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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06:00 (금)
"라이트펀드는 삶의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라이트펀드는 삶의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0.02.1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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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개발국 건강 불평등 해소 위한 한국 생명과학기술 R&D 선정
2022년까지 500억원 지원…1차사업 5개 과제에 100억원 집행
인터뷰- 김윤빈 글로벌헬스기술연구기금 '라이트펀드' 대표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인도 서북부 티베트 고원 라다크 사람들과 17년을 함께 하며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자연과의 조화와 공동체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라다크의 오래된 삶의 방식은 미래를 향하는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오래된 미래'라는 모순 속에, 미래로 향하는 길은 오히려 오래된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진리를 새긴다.

과거는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찾아줄까.

지구촌 최빈국이나 저소득국 등 저개발국가의 건강 불평등 해소와 공중보건 개선을 위해 설립된 글로벌헬스기술연구기금 '라이트펀드'(RIGHT Fund: Research Investment for Global Health Technology Fund)가 설립 이태째를 맞는다. 

라이트펀드에는 보건복지부와 국내 생명과학기업 5곳(SK바이오사이언스·LG화학·GC녹십자·종근당·제넥신),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등이 재원을 공동 출자했다. 저개발국 공중보건 증진을 위해 R&D에 나서는 국내 생명과학 프로젝트를 선정해 2022년까지 500억원을 지원한다.

과거 ODA(공적개발원조) 수혜국이었던 우리는 이제 공여국으로서, 세계 곳곳에 함께 살며 일구는 미래를 전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한국 생명과학의 강점인 제형개발·제조·ICT활용 진단 기술 등을 발굴해 저개발국가 감염병 R&D 지원에 나서고 있는 라이트펀드의 의미있는 손길도 있다.

라이트펀드의 여정은 이미 시작됐다. 김윤빈 대표의 다음 계획은 무엇일까.

앞선 생명과학기술과 ODA의 만남.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라이트펀드는 무슨 일을 벌이고 있을까.

"한국은 ODA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유일한 나라입니다. 2010년 선진 공여국 ODA 협력체인 OECD DAC 회원국 가입과 2016년 국제개발협력 2차 기본계획 과정에서 논의되고 만들어진 것이 라이트펀드입니다. 우리는 진전된 한국의 생명과학기술에 집중했습니다. 치료제 접근에 대한 많은 장애 요인들(생산용량 부족·고비용·유통 취약·의료진 부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런 기술개발에 지원함으로써 저개발국가 국민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차 사업은 2022년까지 진행된다. 주력 분야는 백신·치료제·진단기술이다. 아직도 말라리아·장티푸스·콜레라 등 감염성 질환 사망률이 높은 저개발국가 지원을 위해서는 의미있는 접근이다.

"1차 사업을 통해 좀 더 광범위한 질환에 대한 백신이 개발되고 생산될 수 있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개도국 뿐만 아니라 국내 백신자급률을 높이고 접종비용을 줄이는 데도 기여할 것입니다. 저비용 간단투여 치료제가 더 개발돼 치료 접근성 및 순응도도 높아졌으면 합니다. 전기공급과 검사인력 지원이 안정적이지 않은 국가에서도 잘 활용할 수 있는 진단기술 개발과 한국의 ICT기술이 감염병의 예방·치료 효율성을 높이고 감염병감시체계 수립에 활용될 수 있는 방법도 찾고 있습니다."

그는 10여년간 싱가포르에 있는 노바티스열대병연구소(NITD) 국제협력수석을 맡아 열대병 등 소외 질환 환자의 치료제 접근성 확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삶에 현장이 녹아 있다. 인연도 이어진다.

"NITD에서의 경험이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라이트펀드에 몸담게 됐습니다. 지난 1년간은 재단 운영체계 및 투자 선정 프로세스 확립에 주력했고, 다섯개의 프로젝트를 발굴해 1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한국의 강점 기술들을 해외파트너들에게 알리고, 프로젝트 육성을 위한 파트너링에 집중하면서 투자공모 역시 늘려 나갈 예정입니다. 2023년부터 시작될 2차 사업에는 더욱 많은 기업의 R&D 성과와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22년까지 조성되는 기금 500억원은 보건복지부(50%)·빌&멜린다게이츠재단(25%)·국내 5개 기업(25%)이 공동으로 출연한다. 2차 사업 때에는 대규모 추가 펀딩도 가능하지 않을까.

"라이트펀드의 민관협력 모델인 일본 GHIT(Global Health Innovative Technology)펀드는 설립 후 투자자들의 참여가 이어지면서 2차사업 때는 2배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감염병 연구에 대한 민간의 관심과 공적 기금 확대가 필요합니다. 감염병 대응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은 저개발국가 뿐만 아니라 자국민 보호를 위해서도 절실합니다. 민간기업의 지속적인 R&D를 위해서는 공적자금의 균형적 지원이 우선입니다. 라이트펀드의 민관협력 모델이 새로운 대안이 될 것입니다."

라이트펀드의 주요 의사결정은 평의회·이사회·투자선정위원회에서 이뤄진다. 특히 투자 대상을 선정하는 투자선정위원회는 완벽하게 독립돼 있다.

