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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침 사건서 의사 손해배상 책임 '기각' 판결 의미는?
봉침 사건서 의사 손해배상 책임 '기각' 판결 의미는?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20.02.2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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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법조계, 선한 사마리아인 의사 '호의' 인정…"재판부 타당한 판단"
선의의 응급의료를 제공한 의사 대상 무분별한 민사·형사 소송 근절돼야
ⓒ의협신문
ⓒ의협신문

 

'봉침' 시술을 받는 환자를 응급진료 했으나 사망했다는 이유로 가정의학과 의사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으나 법원이 "의사의 책임이 없다"며 유가족 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한의사에게는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를 일으키게 하고 환자가 사망에 이르게 한 잘못이 있다며 4억 1748만원의 손해배상을 유가족 측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19일 한의원에서 '봉침'을 맞고 아나필락시스로 사망한 환자의 유가족이 한의사와 의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한의사에게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선고했다.

유가족 측은 한의사와 응급진료에 나선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9억원을 배상하라며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유가족 측은 봉침을 시술한 한의사를 상대로 형사 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의료계는 물론 법조계도 타당한 결정이라는 평가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규정인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 2(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내용 중 지속해서 논란이 됐던 '중대한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데 어느 정도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선의의 목적으로 응급상황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형사책임 등을 묻지 못 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 움직임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중대한 과실'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유사 재판에도 영향 줄 듯
응급의료법은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규정',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 규정을 두고 있다.

응급의료법은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요청받으면 누구든지 적극적으로 협조할 의무를 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해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고 돼 있다.

응급의료종사자와 응급처치 제공 의무를 가진 자에 대해서도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응급의료 종사자의 경우에는 본인이 받은 면허 또는 자격의 범위에서 한 응급의료, 응급처치 제공 의무를 가진 자는 '업무 수행 중'이 아닌 때에 응급처치한 경우 해당 법률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다.

즉, 응급상황에 대해 응급처치를 하도록 의무 규정은 뒀지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민사·형사 책임을 질 수도 있다는 것.

더군다나 소송에 휘말릴 경우 해당 의사는 소송(손해배상 소송 등)을 통해 무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의료계는 법률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번 '봉침' 사건에서 유가족 측은 한의사뿐만 아니라 가정의학과 의사에게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는데, 재판부는 의사의 행위가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 핵심이다.

재판 과정에서 가정의학과 의사가 '중대한 과실'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하려고 노력했는지 재판부가 판결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재판부의 결정은 앞으로 유사한 사건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중대한 과실 없는 한 형사책임 면책돼야"…법 개정 목소리 높아
현행 응급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형욱 교수(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는 지난해 2월 KMA POLICY가 주최한 '선의의 응급의료와 법적 책임 관련 공청회'에서 법률적 대안으로 ▲고의의 경우에만 민사·형사책임을 지우는 형태로 관련 법 개정 ▲감염병예방법에서 예방접종 시술자에 과실이 있더라도 일단 국가가 보상하고, 차후 국가가 과실이 있는 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국가보상제도 도입 ▲국가배상법상의 공무원의 책임 제한 및 고의 또는 중과실의 공무원에 대한 구상제도와 같은 방식으로 선의의 응급의료제공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 개선방안 마련을 제시했다.

이동필 변호사(법무법인 의성)도 "선의의 응급의료제공자의 경우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응급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형사책임이 면책되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박 교수의 대안을 찬성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지난 2018년 12월 선의의 응급의료에 따른 형사책임 면제 범위를 응급환자가 사망한 경우까지로 확대하고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감면하는 내용으로 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것은 다행"이라며 조속히 국회 통과를 기대했다.

그러면서 "응급상황의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료행위, 즉 생명 구조라는 선의의 목적으로 행한 의료행위에 대해 과실 여부를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선한 의도로 응급진료에 나선 의료인에게 부당한 불이익이 발생한다면, 향후 응급상황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선뜻 발 벗고 나서는 의료인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재판부 현명한 판단 감사" 나쁜 사례 남기지 않아 다행
박종혁 대한의사협회 총무이사 겸 대변인은 "봉침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라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선의의 행위에 대해 소송으로 갔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국민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올바른 의료제도를 위해 의료인·법조인, 그리고 국민 모두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마터면 의사가 선의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는 사례를 만들 수도 있었던 소송인데 의사에게 책임이 없다고 판결이 나온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이번 소송에서 유가족 측 소송을 담당한 변호사는 의료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분인데 현실을 잘 모르는 것 같아 더욱 유감스럽다"고 덧붙였다.

최대집 회장도 지난해 8월 기자회견에서 유가족 측 대리인인 S변호사에 대해서도 "대가 없이 응급진료에 나선 의사에게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들어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무리한 소송을 했다"며 비판했다.

법조계, "선의의 목적 고려 당연…무분별한 소송 근절돼야"
법조계도 이번 '봉침' 사건 재판 결과에 대해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다.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봉침 사망 사건 관련해 판결문을 확인해봐야겠지만, 가정의학과 의사가 다른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응급상황에 대해 반드시 도울 의무가 없음에도 선의의 목적에서 개입한 것을 재판부에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해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을 면책하는 응급의료법에 따른 것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 변호사는 "유가족 측은 가정의학과 의사가 에피네프린을 지연 투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외부 한의원의 협조 요청을 받고 간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에피네프린 투여를 즉시 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가 한의원으로부터 제공됐는지도 의문"이라며 "설령 에피네프린이 지연 투여됐더라도 이를 두고 가정의학과 의사의 과실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타당하다고 생각되며, 판결을 계기로 선의의 응급의료제공자에게 환자에게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제기하는 무분별한 소송이 근절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성훈 변호사(법무법인 한별)도 "합당한 결론이라고 본다. 한의사는 진료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의무에 따른 과실 책임을 물은 것이고, 의사는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계약에 따른 의무가 아닌 호의로 도와주러 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의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도 다퉈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설령 과실이 있더라도 선한 사마리아인 법에 따라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것 같다"라고 해석했다.

이 밖에 여러 법조계 관계자들도 "단지 응급구조 과정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재판에 의사를 끌어들인다면 많은 의료인의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천수 교수(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봉침 사건과 관련 도움을 주려고 달려간 의사의 '호의'를 인정해야 한다"라며 "이런 가치가 부정된다면, 응급상황 때 어느 의사가 나서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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