서는 `매출=순수입'이라는 식의 잘못된 자료와 언론보도에 대해 객관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든든한 근거자료를 확보한 셈이다.

독일의 명문인 퀼른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임 팀장은 경영학자의 전문가적 안목에서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한 경영분석을 실시하고 이날 포럼에서 중간 결과물을 제시했다.

임 팀장은 연구자료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2003년 5월 종합소득세 확정신고시 세무당국에 제출한 2002회계년도 세무보고용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실제 손익계산서상 기재된 금액을 인용했다. 실제 손익계산서상 기재된 감가상각비를 기준으로 잔존가치가 없는 고정자산에 대해서는 감가상각비를 일체 계상하지 않았다.

명확한 자료가 없는 의원장 인건비는 연세대가 조사한 전국 병원 봉직의 월 평균 임금에다 2002년 보건분야 임금상승률(6.9%)을 감안, 책정했다. 의원 개원시 소요되는 자금의 경우 3년 만기 회사채 수익률(연 5.95%)을 적용해 기회비용을 정했다.

임 팀장은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는 경영분석을 위해 국가기관의 자료를 인용했으며, 의원장 인건비도 봉직의 평균 임금을 적용함으로써 최소냐 최대냐의 논란의 근거를 없애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지정토론에서는 “객관적이고 납득할 만한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양병국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 “의원에 유리한 자료만 따 온 것 아니냐?”(김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위원장) 등 경영학자로서의 전문성과 연구자료의 신뢰성 문제까지 들먹이며 첨예한 신경전이 오갔다.

임 팀장은 “학술논문이라면 근거자료를 제시하겠지만 이 자리는 포럼”이라며 10월 중 최종보고서를 제출할 때 구체적 근거자료를 제시하겠다고 반론의 포문을 열었다. 임 팀장은 “독일사례는 급여체계나 의료제도가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김 교수의 지적에 대해 “정부는 의약분업을 추진하면서 역사, 문화, 제도적 배경이 다른 나라의 것을 잘도 끄집어 오지 않았냐?”며 “의약분업은 시민단체를 등에 업고 감히 국민을 가르치려 들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비급여부분을 뺀 부분에 대해서도 지정토론자들 간에 이견이 오갔으나 임 팀장은 비급여부분 자체가 전체 의원 매출의 5% 이하일 정도로 작을 뿐 아니라 이 정도 수치는 회계학상 무시한다고 해도 문제가 될 수 없으며, 의원 경영이 원가 이하라는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고 교통정리를 했다.

양병국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설득력 있는 근거자료가 없으면 보험자나 소비자를 설득하는데 제한점이 있다”며 “객관적이고 납득할 만한 자료는 1차의료의 어려움을 푸는 열쇠”라고 조언, 객관성을 확보한 자료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 두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오창석 대한개원의협의회 의무이사는 `1차의료기관의 현황과 활성화방안'을 통해 1차의료가 활성화 되지 않는 이유로 ▲정책 결정 담당자의 1차의료에 대한 인식 부족 ▲국민 건강이 아닌 재정보호를 지향하고 있는 의료정책 ▲국민을 설득하고 책임지려는 주체의 부재 ▲비전문가적 식견과 정치논리 지배 현상 ▲의사의 정부 불신 등을 꼽았다.

오 대개협 의무이사는 2000년 9월부터 2003년 3월까지 1차의료의 근간인 내과계(가정의학과, 내과, 소아과 등)의 경우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진찰료에 있어 재진료는 20%(초진료 17.1%)가 인하되었고, 내원환자수도 올해 2월을 기준으로 전국 2만3,341곳의 의원 중 51%(1만1,790곳)가 50명 이하를 진료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의원급 의료기관의 절반이상이 손익분기점 이하의 상황에서 경영악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포럼에서 토론자들은 1차의료의 중요성에 공감했으며,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동네의원의 경영위기에 대해 한오석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평가상임이사는 “진료비를 분석한 결과 의사 30%만 돈을 잘 벌고 나머지 70%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1차의료의 활성화에 동의했다.

한 이사는 “상하 간의 갭과 진료과 간의 갭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가 정책목표”라며 “언젠가는 사보험도 들어와야 할 것”이라고 소신을 피력했다.