"평의회는 주요 출자자로 구성된 자문회의입니다. 모두 창립 멤버로 구성돼 있으며, 펀드 활동이 창립 의도 맞게 잘 이뤄지고 있는지 조언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사회는 사업·운영·정책 등 모든  사항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최고의결기구입니다. 투자선정위원회는 R&D 프로젝트에 대한 과학기술적 평가를 토대로 투자제안추천서를 이사회에 제안합니다. 평의회·이사회와 분립된 독립기구입니다."

라이트펀드 역할은 굴레에 갇히지 않는다. R&D 프로젝트 발굴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 공모를 통한 지원 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에 다양한 접점과 기회를 제공한다. 기다리고 다가서며 도전에 나선 기업들을 응원한다. 잇고 또 잇는 연결이 성과를 배어낸다.

"저희 사업은 R&D 프로젝트 발굴 이전 단계부터 기금 지원 이후 단계까지 광범위합니다. 우선적으로 재단에 지원할 수 있는 양질의 프로젝트 풀을 확대하기 위한 다각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이 관심을 가질 만한 해외 R&D 프로젝트도 소개합니다. 기금 지원 후에도 연구 결과물이 목표 환자들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후기개발 및 시장진입에 도움이 될 만한 비영리기관들과 연결하려는 작업을 이어갑니다. 이를 위해 빌&멜린다게이츠재단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으며, 다른 제품개발 파트너십(PDP)과의 관계도 견고히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라이트펀드 인베스트먼트 포럼을 통해 프로젝트 및 파트너링 기회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첫 R&D 프로젝트에는 백신 2건, 치료제 1건, 의료기기 2건이 선정됐다. 어떤 기술이 선정됐을까. 성과도 기대된다.

"백신 분야는 6가 백신과 신접합콜레라백신입니다. 6가 백신은 기존 5가 백신에 소아마비백신을 추가했습니다. 세계 최초는 아니지만 현재 글로벌 공급이 상당히 제한적이라서 개발에 성공하면 의미있는 진전이 될 것입니다. 신접합콜레라백신 프로젝트는 기존 경구용 백신에 반응률이 특히 낮은 영유아를 위한 R&D로 콜레라 박멸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신접합기술은 향후 다가백신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치료제 분야는 글로벌 말라리아 전문가 단체인 MMV(Medicines for Malaria Venture)에서 개발하고 있는 차세대 말라리아 신약에 대한 저가의 안전한 제조공정 개발입니다. 이 치료제는 단회 투약의 혁신 신약으로 기대를 받고 있으나, 제조 과정이 위험하고 고가여서 저개발국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국내 제조공정의 우수성을 활용해 개발하고 있습니다. 진단 분야 중 하나는 차세대 G6PD 진단으로, 기존 진단의 사용자 오류를 줄이고 유통기한을 연장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의료진이 부족하고 유통망이 취약한 곳에서 활용되는 매우 중요한 사항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제내성 결핵에 대한 현장진단장비 연구개발도 지원합니다. 리팜피신내성결핵 이외에 다제내성결핵에 대한 현장진단이 없는 상황에서 개발에 성공한다면 결핵 치료에 있어서 혁신적인 진보가 될 것입니다."

투자선정 대상자 결정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로 진행된다. 과학적인 기술 검토는 외부 전문가평가를 통해 검증한다.

"공모를 통해 투자 지원 의향서를 받은 뒤 프로젝트 요건과 부합하는지를 확인한 뒤 해당 의향서에 대한 전반적인 제안을 받습니다. 이후 각 프로젝트에 대해 최소 3명의 외부 전문가 평가를 거칩니다. 투자선정위원회 전단계 평가로 특정 기술 분야에 대한 순수한 과학기술검토 과정입니다. 2차로 투자선정위원회는 대면평가 후 최종 투자추천보고서를 이사회에 제출합니다. 이사회에서는 과학기술평가 이외의 사항, 예를 들면 전체 펀드운용계획, 이익충돌 여부, 기타 사회적 위험요인 등에 대해 최종 검토해 투자를 결정합니다."

그가 품은 라이트펀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최고의 가치는 무엇일까.

"한국 ODA에서 비특정 국가의 감염병연구개발에 투자하는 프로젝트는 라이트펀드가 처음입니다. 감염병에 더 이상 국경은 무의미합니다. 라이트펀드의 활동은 저개발국가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내 감염병 연구 활동 육성과 공중보건 인프라를 강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저개발국가 감염병 R&D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와 이해를 지닌 기관으로 인식되길 바랍니다. 해외 협력자들에겐 한국 기업 및 파이프라인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함께' 가는 길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삶이 바뀌고, 조금 더 건강해진다면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라이트펀드는 건강 불평등에 내쳐진 이들에게 건네는 생명의 손길이다. 과학기술의 진전을 세상에 내보이기 위해 속태우던 가슴에 심는 희망의 씨앗이다.

"저희 프로젝트 결과물이 저개발국가 국민에게 닿아 그들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윤빈 라이트펀드 대표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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