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사'를 보내다
'좋은 의사'를 보내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0.01.22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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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철규 서울의대 교수 영전에…
황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
황건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교수
황건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교수

얼굴에 생기는 가장 흔한 선천기형 중에는 입술갈림증(Cleft lip·구순열)과 입천장갈림증(Cleft palate)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650∼1,000명당 1명꼴로 나타난다. 흔히 '언청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 기형은 태생기 중 얼굴이 만들어지는 시기인 임신 4∼7주 사이에 입술이나 입천장을 만드는 조직이 제자리에 붙지 못해 생긴다.

입술갈림증의 수술 방법은 역사적으로 여러 방법이 개발되었지만, 현재는 밀라드(Ralph Millard Jr.·1919-2011)의 회전-전진법(Rotation-Advancement)이 표준방법으로 쓰이고 있다.

미국 해병대 소속 군의관 밀라드 소령은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이 서명된 이듬해인 1954년부터 1년간 이동외과병원(MASH)에 근무하면서, 당시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입술갈림증을 가진 어린이들을 수술했다. 그는 과거 여러 수술법의 장단점을 분석한 후 단점을 보완한 '회전-전진법'을 고안해 1955년 국제성형외과학회에서 발표했다.

성형외과 의사라면 꼭 한 번 읽어보는 책이 바로 그가 저술한 교과서이다.

초음파를 이용한 산전 진단의 발달로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에서도 입술갈림증이나 입천장갈림증을 자주 접하기 힘들며, 전공의들도 수련 중에서 직접 만날 기회가 적다.

이렇게 난이도가 높은 입술갈림증 수술을 필자는 수석 전공의 시절인 1990년 P 교수님의 지도아래 해 보았다. 교수님 수술에 조수를 맡아 눈여겨 보았다가 수술이 끝나면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일반적인 수술 기록지를 작성하는 것 보다 매우 상세하게 그 과정을 적어뒀다. 그런 종이들이 많아졌다.

교수님의 방법이 최초 개발한 밀라드 박사와 다른 점은 갈라진 입술의 양편에 있는 점막피판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밀라드는 점막피판을 콧속으로 들여보내 눌린 코를 펴는 데 사용했는 데, P 교수님은 이 피판을 입술과 잇몸 사이의 고랑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감히 여쭙지는 못했다.

수술 전날 환자의 사진을 찍어 확대해서는 그 위에 투명 종이를 놓고 윤곽을 그렸다. 그 윤곽 그림에 교수님이 시술하는 방법으로 회전-전진법을 도안했다. 수술 당일 마취를 일찍 의뢰하고 교수님이 수술실에 들어오시기 전에 환자의 입술 부위에 소독된 펜으로 미리 디자인해 놓았다.

처음에는 필자가 디자인한 것을 지우고 다시 디자인한 후 수술하셨다. 
 하지만 얼마 후 필자가 디자인한 대로 수술했다. 나중에는 필자의 등 뒤에서 살펴보면서 집도하도록 배려했다. 횟수가 늘어 6번이나 직접 집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수술 실력은 다졌다.

그렇게 필자도 전문의가 되고 대학병원에서 제자들을 지도하며 시간이 흘러갔다. P 교수님의 정년퇴임식에서 의국동문회장인 필자는 예정에도 없던 축사를 하게 됐다.

"여러분. 좋은 의사는 어떤 의사이지요?" 여러 대답이 나왔다.

"네, 좋은 의사는 환자의 문제를 잘 해결해 주는 의사이지요, 그런 면에서 수술을 제일 잘하시는 박철규 교수님은 좋은 의사입니다."

그 후로도 몇 년이 흘렀다.

6년 전쯤인가…. 교수님과의 식사 자리에서 입술 양편에 있는 점막 피판의 용도를 여쭸다.

"입술과 잇몸 사이 고랑의 일부가 되는 게 맞다"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그 방법으로 필자가 직접 수술한 환자를 모아 원고를 썼다. 은퇴한 교수님 대신 그의 아들인 성형외과 P 선생과 함께 쓴 논문이 국제공인학술지에 게재됐다.

지난봄 학회 참석차 제주도에 들렸을 때 건강하신 모습으로 바다낚시를 즐기던 그 '좋은 의사'의 부음을 오늘 들었다.

'좋은 의사'는 가더라도 그가 베푼 훌륭한 수술법으로 인해 새 삶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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