김진현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은 “1차의료의 문제는 의료전달체계만 엄격히 해도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며 “역차등수가제, 바코드 등의 제도개선은 어렵지 않으므로 정부의 시행의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양병국 보건의료정책과장은 “과도한 전문의를 줄이고 1차의료 의사를 늘려야 하는데 누가 1차의료담당의사인지, 얼마나 늘려야 하는지 동의가 안돼 있다”고 토로했다. 양 과장은 “의료자원과 의료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정비해 나갈 것”이라며 “진입규제는 상당히 해소하고 규제도 풀 것”이라고 언급, 병의원간 문호개방을 통한 의료자원의 공동 활용방안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1차의료 활성화에 역행하는 정부정책과 제도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치옥 대한소아과개원의협의회장은 “1차의료의 문턱을 높이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부담을 올려 1차의료를 이용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가벼운 질환에 대한 본인부담을 강화하는 것은 동네의원을 죽여서 병원을 살리는 것”이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안 회장은 병상수를 29병상 이하에서 9병상 이하로 제한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1차의료 활성화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밝혔다. 안 회장은 국가지원을 받는 보건소가 예방이나 보건사업등 공공의료를 제쳐둔 채 진료비를 할인해 가며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해 수익사업을 벌이는데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신창록 의협 보험이사는 “무분별한 의대 신설로 인해 의원급 의사수가 최근 10년간 30% 증가했다”며 “의대정원과 의사수 감소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이사는 “공단은 보험료 징수 및 관리 등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고 진찰료 환수와 진료비 삭감 등 월권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며 “의사 진찰료에서 약제비를 삭감하거나 수진자 조회를 통해 의사와 환자와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즉각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김세곤 의협 상근부회장은 지정토론을 종합정리 하면서 “낮은 수가에 시달리고 있는 개원가는 환자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체감온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며 “1차의료가 모두 얼어죽은 이후에 국민이 과연 건강해질 수 있겠냐?”고 격앙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포럼에서 임 팀장은 경영학 원론에 대해 몇 마디 충고를 했다.
“자본주의에서는 원가와 동일한 수준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서비스의 가격(환산지수)은 원가이하의 수준에서 결정되고 있는데 이는 의료기관의 지속적인 운영과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임 팀장은 “경영학자의 입장에서 차라리 동네의원에 대해 업종을 변경할 것을 추천하는 것이 정상적 자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임 팀장은 “환산지수가 원가미만에서 결정된다는 것은 `경영’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고 비판의 강도를 높인 뒤 “의료기관 경영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건강보험이라는 명목으로 제공되는 서비스 상품은 구조조정의 대상”이라고 비판의 수위를 한껏 높였다. 건강보험 거부사태에 대한 우려도 감추지 않았다.

정부가 도입을 검토 중인 SGR(지속가능성장률, 의료물가상승률과 올해 목표진료비와 실제진료비간 차이보정계수를 고려해 차기년도 환산지수를 결정하는 방식)에 의한 환산지수 결정방식과 관련해 임 팀장은 “원가보다 낮은 수준에서 결정되고 있는 현재의 환산지수와 의료기관의 건전한 경영이라는 고민 없이 SGR을 이용해 환산지수를 결정할 경우 의료수가는 영원히 원가 이하나 손익분기점 이하에서 결정됨을 의미한다”고 충고했다.

“저렴한 의료서비스를 정책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의료소비자에게 소득재분배라는 명목으로 일방적으로 의료공급자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 임 팀장은 “의료소비자와 의료공급자간의 소득재분배는 국민 건강권을 위해 의사의 행복추구권을 제한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윤형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은 “10월 중으로 완성된 형태의 경영분석 보고서를 의협에 제출해 수가인상의 근거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창석 대개협 의무이사는 “1차의료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1차의료의 개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며 “1차의료의 질 향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체계, 적정 수가, 의료인력 수급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정의학과 개원의로서 일선 의료현장에서 수가인하, 환자감소, 비용증가, 병원 중심 의료, 전달체계 왜곡, 한의원 및 약국과의 경쟁, 편법·불법 의료행위 난무, 사이비 민간요법의 성행 등 정상적인 의료의 몰락과 의료왜곡에 대해 주시해 온 오 대개협 의무이사는 의료정책 결정 담당자의 이해 부족과 건강보다는 재정절감을 지향하는 의료정책에서부터 문제가 파생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 이사는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국민들의 의료이용 행태를 개선하고 1차의료기관 이용시 본인부담금 인하와 진료의뢰서 제도 개선을 통해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심사체계와 의료분쟁시 진료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개선은 물론 의약분업 체제하에도 처방전 없이 전문의약품이 유통되고 있는 문제와 검증되지 않은 불법·편법적인 민간요법과 유사의료를 근절해야만 1차의료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 이사는 1차의료 육성은 국민과 의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이므로 의료계, 정부, 언론, 사회단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유일하게 언론계를 대표해 참석한 고종관 중앙일보 건강팀장은 “1차진료 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올려 나가야 한다”며 “1차의료가 청소년, 치매, 만성병 관리 등에 개입하고 정부도 여기에 수가를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에 대한 교육과 계몽을 통해 생식, 녹즙, 건강보조식품 등 불필요하게 지출되고 있는 시장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파이도 커질 것”이라고 밝힌 고 팀장은 “의협과 언론사가 함께 주치의 갖기 캠페인을 펼침으로써 의료소비자와 개원가의 연계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며 “국민건강은 1차의료가 맡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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