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비자의 인식 변화
의료소비자의 인식 변화
  • 김린 고려의대 명예교수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2.02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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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정부·언론, 소통하고 협력하는 상생의 관계로 거듭나길 바라며…"
김린 고려의대 명예교수ⓒ의협신문
김린 고려의대 명예교수ⓒ의협신문

의료환경이란 의료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제반 여건이나 상황을 말한다. 최근의 의료환경은 의료에 영향을 주는 의료환경 범위의 확대, 구성요소의 다양화로 인한 복잡성, 그리고 변화의 속도가 가속화되는 특성이 있다.

의료환경에는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이라는 기본적 구성요소가 존재하며, 진료나 환자에 대한 서비스 그리고 의료기관의 관리 및 운영에 관련된 기술적 측면이 있다. 향후 의료환경 변화에 영향을 주게 될 요인들은 매우 많을 것이지만 몇 가지 구체적 요인을 보면, 첫째, 고령화와 저출산이 향후 의료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의료비 증가는 차치하더라도 지금 진행되는 저출산 추세라면 500년 후 지구상에 한국인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다. 둘째,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의료소비자가 보다 높은 품질의 의료서비스를 원하며,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의 고조로 의료 연속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이에 따라 의료수요의 증가가 급속히 나타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셋째, 의료소비자의 의료에 대한 인식 변화이다.

요즈음의 의료소비자는 의료를 기본적 권리로 인식하며 이에 따라 권리보장과 정보의 비대칭에 강하게 저항한다. 마지막으로는, 현재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의료환경 변화에 따른 의료서비스 패러다임이 급속히 변화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앞서 기고한 '우리가 만날 미래의료'와 '연구중심병원의 기술사업화'에서 이미 설명하였으므로 더 이상의 언급은 피하고자 한다. 

상기 기술한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근래에 의료계에 긴장감을 주는 가장 큰 요인은 의료소비자의 의료에 대한 인식 변화와 그에 따른 정부의 대응인 것 같다. 의료를 피동적 혜택으로 보지 않고 기본적 권리로 인식해 적극적으로 필요와 정보를 요구하는 경향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됐다.

이러한 경향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사회구성원의 가치관이 다원화되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가 갓 의사가 되어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당시인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공급자 중심이었다. 돌이켜 보면 사회 전반의 환경에 따라 의료 환경도 급격히 변화했다.

실제로 나타난 그 동안의 변화를 살펴보면, 국민의 관심이 단순한 질병의 치료에서 건강유지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쪽으로 전환됨에 따라 질환의 치료뿐 아니라 의료서비스 제공의 연속성이 중요하게 됐고,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의료 공급자 간의 협조와 통합적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병원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고 일관성 있는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지속적 투자를 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게 됐다.

또한 내부 조직 관리뿐 아니라 외부 환경 관리라는 측면으로 행정 업무가 확장돼 비용-효과적인 의료를 제공해야 할 경영상의 부담도 커졌다. 질환 중심에서 개인 맞춤형 진단 및 치료로, 치료 중심에서 예방, 진단, 치료, 관리로 영역이 확장되고, 병원 중심에서 홈케어 등 진료공간의 확장이 일어나게 되어 진료 및 연구 분야에 엄청난 투자 수요가 생기게 됐다.

또한 심평원의 급여 심사도 엄격해지고 행위별 수가와 포괄수가제와 같은 급여제도의 변화에 따라 진료의 적정성이 대두됐다. 결국 규제는 엄격해지고 신경 쓰고 살펴야할 곳은 많아졌으며 경쟁이 심화되어 투자할 곳이 많아지는 소비자 중심의 의료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정부나 국민 입장에서는 의료계가 여전히 권위적이고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지 몰라도, 평생을 의료계에서 종사해온 필자가 느끼기에 그 동안 의료계는 초지일관한 저수가 정책 아래에서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심정으로 필사적인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필자 또래의 주변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피로감과 좌절감을 느끼는 의사들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의사들이 의료환경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단순한 이기심보다 의료환경의 변화가 치료환경(therapeutic milieu)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질병치료를 위해서 병원을 찾으며 환자가 병원을 찾는 순간부터, 즉 자신이 찾은 병원이 병을 고쳐줄 것이라는 기대부터 치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환자에게는 병원을 찾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의학용어, 두려운 치료과정, 병원비에 대한 걱정, 질병으로 인한 직업 상실 등은 환자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러한 환자들에게 찾은 병원이 수준이하의 시설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의료수준을 제공하고, 병원은 소음이 심하며 답답하고 조밀한 공간구성으로 이뤄져 있고, 의사는 방어진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의사들은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최전선에 위치하고 삶 자체가 환자 중심인 직업이다.

치료적 환경에 대한 도전은 환자는 물론이고 의료를 제공하는 의사에게는 온 몸으로 대처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따라서 보장성 확대라는 정부의 선의의 정책도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이뤄 온 첨단 치료환경이 향후에도 지속가능할 것이냐는 관점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 의료사고에 대한 법원의 무리한 구속 영장 발부, 병원로비를 일상으로 점거하는 노동쟁위, 의사에 대한 신체적 위해와 같은 일련의 현상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의료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료인이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의사들을 이기주의에 매몰된 집단으로 인식해 매를 들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해서 나타나는 현상들이 아닐까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의료환경의 변화에 따라 의료자원 관리체계의 합리화, 의료전달체계의 개선, 예방적 건강정책의 강화, 건강보험체계의 개선 및 관리, 저출산 및 고령화에 대한 대책 등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의료소비자의 의료 요구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변화에 따라 의료계를 엄격하게 압박하려는 유혹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 의료체계의 한 축은 의료인이 지탱하고 있고 오늘날 세계적으로 효율성을 인정받는 첨단 의료 제공과 의료급여체계를 확립하는데 그동안 수고해 온 의료인의 헌신과 희생은 결코 간과해서 안 된다. 결국 지속가능한 효율적인 의료체계를 국민에게 제공한다는 궁극적 목표는 의사나 정부 모두에게 같은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의료계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고 같은 배를 타고 부단히 소통하고 협력해야 하는 관계이여야 한다.

새로운 10년의 2020년대를 여는 새해가 열렸다. 정말 작은 부분이지만 새해부터 서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개선을 위해 의료계와 정부 그리고 언론이, 사무장 병원 같은 명백한 불법 사례를 제외하고라도, 부당하게 이득을 편취한다는 의미로 다가오는 '부당청구' 대신 '청구착오'라는 중립적인 용어를 쓰는 것부터 협력해 정착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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